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 - 갑과 을의 지옥도, 그리고 희망의 우화

까칠부 2019. 9. 27. 07:09

사람이 죽어서 가는 지옥 가운데 수라지옥이라는 것이 있다. 그곳에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주 가는 끈 하나가 항상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그 끈에는 단 한 사람만이 매달릴 수 있는데 그래서 수라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그 끈을 잡기 위해 매일같이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누군가 그 끈을 잡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리느라 결국에 그 끊은 다시 끊어지고 만다. 무한의 수라장이고 무한의 지옥도다.


누군가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속여야 하고 빼앗아야만 한다. 그 정점에 선 듯한 TM전자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내수시장에서마저 수입된 외국의 제품들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군가는 품질이 더 뛰어나고 누군가는 가격경쟁력에서 우위가 있다. 그들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품질을 더 높여야 하고 가격을 더 낮춰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익을 남겨야 주주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 이전에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본질인 것이다. 끊임없이 싸우고 짓밟고 끌어내리며 살아남아 위로 올라가는 것. 어느새 그 싸움에서 도태된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갑질이란 것을 이야기한다.


TM전자는 협력업체인 청일전자를 쥐어짜고, 청일전자는 다시 납품하는 하청기업들을 쥐어짜고, TM전자에서 단가를 낮추라 요구하는 만큼 청일전자도 하청기업들에 더 많은 손해를 강요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유진욱 부장이든 송영훈 차장이든 하청기업들에 갑질을 하지만 그런다고 그들이 갑이 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당장 위험해지자 유진욱은 대리운전을 하며 오히려 갑질을 당하고, 송영훈도 청소기를 하나라도 더 팔려 허리를 숙여야 한다. 갑과 을이 역전된다.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면 그렇게 자신들도 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더 필사적으로 그들은 갑이 되어야 한다.


TM전자는 아닐까. 누구보다 위에서 군림하며 갑질을 해대는 상무며 차장이며 TM전자의 매출이 줄고 이익이 줄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내경쟁에서 밀려 도태되면 그들 역시 대기발령받은 박도준과 다르지 않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경쟁하고, 을이 되지 않으려 갑이 된다. 그런 가운데 가장 을이었을 미쓰리가 그래도 회사에서는 갑이어야 할 사장이 된다. 갑과 을이 역전된다. 을이 갑이 되고 갑이 을이 된다. 을이어야 할 사원들마저 갑인 사장을 우습게 여긴다. 과연 역전이 일어난 청일전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갑과 을이 아닌 진짜 가족처럼 일하는 아주 작은 하청기업들이 있다. 사장이 직원을 걱정하고 직원이 사장을 염려한다. 어제까지 갑과 을이었는데 사정이 역전되자 상대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모습도 보여준다. 모든 동물 가운데 아마 인간만이 가지는 장점일 것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냉정하게 약자를 도태시키기만 했으면 인간은 지금의 위치에 이를 수 없었다. 우화를 보여줄까? 동화를 보여줄까? 인간은 지옥이다. 그럼에도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