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이 40을 불혹이라 부르는 것은 공자가 그렇게 명명했기 때문이다.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뜻을 세웠으며, 마흔에 미혹됨이 없었고, 쉰이 되자 천명을 알았다. 미혹됨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세우고 걸어온 길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는 뜻일 게다.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을 테고,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이 가고자 한 그 길 위에 있지는 못하더라도 그 바른 길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정도는 된다. 다른 말로 꼰대라 부른다. 마흔 넘으면 재취업도 힘들어지는 이유다. 한 마디로 고집만 더럽게 세다.
박민국은 조금 애매하지만 김사부나 도윤완이나 그동안의 자신의 길에 대해 한 점의 미혹도 없는 그야말로 어른들일 것이다. 차라리 자신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문제지 자신의 방식에는 어떤 잘못도 어긋남도 없는 것이다. 도윤완과 김사부의 싸움은 그런 서로가 지켜 온 자신만의 세계관의 충돌이기도 한 것이다. 도윤완을 용납하는 순간 김사부가 틀린 것이 되고, 김사부를 인정하는 순간 도윤완은 잘못된 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 서로를 인정하지도 용납하지도 않는다. 대신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서는 오만할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재단이사장인 도윤완에게도 병원장인 박민국에게도 김사부가 단호히 덤빌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서우진이나 차은재나 그들의 선배인 양호준까지 누군가의 판단에 기대야 하는 애송이들일 터다.
의사로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것인가. 물론 그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이다. 김사부나 박민국이 그러는 것처럼 자기만의 방식에 대해서는 오롯이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없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묻게 되고 기대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등이 아닌 얼굴을 마주보기 시작한다. 앞서가는 이와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제대로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결론내리고 그에 대한 책임 역시 혼자서 져야만 한다. 단지 어른들은 그 과정에서 약간의 도움만 줄 수 있을 뿐.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방황들을 하던가.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답도 사실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전혀 정답과 거리가 먼 틀린 답일 수 있다. 누가 판단하는가? 결국 어른이 가르쳐 준 그 길로 걸어가게 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란 것이다. 그 길 위에서 깨닫게 된다. 이 길이 원래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인가. 자신이 원하던 그 길인가. 과연 올바른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결국은 자신이다. 다시 돌아나오는 것도, 그 길 위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이제껏 왔던 길이니 계속 그 길로 가고자 하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고 결정이고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긴 그리 어린 나이들도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보드까지 땄으면 거의 서른은 넘지 않았을까. 공자가 말하는 입지다. 아직 미혹됨이 남아있을지 몰라도 충분히 자기만의 뜻을 세우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아직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어른들의 등만 보며 쫓아오다 보니. 아무도 없이 막막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으니. 박민국도 그런 점에서 김사부와 다르지만 그들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어 주고 있을 것이다. 때로 젊은이들은 기성의 권위에 마음껏 부딪히고 부서지는 과정에서 자신이란 정체를 찾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시즌1에서 도윤완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살인자든 뭐든 결국 의사에게는 환자인 것이다. 두 명이나 죽인 살인자라 해도 결국 어머니에게는 그저 마음아픈 아들인 것처럼. 어머니이기에 그 마음을 이해한다. 의사이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알면서도 때로 부정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의 어리석음이기도 하다. 그렇게 또 한 걸음 차은재는 의사로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자신은 왜 의사가 되려 하고 어떤 의사가 되고자 하는가. 그러면 서우진이 돌담병원에서 찾게 될 답은 무엇일까.
아니나 다를까 공중파 드라마 다운 달달한 로맨스에, 뻔한 설정과 연출들이 반복된다. 그래도 허락되는 것은 드라마가 재미있으니까. 처음부터 서우진과 차은재가 대학 동기로 설정된 순간부터 대부분은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시즌1 역시 그런 점에서 공중파 상업드라마의 왕도를 결코 부정하지 않았었다. 어지간히 잘생기고 매력적인 배우들이란 것이다. 그런 사이에 아무일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래도 길은 잃지 말고 헤매지 말기를. 어차피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란 결말은 초등학교 이후 너무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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