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삼겹살과 자영업에 대한 허튼 생각들

까칠부 2019. 6. 24. 11:30

내가 내 돈 내고 절대 안 사먹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삼겹살이다.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을 내 돈 주고, 그것도 비싼 값을 치러가며 사먹고 싶지는 않다. 양념도 조리도 되어 있지 않은 고기를 내가 일일이 굽는 수고까지 해가며 먹어야 하는데 그만한 값을 치를 이유가 있는가.


어려서의 기억도 한 몫 한다. 원래 어려서 고깃집에서 고기를 굽는다면 양념한 고기였다.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고깃집에서나 가능한 양념이 깊게 밴 고기의 맛이야 말로 고깃집을 찾는 이유였다. 그래서 내가 대학 다닐 때까지 삼겹살이란 그저 없는 돈에 고기맛이나 보자고 싼맛에 사먹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비단 삼겹살만이 아닌 양념이 되어 있지 않은 생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것은 집에서 간편히 먹을 때나 그러는 것이었다. 대충 석쇠에 쇠고기 구워서 기름장에 찍어 소주 한 잔 곁들이는 게 또 맛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런데 기억을 더듬기에는 고깃집의 발전까지 일일이 살필 정도로 어렸을 적 집안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었다. 그래도 어쨌든 90년대까지도 일단 나가서 사먹는다고 하면 대개는 양념된 불고기를 먹었던 것 같다. 삼겹살은 없는 돈에 아껴가며 술 먹을 때 주로 사먹고는 했었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삼겹살을 사먹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일 터였다. 월급 받아서 집에 갖다주고 겨우 받는 용돈으로 한 잔 생각나면 찾는 곳이 바로 삼겹살집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목에 때를 벗긴다는 말이었을 터다. 삼겹살의 기름으로 목에 답답한 것을 씻어낸다. 그러니 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도대체 어쩌다 삼겹살 값이 이리 비싸졌는가.


첫째는 아마 1990년대 경제성장의 결과로 외식산업이 급속히 커져가는 와중이었다는 것과 둘째로는 역시나 IMF 당시 명예퇴직당하고 퇴직금 받아서 창업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한 마디로 시장에 수요가 늘면서 전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불량한 창업도 얼마든지 가능했었고, 다른 여러 요인까지 겹치며 오히려 그것이 시장에서 대세가 되고 만 것이었다. 당연히 고기를 양념에 재워 구으려면 양념에 대한 노하우가 필요했지만 양념도 않은 생고기를 그것도 손님이 직접 굽게 만들면 고기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한국에 자영업자가 넘쳐나는 또 하나 이유일 것이다. 아무런 기술도 경험도 없이 무작정 뛰어들어도 어떻게든 된다. 좋은 고기를 공급할 곳을 찾고 목만 괜찮으면 전혀 문외한도 문제없이 자영업에 뛰어들 수 있다.


실제 고깃집이라고 실제 가보면 나오는 것이란 달랑 고기와 그다지 솜씨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밑반찬에 쌈채소가 전부다. 그냥 집에서 혼자 해먹어도 되는 것들이다. 기름 좀 튀고 냄새 좀 나겠지만 그냥 거의 자릿값이라 해도 좋은 정도로 집에서 해먹는 것과 차별성이 전혀 없다. 그걸 도대체 왜 사먹느냐는 말이다. 값이라도 싸면 모르겠는데 값도 무지 비싸다. 그러니 길을 걷다 보면 보이느니 식당이고 그 가운데 대부분이 또 고깃집인 것이다. 그런데 또 장사가 되면 얼마나 되겠는가.


한국에서 유독 자영업자도 많고 망해나가는 자영업자의 수도 많은 것에는 이런 배경도 한 몫 하고 있지 않겠는가. 고깃집 뿐만 아니라 대부분 음식점에서 파는 한식들의 경우 가정요리의 연장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서 해먹을 수 있으면 굳이 식당까지 찾아가서 사먹을 이유가 없는 것들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음식점들이 회사가 있는 건물이나 거리를 중심으로 몰려 있는 경우가 많다. 집밥을 먹을 수 없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주로 매출을 올리는 구조인 것이다. 주 52시간제가 이들 음식점들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이유다. 직장인들이 일과가 끝나면 바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니 매출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근처의 직장인이 아닌 사람들이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가 사먹을만한 가치가 있는 곳도 그다지 많지 않다.


즉 대부분 음식점들에는 반드시 거기서 먹어야만 하는 당위성이나 필수성이 떨어진다. 그냥 있으면 먹는 것이다. 있으니까 먹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대중들은 특히 원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냉면의 원가가 얼마고, 짜장면의 원가는 얼마다. 원래 요리란 자체는 재료가 아닌 요리사의 솜씨에 돈을 지불하는 것일 터다. 요리를 만드는 이의 특별함에 원가 이상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너도나도 경쟁하려 하니 대중도 그 이상의 비용을 지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 원가율이 높아지는 만큼 이윤은 떨어진다. 당장 새롭게 창업하는 이들이 늘며 유행이 바뀌면 그에 맞춰 변화를 꾀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여력 자체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변화없이 그대로 영업을 계속할만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음식점은 매우 드물다. 어쩌면 이 또한 식당들이 너무나 쉽게 망해나가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사실 한국 자영업의 높은 비율은 벌써 10년 전부터 문제로 지적되어 왔었다. 더구나 자영업 가운데서도 소비성 자영업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음식점의 비중이 너무 높다. 한정된 시장을 너무 많은 자영업자들이 나눠가져야 하는 것이다. 부실화될 수밖에 없다. 높아지는 가계부채에는 그런 현실 또한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자영업이라는 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닌데. 그래서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영역보다 그저 만만한 음식점부터 노리고 본다. 그를 가능케 하는 것이 조리가 필요치 않은 고깃집들인 것이고. 혹은 집안에서 해먹던 음식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한식들일 것이다. 그런 만큼 처음부터 높은 이익률을 기대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도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망해 버린다. 커녕 본궤도에도 오르기 전에 그대로 망해 사라진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조금 전 너무 맛없는 순대국을 먹고 온 때문일 것이다. 집에서 내가 직접 해먹는 순대국보다도 맛없었다. 내장 특유의 노린내는 안나는데 그만큼 국물이 허여멀겋다. 그나마 순대국은 나름대로 솜씨가 있어야 하는 음식일 것이다. 고깃집이야. 물론 내 돈 내고는 절대 안 가지만 남의 돈으로는 어차피 내 돈 아니니 곧잘 따라 다닌다. 그냥 고기만 있으면 되는데.


그냥 들게 된 생각이다. 어째서 삼겹살집은 이렇게 많은가. 그리고 또 삼겹살은 이렇게 비싼가. 돈이 없어 그래도 고기맛이나 보자고 먹던 고기가 이제는 상당히 부담스런 가격이 되었다. 오히려 양념된 고기를 굽는 것이 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차라리 집에서 양념에 재워 구워먹는다. 그냥 혼자 생각이다. 맞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