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의사 요한 - 삶과 죽음, 그리고 의사의 길 위에 선 그들의 선택

까칠부 2019. 7. 27. 13:30

어쩌면 아주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겠다. 의외로 무거운 주제를 건드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의사로서의 결정에 대해서.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살려야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고통이라도 끝내주어야 하는가. 무엇이 환자를 위한 최선이며 인간을 위한 최선인가.


차라리 사는 것이 고통인 환자였었다. 그러나 환자는 마지막까지 살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죽는 것이 환자를 위한 최선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실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끝까지 환자를 살릴 수 없었던 자신으로부터 도망쳐버린 의사와 자신의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의사가 만난다. 아직 의사라기도 뭣한 햇병아리 의사의 혼란과 갈등이 아무도 알지 못하는 확신과 공존한다. 과연 차요한이 굳이 말하지 않고 있는 진실은 무엇이고 그로부터 강시영은 무엇을 보고 깨닫게 될 것인가.


의사란 모두 같을 수 없기에. 저마다 자기만의 위치와 길이 있고, 그만큼 원칙도 신념도 주의나 주장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주인공을 띄우느라 그러는 것인지 다른 의사들을 너무 한심하게 묘사한 듯한 장면들이 조금 거슬린다. 하긴 아니라면 통증의학과인 차요한이 직접 나설 자리란 없을 지 모른다.


확실히 사람의 일이란 산수처럼 답이 정수로 딱딱 맞게 떨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해가 아예 구해지지 않는 수학문제도 얼마나 많은가. 고작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 수 백 페이지가 넘는 계산식을 동원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현실의 정수란 그런 복잡하고 방대한 수식을 간략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하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 누가 맞았고 누구는 틀렸고, 그러나 그 사이에 존재할 무수한 모호함들을 단호히 쳐내고 단순화시킨 것이 드라마라는 것일 게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들이 서 있는 그곳과, 그들이 가고자 하는 그 길 위에서, 그들이 보고 그들이 맞닥뜨릴 진실들에 대해서. 무엇이 의사로서 환자를 위한 최선인가? 최선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터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마침내 이르게 될 마지막 순간이. 벌써부터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