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 이기와 이타의 경계일 것이다. 우연히 다리를 다쳐 길에 주저앉은 여성을 부축해서 택시에 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이 그렇게 거슬린다.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왜 그 여성을 자신을 비하해가며 미안하다 고맙다 계속해서 반복해 말하는가. 그러면 나는 이기적인 것일까? 이타적인 것일까?
원래는 어른들이 해결했어야 할 일이다. 어른인 엄마가 어떻게든 끝을 봤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인내하는 사이 그 상처는 자식들에게까지 미치고 만다. 의붓아들을 위해 친딸마저 희생시킨 결과 정작 의붓아들 자신이 평생 씻지 못할 죄책감속에 살아야 했었다. 반신불수가 되었다가 겨우 일어나서도 여전히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치고서도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는 말이 그래서 얼마나 애달프게 들리는가. 그녀의 자식을 위한 이타는 과연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과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경을 위해서도 좋은 일인가 묻는 루카의 고민이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남들을 위해 희생하며 인내하는 삶이 더 행복한가. 차라리 자신의 이기를 위해 다른 이를 짓밟고 희생시키는 지금의 모습이 더 행복해 보이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경 자신을 위해서다. 이전의 고단하던 이경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기에 과연 지금보다 그때가 더 좋았는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은 것은 단지 그런 이경이 편리했던 주변의 이기는 아니었을까.
친구를 협박하며 자신까지 위협하던 모습에 참지 못하고 드러낸 분노가 결국 친구를 위한 것이 되어 버린다. 원래는 단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동이 이경을 위해 짐짓 분노한 모습을 보이며 이경의 친구까지 돕는 것이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영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서동천이 아들 루카를 자신의 곁에서 멀리 떠나보내고자 했던 것은 과연 아들 루카만을 위한 이타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위한 이기였을까. 루카를 살리기 위해 이경을 희생시키고자 했던 행동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경은 과연 루카를 위해서, 혹은 서동천을 위한 이타적인 목적으로만 자신의 영혼을 파는 계약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마저도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이기였던 것일까? 그래서 영혼이란 무엇인가? 영혼이 있고 없고의 차이란 무엇인가?
서동천에게서 처마를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자기가 기댈 처마는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머물 처마는 자신이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버텨왔는데 그러고 과연 이경 자신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신에게서 그런 처마를 기대한다. 신에 의지하며 신에 기대한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현실을 견디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래서 자신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악마가 신에 반발하는 것조차 사실은 신에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경이 하립에게 강하게 반발하는 것 역시 아직 그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다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신이 내리는 최악의 형별이 바로 망각이듯이.
어떻게 이경의 영혼을 구할 것인가. 이경을 다시 이전으로 되돌릴 것인가. 그러면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집착인가. 시한이 주어졌다. 신에 의해 서동천에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열흘이라는 시간의 제약은 물러설 수 없게 그를 몰아세운다. 반드시 그 안에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 무한은 그냥 없을 무와 같다. 루카를 위해. 이경을 위해. 무엇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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