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슈퍼밴드 - 최고의 젊은 재능들, 그러나 아직 프롤로그

까칠부 2019. 4. 13. 12:32

1990년대 중반 김창완이 당시 젊은 음악인들에 대해 한 말이 있었다. 요즘 친구들은 정말 재주가 많다. 악기도 하나나 둘 쯤 다룰 줄 알고 프로듀싱도 할 줄 안다. 기성세대의 걱정과 달리 음악은 오히려 더 많이 발전하고 있다. 더욱 크게 공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확실히 1980년대 당시 밴드의 전성기에도 연주자의 풀은 그다지 넓지 않았었다. 그래서 유명밴드들 보면 거의 멤버들이 돌려막기 수준이었다. 이 밴드에 있던 연주자가 저 밴드로 가고, 저 밴드에 있던 연주자가 다른 밴드에 모습을 보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는 기타도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대부분 밴드멤버들은 그래도 악기도 살 수 있는 있는 집 자식들인 경우가 많았었다. 유럽과 미국의 밴드역사를 보면서 그들과 우리의 경제적 격차를 실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동네친구들끼리 알음알음으로 모여 밴드를 만든다. 혹은 집안 차고에서, 혹은 동네 클럽에서 서로 알음알음으로 모여서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하다가 실력을 키워 조금씩 주변에 이름을 알리고 음반사와 계약을 맺은 뒤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동네 친구 가운데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친구가 - 아니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정도의 친구가 몇 명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친구들을 모았다면 연습할 장소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누구처럼 부모가 건물을 가지고 있어서 창고 정도는 빌려 쓸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너른 지하실이라도 있거나. 그렇다고 연습을 해서 실력을 키웠으면 설 수 있는 무대라도 많을까. 그러고보니 오래전 쓴 글의 내용이기도 할 것이다. 어째서 한국에서는 록이 대중화되지 않았는가. 록이란 원래 하층계급의 음악이었는데 한국에서는 하층계급들이 록을 들을 형편이 아직 되지 않았었다. 오히려 있는 집 자식들이 마치 사치처럼 록이란 음악을 향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밴드의 저변도 넓지 않았고 정작 밴드에서 연주할 연주자도 많지 않았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조건이 얼마나 좋은가. 경제수준에 비하면 악기가격은 정말 많이 싸진 편이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비롯 악기를 접하고 실제 연주법도 배운 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어려서 일찍 재능을 발견하기도 유리하고 그를 실력으로 발전시킬 통로도 많아졌다. 크게 비용을 들이지 않더라도 유튜브 하나면 어지간한 것은 거의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경제적인 풍요가 가져다 준 여유도 큰 몫을 한다. 반드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풍요가 인간을 궁극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 2010년가 저물어가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은 얼마나 발전하고 성장했는가.


물론 선배들의 역할도 중요했을 것이다. 윤종신, 윤상, 넬, 린킨파크 등등 바로 그런 위대한 선배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지나온 길을 보고 들으며 후배들은 그들의 경험과 성과들을 학습하고 보다 일찍 그들과 같은 출발선상에 서게 된다. 자신보다 먼저 그 길을 지났던 선배들의 등을 보고 보다 안전하게 보다 빠르게 어느새 그들의 등뒤에 바짝 붙어 추월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장강의 앞물이 뒷물에 밀려나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후배들은 그들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된다. 다만 여기서 그 이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들 자신의 역할일 것이다.


KPOP이 새삼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진짜 이유일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위상도 높아졌고, 그리고 대중음악을 만드는 이들의 실력도 올라갔다. 처음에는 그저 세계의 선진음악을 따라가기에만 급급하다가 어느새 그들과 비슷한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증거들인 셈이다. 저토록 놀라운 실력을 가진 젊은 음악인들의 존재란. 이전 세대에서는 너무나 어렵던 것들을 지금은 너무나 쉽게 해내고 있다. 그러고보면 베토벤의 교향곡 9번도 당시에는 절대 연주가 불가능한 음악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선배로서 그런 후배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란 얼마나 뿌듯할 것인가.


다만 그런 것들과 별개로 출연자 개개인의 실력에 대해서는 감탄하면서 실제 활동중인 밴드인 '더 로즈'를 제외하고 밴드음악만이 주는 전율이나 희열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그냥 오다가다 만나 연습도 않고 출전한 밴드라 해도 그 밴드만이 주는 고유한 느낌 같은 것이 있다. 그 밴드만이 주는 고유한 개성같은 것이 있다.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어설프더라도 오래도록 함께 연주해 온 사람들만이 주는 그런 느낌 같은 것이다. 새삼 TOP밴드를 처음 보던 당시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프로그램은 이토록 뛰어난 연주자들을 모아서 어떤 그들만의 개성을 가진 밴드를 만들어낼 것인가. 한 가지 또 아쉬운 점은 윤상이 제안한 그대로 심사위원이 일차 탈락을 결정할 것이 아니라 출연자들끼리 밴드를 만들고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탈락자가 나오는 방식이면 어떨까.


그러고보면 밴드의 쇠퇴가 가져온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밴드란 록이다. 하지만 역사상 유명밴드 가운데는 록밴드가 아닌 밴드들도 적지 않았었다. 하긴 최초의 록밴드들도 시작은 블루스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았고 70년대부터 유럽에서는 디스코밴드들이 크게 유행을 타고 있었다. 유명한 팝밴드도 적지 않았다. TOP밴드에도 연주자들로만 구성된 브라스밴드나 재즈밴드가 출연한 바 있었다. 중요한 것은 여러 악기가 만들어내는 시너지인 것이다. 서로 다른 개성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다. 그것이 바로 밴드의 의미다. 혼자보다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그 성취감같은 것.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셋보다는 넷이 더 강하다.


아무튼 아직은 도입부인 탓에 그다지 집중하며 보지 못했던 듯하다. 연주자들의 연주는 감탄하면서 들었는데 사실 보컬들의 목소리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어서. 노래 잘하는 사람은 많다. 너무 많아서 문제다. 결국은 그 목소리가 연주자들과 함께 어떤 시너지를 만들며 어떤 음악들을 들려주게 될 것인가. 너무 재주많은 출연자들이 많아서 기대는 커지기만 한다. 언제쯤 그 결과물을 들을 수 있게 될까.


확실히 TOP밴드와는 다른 방식의 밴드오디션일 것이다. TOP밴드가 앞서 말한 개라지 밴드라면 슈퍼밴드는 제목 그대로 프로젝트 밴드를 뜻하는 듯하다. 딥퍼플도 레드제플린도 그렇게 최고의 실력자들로만 구성된 밴드들이었다. 과연. 한 편으로 드는 걱정은 단지 기우이기를.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