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음악과 예능을 모두 잡다!

까칠부 2010. 8. 8. 18:57

내가 남자의 자격 "아마추어 밴드"편에 놀라는 이유는 음악적인 진지함과 예능의 재미를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도 바로 음악으로써.

 

물론 이제까지 음악을 소재로 한 예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밴드를 소재로 한 예능도 분명 있었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까지 음악적으로, 그리고 예능으로써 완성도가 높았던 예능이 있었던가.

 

밴드를 하다 보면 여러가지 다양한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서로 다른 개성이 만나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다 보니 당연히 여러 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남자의 자격은 바로 그런 부분들을 잡아낸다. 남자의 자격이 특별한 이유다. 그런 자연스러움. 그런 왁자함. 그런 치열함.

 

김성민이 성대결절로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다른 논의가 나온다. 보컬교체에서부터 파트의 배분까지. 아마추어 밴드이기에 가능하다. 스쿨밴드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전문연주자가 아니다 보니 어느날은 드럼을 하다가 어느 날은 기타를 하다가 어느 날은 보컬을 하다가.

 

송골매의 배철수가 원래는 활주로 시절 드럼을 쳤었다. 그러다가 정작 대회 당일 보컬이 나오지 않자 보컬을 맡아 대학가요제에서 "탈춤"으로 입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팀이 짜여지면서 새컨드기타와 보컬을 구창모와 나누어 맡다가 구창모가 나가고서는 기타와 보컬을 맡게 되었다.

 

김성민이 노래를 하지 못하면 윤형빈이. 혹은 김국진이. 그러다가 이경규의 랩까지 나오게 되었다. 밴드음악이란 그렇게 팀원들이 동참하는 가운데 그런 수많은 사건과 부딪힘 속이 밴드 안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이다. 누가 거기서 이경규가 랩을 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김국진의 랩인가 싶은 어설픈 보컬이 랩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고, 하는 일 없던 세컨드 기타 이경규가 의외의 개성을 선보이며 랩퍼 규로 밴드 음악의 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냥 그렇게 진행되었느냐. 김성민을 타겟으로 짓궂은 놀림과 보컬자리를 두러싼 헤프닝들이 철저히 예능스럽게 진행되었다. 전혀 예능답지 않다는 것이 가장 예능스러웠다. 신뢰를 잃은 보컬과 그 보컬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키보드와 그런 상황을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멤버들과, 그리고 그런 가운데 이루어지는 다양한 시도들, 실험들, 예능을 의식한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밴드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헤프닝이겠거니. 그것이 의외성을 만들고 편안함을 이끌어내고 어떤 놀라움과 더불어 자연스런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천진난만한 김성민의 리액션이 있었고 어느새 스스럼없이 장난을 걸 수 있게 된 멤버들이 있었기에 더욱 웃음이 즐거운 모습들, 장면들이었다.

 

바로 이런 게 리얼 버라이어티일 것이다. 굳이 버라이어티 앞에 리어리티를 붙인 것은 바로 이런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하는 것일 게다. 굳이 게임같은 것 하지 않아도. 굳이 상황극까지 가지 않더라도. 단지 상황이 주는 그런 자연스러움으로, 출연자들의 자연스런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그런 일상의 웃음들이.

 

그런 상황들을 능수능란하게 조율한 김태원의 감각이 놀랍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극대화시키는 이경규는 역시나였다 할 테고, 김국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 선량함이란.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드러나고 마는 매력이 그에게는 있다.

 

 

그러고 보면 초반 분위기를 전환시켜보겠다며 헤이쥬드의 후렴부를 연습시킬 때,

 

"자신있게 하란 말야!"

"즐기면서!"

 

바로 그런 것이 락이었을 텐데. 조심스럽게 정교하게 연주하는 것은 기존의 대중음악이다. 얼마나 더 정교하게 아름답게 연주하는가. 

 

그에 비하면 락이란 정교함보다는 호쾌함이다. 아름다움보다는 후련함이다. 물론 락도 정교하다. 락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이 즐기는 음악이다. 힘있게 두드리고 자신있게 내지르고 그런 자신을 주장하는 음악이다. 밴드음악이란 그저 단순히 잘 하려고만 해서는 재미가 없다. 수험생이 수험을 치르듯 틀리지 않으려. 아마 김태원은 그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확실히 후반, 특히 부활의 연주를 듣고 나서 멤버들의 연주가 상당히 바뀌었다. 더 세련되지는 않지만 더 자신이 넘쳤다. 더 멋지거나 정교하지는 않지만 흥겨움과 힘이 있었다. 밴드음악이었다. 락이었다.

