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 차라리 빼앗기더라도 내어주지 않기 위해서

까칠부 2018. 9. 10. 07:04

드디어 이완익이 죽었다. 차라리 허무할 정도다. 악역의 최후다운 대단히 멋지고 비장한 장면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냥 죽었고 그냥 사라졌다. 대한제국도 일본도 언제 그런 인물이 있었느냐는 듯 그냥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하긴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냥 피래미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당연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만큼 어디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저 주변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토 히로부미 같은 거물이 죽었어도 역사는 정해진대로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다.


다만 하루, 그 하루에 더한 하루, 유진 초이도 이정문에게 말하고 있었다. 왕에게 전하라. 한 번 포기하고 내주면 다시 되찾기 어렵다. 차라리 싸우다 빼앗기더라도 그냥 내어주지는 말라. 그래서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굳이 이완익을 죽이는 것이다. 절에서 죽인 일본군은 전체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일부일 뿐이다. 모리 다카시가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직접 죽인 일본군만 무려 3명이다. 그렇게 자국 군인의 목숨이 아깝고 소중했다면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일본인도 아닌 조선인 하나 죽었다고 일본의 계획이 바뀌거나 할 리 없다. 그러나 이대로 손놓고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나라를 빼앗길 때까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총을 들고,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일어나 나가 싸우려는 것이다. 제과점 주인마저 의병의 일원이었다. 나루터 주막의 주모에, 포수에, 도공에, 물장수에, 명문가 규수에, 이번에는 그저 지나치는 엑스트라라 여겼던 제과점 주인까지. 황제의 명을 받드는 제국익문사의 일원인 히나와는 결이 다르다. 황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단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에 갑남을녀 장삼이사 필부필부 대수로울 것 없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것이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이대로 손놓고 포기한 채 지켜만 볼 수 없기에 목숨까지 내걸고 나서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싸움은 한없이 서글프고 비장하다.


솔직히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고종이 저렇게 멋진 임금이 아니다. 누구보다 단호하게 공권력에 사적으로 저항하려는 의병의 토벌을 지시한 것이 바로 고종이었다. 민중의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의 피해마저 뒤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드라마가 더 서글퍼지니까. 황제마저 그런 인물이라면 더욱 그들이 대한제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의미가 약해질 테니까. 고작 그런 임금을 위해 고사홍이 죽고 고애신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그나마 황제라도 황제 같아야. 황제를 지키는 충신이라도 한 명 정도는 있어야. 아마도 이정문의 모델일 이용익 또한 한 때 수탈이 심해서 민란의 원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파직까지 당했던 인물이었다. 참 어렵다. 이렇게까지 대한제국을 지키는 이유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가.


하지만 역사드라마가 아니니까. 엄밀하게 역사의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실들을 구성해서 전하고자 하는 드라마가 아닐 테니까. 로맨스다. 사랑드라마다. 드라마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역사의 격동기에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휩쓸리고 마는 고애신과 유진 초이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일 것이다. 역사가 얼마나 비극적인가만 묘사하면 된다. 그럼에도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비장하고 간절했는가 보여줄 수 있으면 된다. 전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의병과 비밀결사 역시 황은산이 이끄는 의병이라는 이름 하나에 모두 압축된다. 그러므로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일본의 수많은 시도와 노력들은 모두 하야시와 모리 다카시 두 인물의 역할로 대체된다. 배경같은 것이다. 연극 무대 뒤에 세워진 기둥이나 가구, 혹은 스크린에 비친 풍경 같은 것이다. 굳이 설악산에 삼나무 숲이 있다고 문제삼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다.


이완익이 죽고 하야기 공사가 한일의정서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온다. 일본의 편에서 암약하던 첩자들을 색출하는 사이 일본의 계획은 노골화되어 한일의정서가 조인되고 이정문을 낭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납치된다. 이정문을 납치한 것이 구동매가 속해 있는 무신회의 회주가 이끄는 낭인들이었다. 구동매도 선택해야 한다. 회주의 경고처럼 조선인 구동매인가, 아니면 무신회 낭인인 이시다 쇼인가. 선택은 오래전에 끝났다. 회주가 우려한대로 자기보다 더 우선해서 지켜야 하는 대상이 생겨나면서. 반드시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이정문을 죽이겠다면서 히나 역시 제국익문사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려 한다.


