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가다가도 눈앞에 신기한 것이 보이면 바로 쫓아가다가 쉽게 길을 잃고는 한다. 더 크고 더 좋고 더 멋지고 더 아름답고 더 탐나는 무엇이 곧잘 사람들로 하여금 원래의 목적을 잊고 중간에서 헤매게 만든다. 어느 순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만다. 그러다 문득 자기가 놓아 버린 것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누군가를 원망하게 된다. 왜 나를 붙잡아주지 않았을까.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어른이기에 누구도 손잡아주지 않고 누구도 지켜보지 않는다. 오로지 혼자서 자기 길을 가야 하는데 자기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항상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엔 유혹이 너무 많고, 반면 가야 할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쉽게 자신의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흔히 어른이 된다고 하는 말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 그런 자신을 납득하고 그런 자신과 타협하고 그런 자신에 대해 정당화한다. 그러므로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은 모두는 틀린 것이다.
부용주와 도종완이 서로 대립하는 이유다. 특히 도종완이 부용주를 본능적으로 증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은 잃어버린 길이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잊고 지내고 있었던 원래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용주는 자신과 달리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길을 묵묵히 걸으려 하고 있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인가? 아니 네가 틀렸다. 그래서 박민국도 부용주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사로서 자신과 너무 다른 부용주의 모습에 자신이 틀린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옳고 부용주가 틀린 것인가? 물론 박민국 자신도 그 답을 안다. 다만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서우진과 차은재, 박민국, 도종완은 그렇게 어른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원래의 자신의 길을 찾고 싶은 서우진과 차은재, 두 애송이 의사들과 어느새 지금의 길에 익숙해진 박민국, 그리고 익숙해지다 못해 확신이 되고 정의가 되어 버린 도종완이 낭만이라는 이름의 원래의 길을 지키고 있는 부용주와 어쩔 수 없이 서로 얽히게 된다. 마치 멀리서 자신을 외쳐 부르는 엄마를 쫓아가듯 젊은 의사들은 부용주를 따르고, 너무 멀리 떠나와 엄마인지 기억조차 희미한 어른들은 그를 의심하며 시험하려 한다. 차라리 자신이 버려졌다 지금이 진짜 여기게 된다면 그를 증오하며 심판하려 할 것이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그 가운데 어디 쯤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어차피 길을 잃은 것 상관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기는 하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일단은 사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다.
서우진과 차은재가 돌담병원으로 가야 했던 이유고, 결국 부용주 옆에 남기로 한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아직 의사였으니까. 의사가 되고자 했던 처음의 순수와 열정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면 박남국은 부용주를 통해 무엇을 확인하고 어떤 것을 얻으려 할 것인가. 도종완과는 화해가 가능할까. 하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부용주와 특별히 사이가 나쁘지도 않고 서로 적당히 존경하면서 불만도 내비친다. 그래서 드라마다. 드라마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권력, 돈, 명예, 지위, 아무튼 모두가 욕심내는 그런 것들이 어느새 지금의 자신을 스스로 정당화하게 만든다. 그를 위해 쉽게 타인을 밀어내고 상처입히고는 한다. 인간은 원래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다. 다만 너무 약해서 차라리 원래의 길로 돌아가지 못하면 그것이 악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선이란 것 역시 원래 가지고 있었다기보다 엄마의 손처럼 누군가 이끌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무협지로 말하자면 김사부 부용주는 당적할 자 없는 절대고수일 것이다. 그냥 싸우면 이긴다. 싸우기 전에 알아서 도망친다. 그래서 최강의 적마저 그와 정면으로 상대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부용주에게는 이렇다 할 드라마라는 것이 없다. 시즌 1에서는 그나마 과거 이야기라도 있었지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천년고목은 조용하지만 항상 주위가 시끄럽다. 아마 한석규이기에 단단히 그 중심을 지키고 있는 것일 게다. 생각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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