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가진 이들의 선의에 기대면 보수가 되는 것이고, 힘이 없는 이들의 선의를 믿는다면 진보가 된다. 그러면 어느 쪽의 선의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혁명이란 자기가 힘을 가진 이가 되어 위로부터 선의를 베푸는 것이다. 감히 자신의 선의를 막는 모든 것을 치우고 지움으로써 오로지 자신의 선의가 자신의 의지만으로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 그 혁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필 드라마를 보기 전 끄적이던 글의 주제였다. 그래서 드라마에 대한 감상으로 남겨두었다 적는다. 처음에는 황진사의 선의를 믿었고, 다음에는 동학의 선의를 믿었다. 어쩌면 황진사가 중인 출신인 자신을 알아봐 주었던 것처럼 조선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전봉준과 백이강에게서 보았던 열망처럼 자신 역시 별 것 없는 이들과 더불어 조선을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진사의 선의란 그저 위선이었고, 동학의 이상이란 것 역시 단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시이고 원망이었다.
강자의 오만은 힘을 잃었을 때 비루함으로 드러난다. 약자의 겸손은 힘을 가졌을 때 그 무도함으로 나타난다. 원래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힘을 가졌기에 선의마저 허영으로 치장할 수 있고, 힘이 없기에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는 비굴함과 비루함이 겸손으로 가려진다. 그래서 허영을 부릴 힘이 사라지고, 겸손으로 가릴 필요가 없어질 때 인간은 비로소 감춰진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중국의 고전을 보면 사람을 평가할 때 먼저 재물과 관직을 주어보라 말하고 있기도 하다. 차라리 가진 것을 잃는 것보다 없던 것이 생겼을 때 사람은 더 쉽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어디까지 자신이 가진 힘을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인가.
그러고보면 백이현 역시 아버지 백가가 가진 힘을 배경으로 안주해 있었다. 백가가 가진 고부에서의 힘이 젊은 이상가 백이현이라는 존재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그를 지켜준 것은 송자경에게서 샀던 무라타 소총이었으며, 전쟁이 끝나고 잠시 동학이라는 이름 뒤에 숨었던 자신을 위기로부터 구해 준 것도 그 무라타 소총이었다. 한 자루 소총에 의지해 자신을 막아서는 이들을 거침없이 쏘아 죽이는 전장의 도채비야 말로 백이현이라는 정체성이 아닐까. 아전의 얼자라는 신분에 동학의 동지들과 정체성을 같이 할 수 있었던 이복형 백이강에 비해 백이현은 양반도 중인도 백성도 아닌 홀로 외떨어진 존재였으니까.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면 그가 기대고 그가 속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런 점에서 마침 바다로부터 떠내려온 청군의 깃발은 백이현에게 운명과 같았을 것이다. 그가 기댈 곳은 문명 뿐이었다. 처음 나선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며 자신을 인정받게 해 준 한 자루 소총처럼. 원래 혁명에 인간 같은 건 없다. 오로지 칼날처럼 선명한 벼려진 이상만이 있을 뿐이다. 기꺼이 그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기꺼이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 파괴없는 혁명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국가든 민족이든 전통이든 문화든 도덕이든 윤리든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 위에 새롭게 쌓아올려야 한다.
한양의 한복판에서 백이강 역시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마침내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힘으로 조선을 굴복시키고 있었다. 여전히 조선의 군사들은 치열하게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 있었지만 왕인 고종의 신병이 넘어가며 결국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심지어 고종을 구하고자 목숨걸고 궁궐로 뛰어든 이들마저 있었음에도, 그러나 고작 몇몇의 분투만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조선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었다. 백이강이 실제로 경복궁으로 뛰어들었든 아니든. 송자인이 실제 명성황후의 밀명을 받고 일본공사의 무관 다케다와 만났든 아니든. 그러니까 백이현이 고부에서 동학과 양반을 몇 명이나 죽였든. 그럼에도 가만 손놓고 있을 수는 없기에 다케다에 의해 잡히기도 하고, 대원군을 통해 왕과 만나기도 한다. 드라마는 그래서 역사보다 더 잔인하다. 꼭 저렇게 여지를 남긴다. 아닐 것을 알면서도.
갑오왜란에 대한 오해가 드라마를 통해 바로잡힌 부분은 눈여겨 볼 만하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비군은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무기를 버린 채 도망쳤다고 알려지고 있었다. 저항도 꽤 치열했고 방어전면을 좁히고 고종에 대한 보호에만 집중했다면 장기전이 되어 일본군의 의도를 좌절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지 못한 것이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의 한계였을 테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피흘리며 싸우고 어떤 이들은 또한 비참하게 죽어간다. 그래서 일본군의 포로가 된 왕의 비루함과 나약함이 더 비참하기도 하다.
확실히 백이강에 비해 백이현은 상당히 입체적인, 그래서 더욱 흥미가 가는 캐릭터일 것이다. 시청자가 느끼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백이강에 비해 백이현은 역사와 인간의 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부는 아지겠지만 차라리 배신마저 이상이라 여겼을 적지 않은 수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이 땅의 지식인들을 위한 변명일 것이다. 절망의 시대에 지식인들의 이상은 어떻게 꺾이고 변질되는가. 인간에 대한 회의를 더해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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