좋은 사람일수록 일찍 죽는다. 옳고 바른 길을 가려는 사람일수록 난세에 더 빨리 죽을 수밖에 없다. 난세를 살아남는 것은 오로지 자신이 살 길만을 찾는 기회주의자들일 것이다. 과거 일제강점기에도 그랬고 군사독재시절에도 그랬었다. 아직 순수한 그들이었기에. 오로지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바로 그들이었기에. 대단한 애국심같은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지 한 사람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이라도. 그저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를 위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것일지라도. 차라리 조금만 더 비겁했더라면. 그래서 시대를 외면하고, 사랑을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의 안전만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고애신이 말했던 것처럼 이 또한 그들의 낭만인지도 모른다. 시대를 위해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건다.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할지라도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을 불꽃처럼 화려하게 충실하게 살다 간다.


이정문을 구하기 위해 황제의 명으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필 바로 그때 유진 초이 또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편을 들기로 한 미국 정부의 명령으로 본국으로 소환되고 있었다. 유진 초이를 이용한다. 유진 초이 또한 알면서도 고애신에게 이용당해 준다. 이용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이용당해 주고, 이용당해 줄 것을 알면서도 이용하려 한다. 그것이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상처가 될 것을 알면서도 그리 행동할 수밖에 없다. 핑계였을까? 그렇게라도 고애신은 다시 유진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유진은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역시나 일본에서 유학한 보람이 있는지 김희성이 정확히 꿰뚫어 본다. 사실 러일전쟁은 일본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국력에서 러시아와 일본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 한 나라를 막기 위해 거의 모든 유럽이 손을 잡고 있던 상황이었다. 단지 러시아에게 러일전쟁은 국지전이었고 일본에게 러일전쟁은 총력전이었다. 더구나 러시아를 약화시키기 위해 영국과 미국이 배후에서 돕고 있었다. 러시아 함대의 발목을 잡고 일본에 막대한 차관까지 제공해주고 있었다. 러시아에 대한 많은 정보가 이들 영국과 미국에 의해 일본에 전해지고 있었다. 러시아 내부의 여러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전쟁에 전력을 기울일 수 없었던 러시아는 중도에서 포기하게 되고 그것이 일본의 승리로 이름지어진 것이었다. 오죽하면 전쟁에 이기고도 얻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어서 일본 내부에서 폭동까지 일어났겠는가. 사실상 조선 말고 전쟁에서 일본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 시기 미국은 일본의 편이었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뒤 일본의 조선지배를 인정하는 가츠라 테프트 밀약이 일본과 미국 사이에 체결되고 있었다.


아무튼 수렁과도 같이 갈수록 답답하고 암울해지기만 하는 시기다. 어차피 대한제국은 망한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아무리 황은산을 비롯한 의병들이 나서서 발악을 해도. 고애신이 아무리 총을 들고 발버둥쳐도. 이미 정해진 운명은 바뀔 수 없다. 이미 정해진 역사는 바꿀 수 없다. 미국인인 이상 유진 또한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 모리 다카시는 조선주둔군 사령관이 되어 조선에 주둔하는 일본군에 대한 전권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드라마속 인물들처럼 시청자 역시 무력감과 좌절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다만 하나라도 위로삼을 수 있는 통쾌함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필 구한말이다. 하필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해가던 시기다. 그래도 해피엔드를 기대해 본다. 실제 역사에서 비극이었으니 드라마에서라도 행복할 수 있기를. 온전한 행복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그들이 웃을 수 있기만을. 일본으로 건너간다. 유진은 미국으로 돌아간다. 구동매는 선택한다. 어쩌면 김희성은 조선에 남게 된다. 운명은 가혹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운명마저 딛고 앞으로 나간다. 몸은 죽고 난도질되어도 그들은 운명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자신의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그 치열함이 부럽지는 않다. 너무 고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