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백승수가 일부러 자청해서 진행한 언론인터뷰에서 감독의 존재를 언급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었다. 어찌되었거나 직접 경기를 뛰는 것은 선수들이고, 그 선수들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실제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지휘관의 령이 서야 팀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감독의 권위가 바로 서야 선수들도 복종하고 감독이 의도한대로 팀을 꾸려 갈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감독의 말처럼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에 책임을 져야 할 만큼 자기의 야구라는 걸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는 누구도 결과에 대해 납득할 수도 책임지려고도 않을 것이다.
즉 감독의 역량은 나중 문제라는 것이다. 한 번도 자신의 실력이란 것을 발휘해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마저도 당연히 감독으로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겠지만 이제와서 다른 검증된 감독을 데려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일단은 지금 감독으로 팀을 꾸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단장인 자신이 주변을 정리한다. 차라리 선수들의 미움이 자신을 향하고, 감독에게는 오로지 신뢰와 권위만이 가도록. 차라리 선수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단장인 자신이어야 한다. 시즌 내내 함께 경기를 치러야 하는 감독은 오로지 신뢰와 권위의 대상이어야만 한다. 백승수다운 결론이라 할 것이다. 모든 책임은 단장인 자신이 혼자서 짊어져야 한다. 모두가 자신을 오해하더라도. 아마 이전 회차가 아니었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권경민 상무가 어째서 그토록 백승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번 회차를 통해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동류였다. 동류에 대한 증오였던 것이다. 다만 차이는 있었다. 스스로 원해서 감당하려 했던 책임과 원하지 않아도 강요되어 왔던 책임의 차이다. 더불어 그 책임을 지는 수단을 선택할 수 있었던 쪽과 처음부터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쪽의 차이이기도 하다. 물론 백승수도 처음에는 몰랐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은 단지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대에게 자신은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면 자신 역시 상대를 선택지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신을 고용한 상대에게 얽매지 않고 그러므로 책임에 따른 스트레스로부터도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가족을 위해 돈을, 그것도 많이 벌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한 능력이 되니까. 얼마나 부러운가. 하지만 권경민이 그러기에는 버려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를 수 없는 동경은 시기가 되고 질투가 되고, 그럼에도 채울 수 없는 시기와 질투는 증오가 되고 원망이 된다. 사실은 백승수처럼 했으면 바랐던 것이었다. 백승수가 자기에게 그러는 것처럼 자신 역시 그러고 싶었던 것이었다. 백승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신은 그마저도 당연한 것이라며 애써 납득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백승수의 존재로 인해 그동안 굳이 보지 않아도 되었던 자신의 모습을 마치 거울처럼 낱낱이 비쳐 보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싫어서 울고 화내고 짜증내다 그리고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게 된다. 하지만 속마음은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술에 취하고 자신의 현실에 대한 원망에 취했을 때 그래서 권경민은 끝내 참지 못하고 그동안 감춰 온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만다. 자신의 솔직한 욕망과 충동을, 날 것의 감정을 그대로 배설하고 만다. 그리고 남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과 아버지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사촌동생을 마음이 내키는대로 혼내주고 돌아서는 권경민의 쓸쓸한 뒷모습은 백승수와 자신에 대한 솔직한 대면이 오히려 화해보다는 더 크고 깊은 갈등으로 이어지는 복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어떻게 해도 백승수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마음대로 하고 나서도 밀려드는 후회는 자신은 결코 백승수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의 깨달음만 줄 뿐이다. 자기에게는 자기의 방식이 있다. 자기가 옳다고 여겨온 방식들이 있다. 그것을 흔들려는 백승수는 적이다. 차라리 이해할 수 있기에, 설득될 수 있었기에 백승수는 더 위험한 적인 것이다. 한 번 길을 벗어나 보고 원래의 길로 돌아가야 함을 더 절실히 깨닫고 만다. 그래서 이번 회차의 주인공은 권경민이어야 하는 것이다. 권경민이 백승수와 끝내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이제는 심드렁해진 백승수의 큰 그림과, 그런 백승수의 곁을 지키는 방법을 알게 된 운영팀장 이세영,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 속에서도 팀을 위한 최선을 고민하는 프론트와 코칭스태프의 모두들까지. 백승수는 오히려 한 발 물러선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었고 이제는 익숙해지기까지 했다. 새로운 갈등을 만든다. 갈등은 위기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도 팀이 된다. 프론트도. 다만 시즌이 시작된 이후의 드림즈를 이야기하는 백승수의 표정은 먼 추억을 떠올리는 듯하다. 봄이 오고도 백승수는 드림즈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제목처럼 스토브시즌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모기업과의 싸움은 오히려 더 험난한 과정들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 재미있다. 오늘 하루만 더 참고 기다리면 된다. 일주일에 단 하루 즐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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