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유쾌하면서 심각한다. 각각의 장면들을 보면 충분히 코미디스러운데,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스릴러든 로맨스든 무척 진지하다. 가벼울 것 같던 전지훈과 강아름의 사이마저 서로간의 신뢰라는 진지한 주제로 이어진다. 전지훈이 자신을 속인 사실에 분노하는 강아름이 이제는 친구 소피의 죽음에 대해 밝히기 위해 경찰과 협력하느라 남편 데릭을 속여야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전지훈은 강아름을 속이고, 강아름은 데릭을 속이고, 데릭 역시 강아름을 속여왔고. 그런데도 서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스포일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친절하게도 데릭의 정체를 벌써부터 노골적으로 다 드러내 보여준다. 의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모르는 사람이 봐도 데릭이 소피를 살해한 범인이고 소피가 인터폴에 보여주겠다던 산업스파이조직 헬매스의 핵심인물 VIP였었다. 강아름이 소피의 집을 뒤지는 범인을 쫓다가 다친 직후 전화를 받고 다시 바로 강아름에게 전화하는 장면부터 한 눈에도 소피의 집을 뒤지던 범인으로 여겨지는 인물과 만나는 장면 등에서 의심은 확신이 된다. 아내를 속여 온 남편과 그런 남편을 속여야 하는 아내와 그리고 바로 그 거짓말 때문에 헤어진 옛부부가 있다. 사랑하고 사랑했으면서도 온전히 서로를 믿지 못한 그들을 위한 한 편의 지옥도라고나 할까.
진짜 잔인한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믿었는데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까짓 것 싶은데 그마저도 밝히지 않고 혼자서 숨기다 멋대로 헤어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부분까지 모두 사랑할 자신이 있었는데. 같이 함께해 줄 자신도 있었는데.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를 도울 수도 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자기를 속이고서도 마치 그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었던 양 이야기한다. 그래도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말할 수 없었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자신이 했던 오해들이 미안해진다. 그래서는 안되지 않은가. 진정 사랑했다면. 그토록 미안했다면 미안할 일을 처음부터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아내를 믿지 못했던 것일까.
비로소 더이상 부부가 아니게 되고서야 진실을 듣고 그를 도울수도 있게 되었다.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고서야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믿을 수 있을까. 사랑과 믿음 가운데 무엇이 먼저인가. 대가는 지금 사랑하는 남편을 속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강아름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다. 소피가 말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스포츠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래서 절묘하다. 알지만 확신할 수 없다. 그런 불안이 데릭과의 관계를 더욱 조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과거의 악연이 그들 사이를 헤집어 놓는다. 운명일까? 필연일까? 사랑일까? 의리일까?
시청률이 낮게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애매하기 때문일 것이다. 코미디라기에는 웃음이 적고, 하드보일드라기에는 촘촘하지 못하다. 첫회의 액션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는데. 소피의 집을 뒤지던 범인을 강아름이 붙잡는 장면 역시 부조리하면서 처절했다. 확실하게 웃음을 주던가, 더 강렬하게 긴장을 조이던가. 데릭의 애매한 캐릭터도 그래서 아쉬움을 더한다. 표리부동과 모순의 캐릭터를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배우의 문제가 아니라 애매하게 정체를 드러낸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다른 범죄가 하나 더 보여지면 느낌이 달라질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재미있다. 지금으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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