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 -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혼란함, 예진우가 구승효에게 묻다!

까칠부 2018. 9. 11. 11:23

안되는데... 작가는 그냥 재벌욕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재벌과 유착한 정관계와 재벌의 입맛대로 놀아나는 언론과 대중을 비웃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도대체 이제 남은 분량도 거의 없는데 어떻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긴 작가의 전작인 '비밀의 숲'에서는 그나마 사건의 진범이자 모든 의혹을 푸는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인 이창준이 다름아닌 재벌그룹의 사위라는 특수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재벌의 인척으로써 재벌이 저지르는 모든 불법과 범죄들을 볼 수 있고 그 증거를 수집해서 고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번 드라마에서 구승효는 인척은 커녕 화정의 신임회장에게 항상 견제받는 불안한 위치에 있는 월급쟁이 사장에 지나지 않았다. 화정그룹 회장이 원하지 않으면 본사 건물에 출입하는 것마저 제한된다. 회장의 지시로 부하직원에게까지 감시당하고 있다. 구승효마저 이런데 하물며 병원의 의사들이야 말할 것이 있을까.


어째서 예진우였을까. 하다못해 상국대병원의 수많은 과장 가운데 하나였다면. 매 회 어려운 환자를 하나씩 살리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의사였다면. 그래서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만큼 병원을 구하는 것에도 기적을 바라게 된다면. 주경문이 아닌 예진우여야 했던 이유다. 예진우의 때로 드라마의 흐름마저 끊는 듯한 일상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유였을 것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의사들만이 아니다. 언론도, 수많은 개인들도 결국 저들이 가진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할 뿐이다. 문제는 그럴 것이면 무엇하러 드라마같은 것을 쓰고 있느냐는 것이다.


드라마는 판타지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겪고 느낄 수 없는 것들까지 드라마를 통해 겪고 느낄 수 있다. 어차피 현실에서도 그런데. 현실도 그만큼이나 뭣같은데. 그런데 드라마에서까지 그런 현실을 아프도록 봐야만 한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좌절하고 있는데 드라마에서까지 좌절을 겪어야만 한다. 물론 그럼에도 한 가지 성취는 있을 것이다.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못한 채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으면.


그래서 예진우가 구승효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구승효라면 알고 있을 테니까. 가장 가까이서 재벌의 습성과 방식을 지켜 온 구승효라면 저들을 상대할 방법을 알고 있을 테니까. 아무리 모여서 머리를 쥐어짜봐야 나오지 않는 방법도 구승효라면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큰 것은 아닐 것이다. 구승효는 검사도 아니고 판사도 아니다. 정치인도 고위공직자도 아니다. 이제는 화정 회장의 신임을 잃어 자리마저 위태로운 월급쟁이 사장에 불과하다. 구승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처음부터 한정되어 있었다. 그 지혜를 빌리려 한다.


아무튼 내내 답답하기만 했다. 오세화 원장까지 돌아왔는데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화정그룹의 힘 앞에 철저히 농락당할 뿐이다. 병원만 농락당하는 것이 아니다. 병원의 구성원들을 더 절망케 하는 것은 너무나 쉽게 화정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언론과 대중들이다. 철저히 화정의 입맛대로 기사가 쓰여지고 그 기사만을 철석같이 믿고 대중은 부화뇌동한다. 그런 현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예진우니까. 주경문이었다면 실망은 더 컸을 것이다. 고작 팰로우 하나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응급실마저 내팽개치고 오지랖만 부리려는 예진우를 비웃으며 비난하고 만다.


도대체 어떻게 끝맺으려는 것인지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다. 대충 예상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모든 예상이 빗나갔던 탓에. 분위기는 그럴싸하다. 조금씩 더 거대하게 다가오는 화정그룹의 의도에 어쩔 줄 몰라하는 의사들의 모습이 긴박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결국 해결되어야 한다. 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드라마를 끝맺는다는 것이다. 시청률이 낮아서 조기종영하는 것도 아닐 테니. 기대하면서도 답답하다. 내내 보면서도 느꼈던 답답함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성공했다 할 것이다.


어떻게 저 거대한 화정을 상대로 아주 작게나마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 매번 당하기만 하다가 어떻게 한 번은 저들을 좌절케 할 수 있을까. 작은 희망이나마 남길 수 있을까. 그리고 예선우는. 그리고 이노을은. 예진우의 이제 겨우 시작된 사랑은. 남은 시간이 너무 없다. 그래서 한 편으로 불안하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