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 비겁했던 서동천, 하립이 다시 곡을 쓸 수 있는 이유

까칠부 2019. 9. 19. 12:38

성공하려면 사람을 단지 숫자로만 봐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이기고 짓밟고 그 위에 오르고서야 비로소 사람은 성공했다 말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패배자를 만들고 실패자를 만들고 도태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도 그런 결과를 만들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성공한 인간들이 써내려 온 인간의 역사란 얼마나 추악할 것인가.


당장 양심적인 판사가 대법관까지 될 수 있을 것인가? 양심적인 검찰은 검찰총장이 될 수 있을까? 양심적인 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들조차 자신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그를 위해 기꺼이 진흙탕을 구르며 오물을 묻힐 수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선의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은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일이다.


악마가 인간을 유혹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악마를 부른 것인가? 신이 굳이 악마와 내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어차피 신도 악마도 없이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잘만 살아간다. 자신이 없는 곳에서 아들 루카가 아무일없이 자라 자신의 앞에 나타났듯이. 자신도 잊고 있던 이경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어찌되었든 나타나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게 되었듯이. 오히려 아버지란, 어쩌면 스승이었을 서동천 자신의 존재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냥 평범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굳이 음악으로 성공해야만 했었던 것일까? 현실에서도 다른 일로 돈벌이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MP3로 녹음해서 음반을 만들고, 혹시라도 공연이 있으면 휴가를 내든 정히 중요한 공연이면 일을 그만두고 다시 일자리를 찾든 하며 현실과 열정을 양립하려 노력한다. 그들이라고 가족이 없을까?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가족이란 것일 텐데도.


오히려 비겁했던 것은 서동천 자신이었다. 아마 불안했을 것이다. 분명 두려웠을 것이다. 차라리 포기하고 싶었기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이대로 현실적인 다른 선택을 한다면 다시는 원래의 자기 길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당당히 현실을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그런 자신이 너무 비루하고 비참하다. 패배자같다. 자존심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세상을 비웃으며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천재로 남겠다. 위악조차도 천재의 비뚤어진 광기라 여기면서. 차라리 나는 예술을 위해 미친 나쁜 놈이지 않은가.


하지만 진정 그랬다면 아들의 죽음마저도 냉정하게 외면할 수 있었어야 했다. 아주 외면하지는 못하더라도 예술가로서 다른 사람의 돈에 손을 대서는 안되었던 것이었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함이 또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이 말한 바를, 자신이 믿고 지켜온 바를, 그래서 절대 양보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그러나 너무 어이없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고 만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어쩔 수 없는 미련이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서야 비로소 후회 속에 결심을 하게 만든다.


지금의 하립은 껍데기다. 이미 다른 사람의 돈에 손을 댄 순간 그는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자존심을 내던진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영감으로부터 얻어진 그의 음악들은 그런 그의 정체였다. 하립이란 이름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지난 10년 동안 그래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노래를 쓴 적이 없었다. 비로소 모든 것을 버리고 홀가분해지고 나서야 그는 다시 자신의 노래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업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훌륭히 병행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 대한 모욕과 같은 드라마일 것이다. 굳이 많은 벌이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서동천 혼자서만 모든 짐을 짊어지라 강요한 이도 없었다. 평소에는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 겨우 생긴 자기만의 시간을 활용해서 음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린다. 다른 자신을 위한 활동들을 한다. 그러다 성공하면 그야말로 꿈을 이루는 것이다. 아니더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 열정이 진짜라면. 서동천에게 그래서 'TOP밴드' 시즌1을 더욱 보여주고 싶어진다. 아마 시청률이 낮은 이유일지 모르겠다. 서동천이란 캐릭터 자체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드라마다. 그런데 결국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런 이기가 때로 무엇보다 큰 이타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슬프고 아름답고 추악하며 혐오스럽기조차 하다. 그래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는 것 아닌가. 영혼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인가. 이경에게 진정한 자신이란 무엇인가. 그녀를 일깨울 수 있는 계기란 무엇일 것인가. 마치 운명처럼. 인간처럼.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