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녹두꽃 - 혼란한 시대를 사는 군상들을 위해

까칠부 2019. 5. 25. 11:08

그러고보면 최근 역사드라마라고 하면 거의가 왕의 이야기였다. 왕과 주변의 이야기였다. 아마 그 부분에 대해 한 번 썼던 적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전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개인들의 이야기도 적잖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역사드라마라면 왕이나 그 주변의, 더구나 왕권과 신권이라는 뻔한 주제의 반복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역사란 단지 왕의 이야기일 뿐인가.


어쩌면 역사의 큰 사건이었던 동학농민전쟁조차 드라마를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진짜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꿈과 바람과 좌절과 분노와 원망과 욕망과 그리고 사랑.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진사 황석주도, 아전 백가도, 그 아들인 이현도, 그나마 얼자인 이강도, 보부상의 딸인 송자인까지. 그래서 오히려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전봉준은 마치 배경처럼 평면으로 그려진다. 그는 영웅이다. 당시 시대의 바람을 등에 업고 일어섰던 일세의 영웅이다. 그를 바라고 수많은 사람이 모이고, 혹은 그를 적대하며 싸웠던 것이었다. 그렇게 모여든 시대의 군상들이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들인 것이다.


권력의 부패와 정치의 타락이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오랜동안 유지되어 온 질서가 흔들리며 개인의 삶까지 혼란에 빠지고 만다. 당연하던 것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고 지켜져야 했던 것들이 지켜지지 않게 된다. 신분질서가 동요되고, 그나마 알량하게 지켜지던 도의와 원칙들도 사라진다. 남는 것은 너무나 원초적인 지독한 욕망들 뿐이다. 세상이 평화로웠다면 이방 백가도 그렇게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고, 진사 황석주 역시 굳이 자기 양심을 저버리지 않아도 중인의 자식인 백이현과 그렇게 얽힐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보부상의 자식은 장사에 나서고, 중인의 자식은 중인의 신분을 잇고, 중인의 얼자라면 또 그에 어울리는 길을 찾는다. 지금 기준으로는 불합리해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고 상식이었을 터다. 그런데 당연한 일상과 상식들이 무너지며 그들은 혼란속에 내던져지게 된다. 선택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전장과도 닮았을 것이다. 백이현이 전장에서 마주한 현실이었다. 황석주가 전장을 통해 깨닫고 만 진실이었다. 자신의 그릇이었다. 자신의 존재였다. 자신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자신이란 존재가 얼마나 하잘 것 없는가. 그동안 자신이 지켜온 신념과 양심과 자존심까지. 자신이 쌓아온 학식과 지성과 드높은 이상마저도. 전봉준과도 대등하게 논쟁하던 젊은 지식인 백이현은 그곳에 없었다. 하긴 죄인으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하던 그곳에도 명성높은 선비 황석주는 없었다. 그때 그 지옥과도 같은 혼란 속에서 자신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어떤 결정을 내렸었는가. 그런 후회와 좌절과 절망과 체념이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낸다. 그곳에는 더이상 백이현도 황석주도 없었다. 그러면 그곳에 백이강이나 송자인은 있을까?


오히려 혼란 속에서 자신을 찾아간다. 당연하게 여겼던 자신의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중인의, 그것도 노비인 어미가 겁탈당해 태어난 얼자였었다. 평화로운 시대에도 백이강에게 밝은 미래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혼란스러운 시대이니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전은 노려 볼 수 있었다. 그조차도 더 큰 혼란 속에서 모든 것을 지우고 진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려 한다. 거시기가 아닌 원래 자신의 이름 백이강을 되찾기 위해서. 더이상 과거의 자신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과 어머니를 위해서다. 분명 혼란한 시대는 누군가에게 위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백이강은 그것을 기회로 삼았다. 송자인이 백이강에게서 본 것도 바로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다. 저마다 자신의 이유를 가지고. 자기만의 사연을 가지고.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서.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서. 그러면서 사랑하고 그러면서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그러면서 서로 싸우고 그리고 결국에 함께 살아간다. 서로 죽이고자 칼을 겨누고 총을 겨눈 경군과 동학군마저 결국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간 이들이다. 그래서 군상이다. 그런 드라마일 터다. 더럽고 헤진 옷가지처럼 그렇게 너덜너덜 짓이겨진 인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이 그리 보는 내내 답답하고 안타깝고 애처로운, 한 편으로 통쾌하기를 바라는 이유인지 모른다. 인간이란 그토록 한없이 가엾고 약한 존재인 것이다.


전쟁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인 것이다. 시대보다 더 중요한 주제들인 것이다. 백이강이 송자인을 사랑하고 송자인이 백이강을 사랑하는 바로 그것이. 백이현이 황석주를 원망하고 황석주가 백이현의 원망을 받아들이는 그것이. 그 순간 그들이 느꼈을 감정과 끝내 그들이 선택한 그 길들이 의미하는 바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죽이고 누군가는 시체로 눕고 누군가는 그를 딛고 서 있다. 그것이 시대고 그것이 인간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