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이 아직 예능에 출연하기 전 부활이 콘서트를 열면 작은 소극장조차 대부분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아예 몇 년 동안 멤버들이 개인활동을 하며 밴드의 이름만 겨우 유지하는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부활은 아예 공연을 하지 않으면 않았지 7만원이라는 티켓값을 내리려 하지 않았었다. 관객이 들지 않는다고 티켓값을 내리면 그나마 자신들보다 못한 다른 밴드들이 더 어려워진다.
이승환도 예능에 출연해서 공연시장의 불황으로 공연장을 모두 채우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도 티켓값을 내릴 수는 없는 사정을 이야기한 바 있었다. 그래도 자기만한 위상을 가진 선배들이 티켓값을 내리면 그보다 못한 후배들은 더 낮은 값에 공연을 해야만 한다. 이승환이 차라리 공연을 포기하더라도 티켓값을 내릴 수 없는 것은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에 대한 예우이며 선배로서의 책임이기도 했던 것이다.
여러 해 전 통큰치킨과 관련한 논란도 그런 맥락인 것이다. 대기업에게는 대기업에 어울리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있다. 삼성이 굳이 직원들에게 최고의 연봉과 대우를 제공하고 제품의 가격도 비싸게 책정하는 이유인 것이다. 더 훌륭한 인재들을 많이 확보하고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한 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보다 못한 기업들에게도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삼성만한 대기업마저 직원들의 연봉과 대우를 깎고 제품의 가격을 후려치면 다른 기업들이 견디지 못한다.
최근 출연료 논란에 대한 김재동의 대응에 대해 크게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김재동 정도면 연예인 가운데서도 인지도로 탑클래스에 속한다. 그만큼 유명하고 오해 활동하기도 했었다. 그만한 연예인을 데려오는데 그정도 출연료가 적은 것일까. 그렇다면 김재동만 못한 인지도와 커리어의 연예인을 부르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한 것일까. 장차 그런 연예인들도 김재동처럼 더 많은 출연료를 받을 희망과 기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앞서 가는 만큼 길을 열어주고 위에 있는 만큼 앞을 밝혀준다. 그것은 동료로서 선배로서 김재동이 이념을 떠나 지켜야 할 책임이고 의무인 것이다.
기부를 얼마나 하고, 그러면 기부를 하지 않으면 그만한 출연료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인가. 그만한 출연료를 받으려면 자신처럼 기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인가. 시장가격이라는 것이 있다. 연예인의 이름값에 어울리는 비용인 것이다. 자신은 그만한 돈을 받을 정도가 되는 것이고 앞으로 자신의 후배들도 자신과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수입을 양보할 수 없다. 자신이 양보하면 당장 자신보다 못한 이들이 더 어려운 지경에 놓이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추구는 따라서 어쩌면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만한 이윤을 추구할 수 있을 때 그를 양보하거나 포기하면 다른 이가 피해를 보게 된다. 이른바 덤핑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자본주의 국가에서 덤핑을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로써 엄격하게 규제하는가. 다 같이 죽자는 소리인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이가 자신의 이익마저 포기하며 값싸게 경쟁한다는 것은.
김재동을 좋아하느냐면 최근 김재동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진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재미없다. 괜히 쓸데없이 우울해진다. 진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우울한 것이다. 산뜻하게 유쾌한 맛이 없다. 과연 김재동이 예능인이기는 한 것인가. 그와 별개로 김재동이라는 이름의 가치가 한국사회에서 어느 정도인 것인가. 그것은 개인의 호불호와는 별개의 것이다. 의미없는 논란인 것이다. 가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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