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란 항상 정의로운가? 진실이란 반드시 정의로워야 하는가? 정의롭기에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빠지는 함정일 것이다. 진실이 악을 응징하고 선을 구할 것이다. 그러면 그 악과 선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선도 악도 없는 현실에서 진실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드라마의 주제를 간명하게 보여준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얼핏 부유한 남편의 가족과 가난한 아내의 가족만 보면 관성적인 선입견부터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부유하기에 오만하고 무례했던 만큼 가난하기에 비루하고 비열했다. 남편과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아내를 끝까지 믿지 못했고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었다. 처음 두 사람의 진심이 무엇이었는가는 이제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배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세상에 서로를 배신하고 파국을 맞는 수많은 부부들 가운데 단 한 순간도 진심이 아니었었을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결국은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다.
누구도 동정할 수 없다. 따라서 누구도 편들 수 없다. 과연 자신들이 밝혀낸 진실이 이들 가운데 누구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누구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러면 기분이 좋을까. 후련하고 산뜻해질까. 그래서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자기들 할 일을 한다. 그게 전부다. 진실을 밝히는 것. 며칠씩 시신을 부검하고 사고난 자동차를 헤집으며 단서를 찾아내려 한 진짜 이유였다. 밤을 새가며 서류를 뒤지고 정신없이 발로 뛰며 증거를 찾는 이유인 것이다. 상사의 압력에도 아랑곳없이, 거짓말하며 때로 윽박지르기까지 하는 피의자들과 감정을 소모해가면서. 그리고 끝이다. 사고가 아닌 살인이었고 살인자는 죽었다. 나머지는 남은 사람들끼리.
한 편으로는 이런 것이 진실인가 씁쓸하고, 그래서 한 편으로 이런 것이 진실이구나 통쾌하기도 하다. 둘은 같은 감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은 유가족끼리 서로 악다구니를 쓰든 말든. 부검의는 부검을 하고, 검찰은 진실을 쫓고, 그리고 상부의 눈치를 보던 검찰을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진실이 반가운 이들과 진실이 두려운 이들과 진실이 반갑지도 두렵지도 않은 그들. 진실은 그 자체로 추구하는 것이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이들이 이와 같다면 얼마나 세상은 살벌해질까. 하지만 그런 살벌함을 바라게 되는 것은 비단 나 한 사람 뿐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연속살인. 의사 장철은 연속살인범과, 그리고 마약운반책의 몸을 갈라 안을 확인했던 그 인물과 어떤 관계인 것일까. 살인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연속살인? 아니면 다른 비밀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갈대철이 그에게 전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흔적들이 쓸데없다. 한 마디로 그 안에서 어떤 목적성을 찾을 수 없다. 그 말은 곧 어떤 의도를 가진 작위성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그 작위성의 목적은 무엇일까? 부검의는 시신을 통해 단서를 찾고 수사관들은 발로 뛰며 증거를 쫓는다. 정석인데 살인도 충격적이고 그 수법 속에 감춰놓은 비밀 역시 국과수에 어울릴 만큼 정교하고 치밀하다.
그냥 출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떤 의도와 목적이 있었겠지. 그래도 설마. 아니 아직은 설마. 땅을 딛고 사는 군상들의 질척거리는 감상보다 세상과 벗어난 듯한 신랄한 목적성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공중파 드라마 답지 않다. 시즌1까지 덕분에 뒤늦게 찾아보는 중이다. 이건 안 보고 못 배긴다.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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