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 법을 통해 바라보는 사람이야기, 가족에 대해

까칠부 2018. 6. 13. 07:50

사실 중세 이전까지만 해도 혈연에 대한 집착은 지금처럼 크지 않았었다. 이누이트의 대처풍습도 인류사적으로 보면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노동력이 아쉬운데 아이의 생물학적 아비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도 않았고, 생전의 재산과 지위와 명예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물려주는 것이었다. 오히려 혈연에 대한 집착은 상당히 최근에서야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긴 그래서 가족이라 할 때는 집 가家자를 쓴다. 한 집에 살면 한 가족이다. 한 지붕 아래서 밥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 그것이 가족인 것이다. 같은 성을 쓰고 같은 이름자를 돌려쓰고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인식하며 함께 살아간다. 혈연은 단지 이유일 뿐 진정 가족을 가족이게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깊은 유대이며 신뢰인 것이다. 가족이란 그런 점에서 보다 폭넓은 정서적 사회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역시나 기대한대로 법을 통해서 가족을 이야기하려 한다. 가장 골치아픈 민사사건의 예로 들었던 모든 경우를 가족을 통해 하나로 녹여내는 감각도 탁월했다. 시작부터 웃겼고, 내내 판사들처럼 짜증났으며, 그럼에도 결국에 뻔한 교훈과 감동을 얻었다. 뻔한 교훈과 감동 역시 박차오름(고아라 분)의 주변이야기를 통해 위화감을 줄인다. 박차오름이 소중하다 말한 가족은 단지 혈연만의 가족이 아니었다. 박차오름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란 그저 혈연만의 가족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임바른(김명수 분)도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편으로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의 서로에 대한 이해를 더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완전한 화해는 불가능하다. 그런 게 그리 쉬웠다면 세대차이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로 오해가 쌓이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다른 만큼 생각도 너무 다르다. 무엇보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며 자라난다. 부모에 반발하며 부모와 다른 방식을 꿈꾸며 부모와 닮아간다. 그래서 인류는 발전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와는 다르게. 아버지처럼은 아니게.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삶을 뒤쫓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어렸을 적의 오해를 풀어낸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젊었을 적 모습에 대해서도 듣는다. 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토록 한심하고 때로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어머니를 통해 듣게 된다. 말한 것처럼 당장 화해는 어렵다. 그래도 첫 발을 떼어 놓을 수 있다. 무엇이 아버지와 그리고 어머니와 자신을 이어주고 있는가.


피를 이었다고 다 가족도 아니고,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가족이 아닌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류역사에서 자신의 친부모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도 유전학이 발달한 이후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박차오름과 임바른의 관계는 계속 엇박자를 이룬다. 섣부른 고백으로 곤란해진 임바른과 여전히 임바른이 좋은 선배일 뿐인 박차오름의 마음은 서로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긴 서로 너무 다른 타입들이기는 하다.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가족 역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이지는 않은가. 때로 힘들고 때로 아프고 때로 감당할 수 없는 모욕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래서 평생 다시 보지 않으마 외면한 뒤에도, 그러나 과연 인간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가. 어쩌면 그래서 더욱 가족이기에 서로에게 너무 응석을 부리느라 틀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냥 드는 생각이다. 문득 가족에 대해 생각하면서. 너무 무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