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전부터 나는 반려동물 유튜버같은 건 못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고양이 놈들과 매일 하는 짓거리가 똑같아. 쭈구리 꼬맹이 있던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무릎 위에 앉히고 컴퓨터하거나, 침대에서 끌어안고 뒹굴거나, 아니면 옆에 누이고 쓰다듬거나, 가끔 장난감으로 놀아주거나. 아, 5살 넘어가면 장난감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몸은 안 움직이고 앞발만 사용해서 꿈찔꿈찔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무슨 유튜브?
신기하다 생각했었다. 어떻게 저렇게 다양하게 놀 수 있을까? 매번 저렇게 사람들이 관심가질만한 컨텐츠가 나올 수 있을까? 오늘도 쭈꾸미놈이랑 끌어안고 뒹굴다가, 잠들고 일어나서는 다시 끌어안고 부비적거리다가, 창문 열고 창틀에 올라가 주위를 살피고는 다시 침대위에 똬리틀고 자는 게 전부다. 뭔가 사람들에게 보일 만한 특별한 행동은 진짜 몇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다. 하긴 그러니까 가족이란 것일 게다. 전혀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지루할 정도로 당연한 일상들. 그런 소중함을 스스로 느끼지 못할 만큼 익숙해 있는 상태다.
최근 어느 유튜버 논란을 보며 더욱 드는 생각이다. 진짜 고양이를 가족으로 여겼다면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이란 그 자체로 당연하고 소중한 것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존재 그 자체다. 반려동물이 아닌 애완동물로 여긴 것일 게다. 아마 대부분 동물유튜버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한 편으로 공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도 된다. 그런 식으로 밀은 인간을 이용해서 전세계에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있었다. 사람이 닭을 길러서 먹지만 그러나 닭은 그렇기 때문에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은 동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고양이와 인간이, 혹은 다른 동물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기 위한 또 하나 방식이지 않을까.
고양이는 인간에게 컨텐츠를 제공하고, 인간은 그런 고양이를 이용하며 먹을 것과 숨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한 가지가 아쉽다. 그럴 것이면 종족번식을 위한 기회 정도는 주었어아 균형이 맞지 않는가. 하지만 특정 개체만 놓고 보더라도 인간에게 고용되어 대가를 받고 일하는 것이라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사람은 사람에게도 가혹하고 잔인하다. 그렇더라도 역시 반려동물이란 말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게 반려인가. 어떻게 가족일 수 있고.
배고프면 밥달라 울고, 실컷 먹고는 소화 못시켜 토해 치우게 만들고, 나름대로 바쁜 와중에 놀아달라 보채기도 한다. 그러면 또 사정에 따라 끌어안고 쓰다듬거나 아니면 그냥 눈만 껌뻑이고 내 일을 해야만 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고, 아마 내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벌써 나이가 14살이다. 아무일 없는 기억에조차 남지 않을 평범한 일상들처럼. 그래서 행복하지조차 않고 그냥 오늘같이 평범하기만 하다. 새삼 느끼는 깨달음이다.
'문화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자는 창작자들, 만화계와 심의의 역사를 돌아보며 (0) | 2020.08.20 |
---|---|
조영남 무죄확정, 예술의 창작과 기술의 경계에 대해 (0) | 2020.06.26 |
구하라의 죽음을 듣고, 삶이란 고통과 저주에 대해 (0) | 2019.11.25 |
설리의 죽음과 그 진정한 책임에 대한 뒤늦은 통감 (0) | 2019.10.30 |
일본과의 경제전쟁, 그리고 사라진 거대서사 (0) | 2019.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