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20대 남성의 공정과 대변자 권민우

까칠부 2022. 7. 24. 01:56

지난 몇 년 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해서 불공정 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권이 교체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사회경험이 없는 20대, 특히 남성들이 많이 낚인 때문이다.

 

모두가 바라는 직장들은 대부분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대상들을 상대로 공채라는 걸 한다. 바로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아 그 가운데 신입직원을 선발하는 것이다. 오로지 그것만이 공정하다. 시험과 면접을 통한 경쟁만이 오로지 정당하다. 그러나 사실인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대기업들에도 경력직에 대한 채용은 수시로 이루어진다. 다른 기업에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인재들을 여러 경로로 스카웃해서 자기 기업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당연히 시험같은 건 없다. 면접이야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이미 검증된 인재를 대상으로 과연 자기네 회사에 맞는 사람인가 검증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다른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이직이 빈번한 일자리에서는 공채라는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를테면 인천국제공항의 보안원들 같은 경우다. 근속기간이 3개월 정도라던가? 아마 특수경비가 6주간의 교육을 이수한 이후에나 취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아마 교육비용을 다 토해내는 것으 딱 그 정도 될 것이다. 연초에 공채를 했더니 3개월만에 모두 그만뒀다. 그러면 그 자리를 비운 채 다음해 봄까지 버텨야 하는 것인가?

 

학교 주방의 조리사들도 비슷한 경우다. 좆나게 힘들다. 씨발나게 힘들다. 그래서 수도 없이 그만둔다. 그렇다 보니 나중에는 사람이 없어서 주변에 아는 사람을 통해 다단계처럼 구하게 된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틴다면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이다.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는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그 씨발나게 힘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시험을 치지 않았으니 불공정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오래 일했어도 정규직은 불공정하다. 이해가 되는가?

 

사실 웃기는 것이다. 사기업의 채용은 온전히 사기업의 사적인 책임에 속한다. 하긴 그래서 사주의 일가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중역이 되고 회사의 경영권까지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바로 그런 부분들을 지적한다. 경영권을 가진 사주부터가 혈연으로 물려받은 경우인데 오히려 그는 긍정하고 찬양하면서 단지 아무도 하지 않는 힘든 일을 소개로 들어간 것만을 문제로 삼는다.

 

그러면서 더 어이가 없는 것이 당시 민정수석의 아들을 사업의 필요를 위해 채용하고 50억이라는 퇴직금을 지급한 것은 정당하다 여기는 정서일 것이다. 50억의 퇴직금은 불공정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오랜동안 하면서 정규직이 되는 것은 불공정하다. 이해가 되는가?

 

의외의 드라마에서 바로 그런 20대 남성들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한 캐릭터를 보게 되었다. 우영우가 아무것도 안하는가? 변호사로서 능력이 부족하고 실적이 미비한가? 오히려 자신을 위협할 정도로 능력도 실적도 출중하기에 공격한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로펌을 물려받은 대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조리사들의 정규직화에는 그토록 분노하면서 부모를 잘 만나 기업을 물려받게 된 이재용에 대해서는 찬양일색인 20대 남성들을 대변한다.

 

기업의 상속은 정당한 것이다. 기업의 상속을 넘어 아버지가 민정수석이면 자식이 그 혜택을 보는 것도 공정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화원, 보일러관리사, 보안원, 조리사 등이 면접만으로 채용되어 오랜동안 근무한 결과 정규직이 되는 것은 불공정하다. 능력도 실적도 있는 차폐인의 변호사 채용은 불공정하다. 열등감이다. 나는 그러지 못하니까.

 

옳다. 어차피 대부분 20대 남성들은 정규직은 커녕 계약직도 힘들 것이다. 그래서 주 52시간이 눈엣 가시였을 것이다. 최저임금 받으면서 더 오래 일해야 남들만큼 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을 줄여야 하는 열악한 일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삼성의 사주가 누구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민정수석의 아들이 어디서 얼마를 받든 신경쓸 것이 아니다. 나는 어차피 힘들어서 오래 다니지 못할 것이기에 정규직은 부당하다. 나는 적당히 알바나 하면서 대충 살아갈 것이기에 그런 이들이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은 불의하다.

 

드라마에서 권민우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은 그런 열등감에 찌든 20대 남성 그대로의 모습일 것이다. 공정을 말하면서 정작 강자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약자에 대해서만 분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무능과 미력함을 상대를 강자로 정의함으로써 정당화하려 한다. 내가 하찮은 존재여서가 아니라 상대가 강자이기 때문이다.

 

권민우가 한심하게 여겨진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 20대 남성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던 공정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그 모습 그대로 그려진다. 이런 모습이었는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생기긴 참 멀쩡하게 생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