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다. 현직 부장판사라 그런 것일까?
"법정에서 가장 강한 것도 위험한 것도 바로 판사 자신이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말이 너무 낯설게 새롭게만 들린다.
법이란 권력의 시녀이던 시절이 있었다. 돈과 권력에 의해 깃털처럼 이리저리 나부끼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았다. 아니 불과 얼마전 법은 스스로 권력의 하수인이기를 자처했고 지금 이 순간도 그 사실을 감추기에만 급급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결정은 판사를 통할 수밖에 없다. 피고의 억울함도 원고의 원통함도 판사의 판결을 통해서만 확정되고 또 집행된다. 그래서 더 권력은 법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법 역시 자신을 비싸게 팔아 하수인이 되고자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신을 담아 말한다. 단순히 드러난 증거와 증언들만으로 전혀 아무런 의심없이 자신의 판단을 판결로 담아낸다. 혹시나 나 자신이 어느 일방에 치우쳐 판단한 것은 아닐까. 내가 자칫 치우친 판단으로 잘못된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경계해 보지만 편견이 편견인 이유는 보는 눈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색맹이라면 색을 보지 못할 테고, 적록색약이면 빨간 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근시라면 멀리있는 사물이 흐릿하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바로잡지 못한다. 하필 그 순간 임바른마저 이전의 재판의 영향으로 중립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과연 그들 젊은 판사들은 오로지 법과 사실에만 근거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린 것인가.
드라마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사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고와 피고가 제시한 증거와 증언들만으로 판사들처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최소한 제시된 증거와 증언들만으로 비추어 봤을 때 잘못된 판결로는 보이지 않는다. 정황은 단지 정황일 뿐 정황으로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인사불성으로 만취한 상태의 여성을 상대로 합의 아래 성관계를 갖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취상태면 운전도 불가능하다.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도 심신미약으로 처벌을 감경받기도 한다.
어쩌면 피고는 자신이 진짜 무죄라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러 앞선 장면에서 클럽에서 일상적인 편견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 했던 남성들을 등장시켰던 것이었을 게다. 여성이 자기와 만취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신 자체만으로 다른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여성을 상대로 무슨 행동을 하든 자신이 일방적으로 강제로 그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강간이다. 상대가 동의할 수 없는 상태에서 동의한 것을 전제로 간주하고 행위했다면 강간이 될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 술을 먹여 인사불성으로 만들고 계약서에 사인하게 했다고 계약의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실 이런 게 상식이어야 할 텐데 전혀 엉뚱한 상식으로 피해자를 몰아세운다.
변호인이 하는 이야기는 사실 일상에서도 많이 듣는 이야기다. 피해자가 성범죄임을 주장해도 가해자들은 상식을 이야기한다. 그 상식을 근거로 무고죄로 역고소를 하기도 한다. 무고죄 수사를 뒤로 미뤄야 한다는 방침이 정해진 이유다. 만일 진짜 성범죄의 피해자라면 무고죄로 수사를 받고 먼저 무죄를 입증하라. 성범죄의 피해자가 정작 성범죄의 무고를 수사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전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려는 상식이다. 성범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범죄에서 많은 피해자들은 가해자들 만큼이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보인다. 그만큼 범죄란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난 행동이기 때문이다.
완결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모든 인간의 사고와 판단과 행동을 결정되어 있다. 인간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 의도와 과정까지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상식이 모두의 상식이 될 수는 없다. 다수의 상식이 다수와 다른 소수에게까지 상식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진실이란 어려운 것이다. 쉽게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을 때로 - 아니 너무 자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망각한다.
임바른과 박차오름의 관계도 진전을 보인다. 이도연도 정보왕을 위해 오랜동안 감춰왔던 자신의 비밀을 모두 앞에 밝힌다. 청춘사업은 탄탄대로인데 정작 본업인 판사는 갈수록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부장판사인 한세상이 있다. 그들보다 먼저 그들과 같은 과정을 밟았던 선배로서 조언하며 뒤를 받쳐준다. 판사라는 직업의 무게와 그럼에도 판사로서 가져야 할 다짐과 각오다. 참 이상적인 팀이다. 부인의 말처럼 한세상은 판사로밖에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물론 그런 한세상이라고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세상의 편견과 법원의 풍경과 그 안에서 판사들이 겪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그린다. 어떤 고민이 있고 갈등이 있고 그럼에도 어떤 각오로 판결에 임하는가. 그럼에도 신뢰가 생기지 않는 것은 법원과 관련한 여러 이슈들 때문일 것이다. 법원 자신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권력에 거래의 대상으로 넘겼다. 그에 대한 어떤 반성도 없이 오히려 법을 지켜야 할 사법부가 증거의 은폐에 급급하다. 드라마와 현실은 분명 다르다. 너무나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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