 

단순한 코드에서 오는 그런 원초성이. 단순한 코드와 단순한 연주와 그러나 그런 단순함의 빈 자리를 채우는 그런 원초적인 감성들이. 관객과 호흡하며 자기에 자신을 가질 때, 음악을 진정 자신을 가지고 즐길 수 있을 때, 그 음악은 연주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사람들과 공감하게 된다. 원래 락이란 클럽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던 음악이었다.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공감하던 음악이었다. 스튜디오에서가 아니라 무대에서 공연장에서 관객과 함께 하며 완성되는 음악이었다.

 

곡도 좋았고 그것을 연주하는 멤버들은 더 좋았다. 기술적으로야 부활 멤버들이 더 훌륭했을지 몰라도 바로 그런 원초적인 감수성이 밴드음악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그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열정과 감동이.

 

확실히 26년차 밴드의 관록이 드러났다. 물론 김태원 말고는 조금 연식들이 짧다. 그나마 채제민만 20년이 좀 넘었을까?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은 처음 듣는 음악마저 마치 원래 자기 음악인 것처럼 훌륭히 소화해낸다.

 

기본기일 테고, 경험일 터다. 여기서는 당연히 이렇게 연주한다. 그러면 역시 멤버들이 호응하여 그에 맞춰간다. 적절히 변화를 주고 자기 주장을 넣어도 그것을 받아들여줄 수 있는 여유가 있고 힘이 있다. 다만 역시나 자기 음악이 아니라는 것은 "사랑해서 사랑해서"는 남자의 자격 밴드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니까. 그렇게 남자의 자격 밴드 안에서 완성된 음악이고.

 

헤이 쥬드와 사랑해서 사랑해서가 코드 구성이 같다던가. 하기는 아마 사랑해서 사랑해서와 코드구성이 같은 음악을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코드에는 주인이 없다는 말 그대로. 다만 같은 코드를 가지고도 어떻게 엮고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이어가는가. 멜로디와 사운드와 연주가. 완전히 코드가 같은 음악이더라도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가 있다. 아니 멜로디가 같아도 전혀 다른 음악으로 들리기도 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 음악이 갖는 마법일 테지만.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

 

헤이쥬드의 연주는 말했듯 바로 그들이 들려주었어야 할 음악의 원점이었다. 단순함. 순수함. 그리고 자신감. 즐거움. 음악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헤이쥬드의 세대랄 수 있는 이경규와 김태원마저 합류한 헤이쥬드의 후렴부 연주는 백미였고 밴드의 전환점이었다. 마음껏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란 이렇게 멋지다.

 

 

아무튼 정말 재미있었다. 만족감도 최고였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예능의 유쾌한 웃음을 내내 즐길 수 있었다. 둘은 둘이 아닌 하나였다. 음악적 열정이 있었기에 예능의 웃음도 있고, 예능의 웃음이란 음악적 열정으로 승화될 수 있고.

 

"비경규입니다."

 

그 순간에도 선글라스 하나로 웃음의 포인트르 찾아낼 수 있는 이경규의 센스란.

 

이정진은 또 멋있었다. 김성민도 그동안의 불안감을 씻고 보컬로써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었다. 충분히 그들은 자랑스러워해도 되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들을 칭찬할 수 있어도 되었다. 떨어져도 상관없다.

 

물론 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빌어먹을 놈의 기자들의 쓸데없는 스포질에 모를래야 모르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마저 잊을 정도로 몰입되어 버린 자신이란.

 

약속도 잡지 않고 아이스커피 한 잔에 의지해 굳건히 지켜 본 보람이 있었다. 너무 멋졌고 너무 아름다웠다. 동경이 있었고 땀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가히 최고?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멋진.

 

아마 음악과 예능이 만나 보여줄 수 있는 한계치가 아니었을까. 내나 웃으며 내내 감동하며 내내 공감하며. 남자의 자격이기에 가능한. 남자의 자격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단연 최고였다. 말 할 것 없이. 최고였다.

 

 

 

덧, 부활 6집 보컬 김기연이 성대결절로 활동을 접은 바 있었다. 부활 6집은 그래서 활동을 접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김태원이 엄격하게 김성민을 다그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

 

부활의 앨범 가운데 랩이 들어간 곡이 아마 둘일 것이다. 하나가 7집에서 바비가 랩을 했었던 동강, 하나가 10집에서 조PD가 리메이크했던 회상3. 솔직히 조PD의 회상3는 별로였지만 동강은 나름 괜찮았었다. 부활의 음악에도 랩이 있었다는 김태원의 말은 사실인 셈. 그닥 음악적인 터부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뭐 이런 사연도 있었다더라. 문득 생각이 나서 붙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