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란 마음에 지옥을 품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어차피 전장에 나가면 이겨도 죽고 지면 더 많이 죽는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결정되고, 자신의 판단 하나에 시체와 부상자가 넘쳐난다. 시체가 되어 스러진 이들의 원망과 피투성이가 되어 서 있는 산 사람들의 불안이 오로지 자신 한 사람에게로 모인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차라리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이뤄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신은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가족이라도 벨 수 있다. 가장 사랑하는 이의 목숨마저 수단으로 도구로 내던질 수 있다. 그만큼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책임의 무게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게 지워진 책임과 사명의 무게를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라질 목숨과 그로 인해 바뀌고 말 운명들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더 독해지고 더 악해져야만 한다. 기꺼이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죽으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이미 죽은 이들에게서 냉정히 돌아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남은 이들을 이끌고 앞으로 다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각각의 목숨과 운명은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전장에서는 독하고 악한 사람들만 살아남는다. 그런 리더가 이끄는 집단만이 수많은 희생을 딛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상이란 악이다. 정의란 독이다. 이상이 사람을 죽이고 정의가 사람을 병들게 한다. 차라리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더라면. 옳지 못한 것을 바꾸겠다 나서지만 않았더라도. 부당하고 부정한 것을 알면서도 그저 말없이 참고 견디려고만 했더라면. 그랬으면 차라리 사람은 덜 죽었을까? 어차피 이기지 못할 싸움에 휘말려 괜한 목숨을 잃을 일은 없었을까? 그로 인해 수많은 농민이 죽고, 더구나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으로 들어오며 마침내 나라 전체가 외국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그런 미래를 안다고 참고 있을 수만 없는 의분이. 설사 그런 미래를 알아도 어쩔 수 없이 일어서야만 했던 그 절박함이. 그래서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사연을 가진 이들의 기대와 바람을 오로지 감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나가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멈춰서는 안된다. 그저 말 몇 마디로 스쳐지나가는 패전의 소식은 그래서 더 참혹하고 그래서 더 냉혹하다. 그것은 장군 전봉준이 견뎌야 하는 마음의 지옥이었다.
그런 이상에 동의했으니까. 그래서 모두와 함께 싸우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자신의 한 순간 망설임에 소중한 동료 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직 어린 나이의 그가 품었던 꿈과 간직한 추억들이 한순간 거품처럼 눈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악귀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연인도 피를 나눈 가족도 없는 독종이 되어야 한다. 아들을 위해 무지렁이같이 순하던 노비 유월은 비로소 운명이라 여기던 신분을 딛고 주인이라 부르던 이와 마주선다. 그리고 그것을 백이현은 백이강보다 벌써 먼저 깨닫고 있었다. 뜻밖에 여렸기 때문이다. 인간의 악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악에 쉽게 매혹되고 말았다. 그것은 황석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에 반해 이미 한참 어릴 적부터 인간의 악과 욕망의 한가운데 있던 백이강은 그런 가운데서도 인간의 추악함마저 긍정할 수 있는 강함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그의 마음은 전장을 받아들이고 그에 길들여지게 된 것이었다. 온전히 그는 전장의 악에 물들 수 있을 것인가. 전봉준처럼 그 그 모든 희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강화도조약을 맺을 당시도 조선의 관리들은 국제조약이라는 것에 대해 무지했었다. 원래 동아시아의 질서 자체가 그랬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대등한 관계라기보다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세계에 다른 나라들이 종속되어 있는 체계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신을 대신한 황제가 있었다. 황제 한 사람의 결심이 모든 조약을 대신한다. 모든 약속을 합의를 대신한다. 황제의 관용과 은혜야 말로 그같은 동아시아의 체계와 질서를 존속케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지금도 상당부분 남아 있어서 미국 이외의 나라들과의 외교에 대해 무지한 경우를 흔히 찾아보게 된다. 심지어 전문외교관조차 외교의 상식이나 관례에 무지한 채 관성으로 외교를 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외교에 대한 치밀함과 엄밀함이 부족하다. 하물며 겨우 근대적인 국제관계에 눈뜨기 시작한 조선말에야.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조선으로 들어온다. 누구보다 조정의 관리들이 그들의 탐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조선의 백성들도 대부분 알고 있을 터였다.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어차피 동학군이 관군을 이길 수 없을 것이기에. 무기나 훈련정도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전략과 전술 같은 지휘관의 역량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당장은 민심이 동학군을 따르고 있으니 일시적이고 국지적은 승리는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조선에서 큰 반란이 아주 없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중앙군에 승리하여 정권을 바꾼 예는 없었다. 반란이 성공한 경우는 그 중앙군이 반란에 동조한 경우 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관군에 협력하는 것이 백이강의 목숨이라도 살릴 수 있는 길은 아닐까. 하지만 그 순간 백이강은 대장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일깨우고 있었다. 도채비 백이현을 잡기 위한 길목에서 하필 홍계훈을 만나고 돌아가는 송자인을 보게 된다. 운명이란 것이다. 그토록 의좋던 형제가 서로 적으로 마주하게 된 것처럼. 서로의 존재도 모른 채 쫓고 쫓기게 된 상황처럼. 더 절박하고 더 급한 사람이 이긴다. 살아야 하는 사람이 살아남고 다른 생각이 앞서면 죽게 된다. 그들은 다시 잔혹한 운명에 휘말리게 된다.
액션보다는 그런 무심함이 더욱 인간의 운명과 역사의 참혹함을 곱씹게 만든다. 그럼에도 황석주를 살려보낸 어쩌면 백이현 자신도 알지 못할 한 가닥 진심이 희망을 가지게 한다. 여지를 남긴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서로를 걱정하며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 동학이 패배했다고 농민들의 삶까지 끝장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라가 망했다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선이 망해도,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이 망해도 사람들은 살아있을 것이다. 더이상 한국인이라 불리지 않게 되었어도 사람들은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죽어도 살고 살아서 산다. 살아있기에 사람은 살아간다. 단 하나의 진실이다. 역사와 인간이 가르쳐주는. 죽음보다 더 지독한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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