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쭈그리와 꼬맹이는 내가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항상 당연하게 무릎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러면 한 편으로 인터넷을 하고 한 편으로 게임을 하면서 한 손으로는 녀석들을 쓰다듬고는 했었다. 쭈그리가 죽은 것도 내가 손에 가득 담아 내밀었던 사료를 먹으면서였다. 그리고 어느새 혼자 남은 쭈꾸미는 침대에 엎어져 나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꼬맹이와 쭈그리는 다가오는데 쭈꾸미는 내가 다가가야만 했다. 그래서 굳이 세일기간에 노트북을 구입한 것이었다. 침대 위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쭈꾸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그리 까칠하고 매몰차기도 한 쭈꾸미였지만 노트북을 사고 침대 위에서 커뮤터를 하고 있으니 어느새 다가와 고롱고리고 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데 냥냥거리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나오는 말이 것이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 반면 창가에서 쭈그리가 토한 사료를 어물거리며 욕심내던 쭈꾸미도 어느새 당연하게 나의 손길에 기대게 되었다. 이성보다 앞서는 게 감정이다. 감정보다 앞서는 게 본능이다. 이성이 감정에 우선하는가. 사랑과 고마움과 친근함에 우선하고 있는가.
고양이도 사람을 사랑한다. 새삼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다. 고양이가 사람을 꺼린다면 사람 때문이다.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살던 집을 멋대로 떠났다면 오로지 고양이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오로지 곤충과사람 뿐이다. 그래서 버러지라 부르는 것이다. 오로지 곤충만이 인정도 인연도 사랑도 은혜도 잊을 수 있다.
하물며 사람이다. 자폐지만 사람이다. 사람과 대부분 똑같이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랑한다. 대화하고 소통도 한다. 그를 외면할 수 있는가. 감히 저버릴 수 있는가.
하필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침대에 누워 쭈꾸미의 턱을 간지르고 쭈꾸미는 나의 팔에 기댄다. 짝사랑일까? 자폐의 기원에 대해 다시 생각케 된다. 인간의 뇌 가운데 자폐가 차지하는 부분은 어디일까?
하긴 자폐만일까? 대부분 사람들도 만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 때 어머니를 외쳐 부르는 이유다. 단 한 사람이다. 어떤 경우에도 내 편을 들어줄 단 한사람일 것이다.부럽기도 하다. 남자인데도. 그러기가 너무 어렵다. 고양이 한 놈 조차 내게는 너무 버겁기만 하다. 안타깝게도.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리학과 한류, 보편성에 대한 집착과 성과 (0) | 2022.09.05 |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자폐와 일반의 경계 (0) | 2022.08.28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고려말 불교가 폐단으로 여겨진 이유 (0) | 2022.08.13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20대 남성의 공정과 대변자 권민우 (0) | 2022.07.24 |
시그널 장기 미제사건 수사반 - 일본 드라마의 한계 (0) | 2022.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