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렇게 착하고 올곧은 사람을 오히려 원망하고 비난하게 되는 상황이 불편하고 불쾌하다. 분명 지금 상황에서 주인공의 잘못을 증언하는 것이 옳다. 주인공의 의도를 훼방놓고 좌절시켜 끝내 위기로 내몰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주인공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검찰에서 증언함으로써 법적인 책임까지 지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면 주인공의 복수와 응징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 아닌가. 여기서 더 궁지로 내몰리면 선민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한 편으로 다행스러우면서 한 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하긴 선민식도 처음부터 지금같은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열등감이. 도저히 어쩌지 못할 좌절과 절망이. 그래서 어떻게든 무엇이든 희망을 붙잡으려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그저 일상으로 하는 행동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서야 겨우 가능해지고는 한다. 자신의 양심과 의사로서의 신념을 지키려 해도 현실은 때로 그마저도 대가로 내놓으라 강요하고는 한다. 동생의 행방을 알고 싶다. 동생이 사라진 진실을 알고 싶다. 그 모든 비밀을 나이제가 알고 있다. 나이제에게서 들어야만 한다. 다행히 나이제의 계획은 사이코패스 범죄자 김석우를 폐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했었다. 범죄자를 형집행정지로 풀어주는 것은 죄이지만 그 과정에서 폐인이 된 김석우의 소식이 그나마 죄책감을 덜어준다. 그의 편에 설 수 있게 해 준다.
전에 없이 한소금의 선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 예민하게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착하고 올곧은 캐릭터임을 알기에. 의사로서 정의와 신념을 굳게 지키고자 하는 인물임을 알았기에. 그럼에도 온전히 그것들을 지키기만 할 수 없는 사정들이 있음도 알고 있었다. 때로 주인공인 나이제의 입장에서. 그의 옳지 못한 계획들을 응원해야만 하는 비틀린 상황에 이입해서. 그러나 한 편으로 그마저도 훼방놓고 좌절시켜야 하는 그 올바름을 응원하게도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소금은 현실과 타협하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동생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그냥 알면 되는 그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그녀가 치러야만 했던 댓가의 무게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굳이 지루한 회상을 통해서 나이제와 한빛의 사이를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한빛의 실종에 감춰진 진실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위로이기도 하다. 혹은 변명일 것이다. 그렇게 의사로서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뒤로 한 책임을 덜어주게 된다.
반격은 시작된다. 아니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을 것이다. 검찰이 자신을 수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선민식의 과거 범죄들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한소금도 끌어들였을 것이다. 전혀 그런 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임을 알면서도. 의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려가면서까지 범죄를 도울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리고 우연인 척 단서까지 넘겨주어 검사 정의식으로 하여금 선민식을 잡도록 만든다. 하필 이재준이 나이제가 아닌 선민식을 선택한 바로 그 다음 모이라가 나이제의 편에서 선민식을 치도록 돕는다. 오히려 선민식의 배후가 크고 강할수록 더 불타오르는 정의감인지 공명심인지 모를 정의식의 의욕과 열정이 선민식을 향한다. 예고편을 보지 않았다면 더 흥미로웠을 텐데. 다만 선민식이 약을 빼돌리는 현장을 뒤쫓는 장면은 조금 조잡한 감이 있었다. 그나마 고조되던 긴장을 여지없이 흐트릴만큼 허술했다. 역시 공중파 드라마구나 싶었다.
이렇게 결국 선민식이 파놓은 함정을 거꾸로 이용해서 잡고 나면 다음 대상은 누구일까? 역시 한빛이 귓말로 전한 그 이름일 것이다. 나이제와 한소금을 제외하고 한빛의 이름을 말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어떤 이상을 보여준다. 술을 마시던 도중 비틀거리는 것이 병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게 한다. 그것과 관계가 있을까. 어쩌면 마지막에 그의 병과 나이제가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어떤 비밀이 한빛을 교도소로 들어가게 하고, 다시 교도소에서 나오게 만들며, 이재준으로 하여금 한소금의 주위를 맴돌게 하는가. 그리고 나이제가 마지막에 잡고자 하는 그 대상은 누구일 것인가. 복수일까? 정의일까? 복수는 가깝고 정의는 어렵다. 한소금의 선택은 결국 어떤 것일까? 첫승리가 바로 앞으로 다가오며 기대는 더 커진다. 더 흥미로워진다.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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