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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선재스님의 간장, 참기름과 어릴 적 이사하던 기억

까칠부 2026. 1. 7. 17:36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전인 2살 때부터 8살 때까지 이사를 무려 5번을 다녔던 것 같다. 참 이사도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이사짐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장독이었다. 간장, 고추장, 된장, 아마 학교 가까운 반지하방으로 이사갈 때까지 거의 매해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직접 집에서 담궜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손님이 많이 올 일이 생겨서 간장을 사서 쓰게 되면 어린 내 입맛에도 바로 티가 났었다. 이거 사서 만든 거로구나.

 

그러니까 어릴 적 기억에 원래 국수든 밥이든 고추장이 아니라 간장에 비벼먹었다는 것이다. 고추랑 파, 마늘, 뭐 기타등등등 넣어서 걸쭉하게 양념간장을 만들어서 참기름만 둘러 비벼먹는데 이게 진짜 제대로 맛이었었다. 그런데 사서 먹는 간장으로는 그 맛이 역시 안 났다. 그래서 간장을 사서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양념간장도 조금 양념이 세게 들어갔던 것 같다. 고추장도 원래는 그냥 고추장만으로 밥 비벼먹어도 진짜 맛있었는데...

 

흑백요리사에서 선재스님이 비싼 간장과 된장, 참기름 썼으니 그 맛 나는 게 아니냐는 사람들 있는데, 아마 선재스님 계신 절에서도 장은 거의 직접 담궈 드실 것이다. 씨간장이 그러지? 간장은 특히 계속해서 장을 다려 추가해 숙성시킬수록 맛이 더 깊어진다. 원래 간장도 불이 아닌 햇볕에 은은하게 다려야 제대로 깊은 맛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는 전혀 단가가 맞지 않는다. 한 마디로 원래 오랜 시간 자연과 더불어 많은 정성을 들여가며 만들어 먹던 것을 공장에서 빠른 시간 안에 대량으로 만들어 먹으려니 맛 자체가 많이 열화되어 버린 것이다. 즉 지금 먹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대량생산을 위해 타협한 결과인 것이고, 그 비싸다는 장들이 원래 제법 그대로 정성과 노력을 들여 만든 진짜라는 것. 

 

물론 저런 비판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직접 집에서 담그고 이사할 때도 소중하게 싸들고 다니면서 몇 년 씩 숙성해 먹는 장의 맛을 잘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게 치트키 아니겠는가. 그런데 원래는 다들 그렇게 만들어 먹었었다. 불에 다리고 다시 햇볕을 쪼이며 숙성싴키고, 그러면서 고추, 오이, 더덕, 무, 깻잎 등등 다양한 재료들을 넣어 장아찌를 만들면서 그 향까지 입힌다. 아우, 갑자기 3년 고추장에서 숙성시킨 더덕장아찌 먹고 싶어지네. 그런데 지금 그런 거 어디서도 못 먹겠지? 내가 더덕을 좋아하게 된 계기인데 그 뒤로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것 같다. 다 삭은 된장 속에서 꺼낸 고추도 진짜 더럽게 맛있었는데. 된장에 절인 무장장아찌도. 아, 원래 마늘장아찌도 그렇게 아예 간장에 마늘 통으로 넣어 만드는 것이었다. 그게 수 년 동안 간장과 함께 숙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싸지. 제대로 만드는 것이니까.

 

괜히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이 MSG에 비판적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흑백요리사에서, 아니 이전 시즌에서도 한식 요리사들이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다. 원래 정성과 시간을 들여 감칠맛을 최대한 끌어내 만들어야 하는 한식을 시판된 양념으로 MSG와 자극적인 조미료에만 기대 만들고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제대로 맛을 내는 법을 잊은 것이다. 한식이라고 그저 양념만 세게 해서 만드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저 맵고 짜고 달고 거기다 MSG만 듬뿍 넣으면 맛있는 줄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보니 한식도 그쪽으로 열화되어 가는 중이라 보면 옳을 것이다. 밖에서 사먹으면 바로 티가 난다. 된장찌개가 음식선호도에서 계속해서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된장맛부터 예전만 못하다. 아, 샘표에서 나온 조선된장인가 그게 꽤 괜찮더만. 가성비있게 맛있게 잘 나왔다. 

 

한 마디로 싼 건 다 이유가 있다. 비싼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비싼 것이 원래 비쌌던 것은 아니다. 증류식 소주나 누룩을 쓴 생막걸리가 이제 와서 아무나 못먹는 고급술이 된 이유와 같다. 불과 1960년대까지만 해도 소주라면 그냥 증류식 소주를 가리켰었다. 막걸리도 당연하게 누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세상이 모두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대량생산은 필연적으로 싼 것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그것이 표준이 된다. 진짜가 사치가 되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