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저 배만 채울 수 있으면 좋다. 그 다음에는 맛을 따지게 된다. 그리고는 몸에 좋은 것을 찾고, 다시 분위기가 좋은 곳을 찾고, 그러나 결국에는 그리운 이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어머니의 손맛이란 그렇다. 더 맛이 있어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요리사의 요리가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더 맛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어머니의 손맛을 찾는 이유는 어머니의 손끝을 통해, 어머니의 요리를 통해 전해지는 마음이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어머니와 떨어져 홀로 지내면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낀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차려지던 어머니의 밥상과 달리 한 걸음 떨어져 소외된 자신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게 된다. 어머니의 맛이란 바로 그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오 헨리의 단편집에도 있다. 몰락한 가난한 노신사와 자수성가한 자산가와. 자산가가 어렵던 시절 노신사는 그를 위해 일 년에 한 번 식사를 대접했다. 노신사가 가난해지고 자산가가 부자가 되어서도 그 관계는 서로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계속 이어진다.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자 노신사는 영양실조에 빠지고, 자산가는 과식으로 실신을 하면서도 그들은 그 하루를 기다리며 그런 순간까지 행복해 한다.
외로운 오지에서 사람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그래서 항상 음식이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손님을 위해 새로 귀한 짐승을 잡고 그 고기 가운데 가장 맛난 고기를 내어 대접한다. 당장 자기는 굶더라도 손님에게는 배불리 먹이고자 했던 마음들.
우리도 예전에는 그랬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찾아드는 길손을 굶겨 보내지는 않았다. 거지가 찾아왔어도 찬밥 한 술이라도 덜어주어 보냈다.
어쩌면 먹거리란 가난하던 시절 풍요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못 먹던 시절 사람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친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마음은 간절했고 진지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가 손님인 동안에는 그를 위해 성의를 다했고 그것이 항상 음식이라는 형태로 드러났다.
가까운 사이에는 더 그렇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던가. 씨암탉이란 알을 낳을 수 있는 닭을 뜻한다. 알을 낳을 수 있고 병아리를 칠 수 있다. 그대로 두면 그것으로 알을 낳고 병아리를 낳아 재산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백 년이 지나도 손님과 같은 어려운 사위이기에 가장 귀한 씨암탉을 내놓는다.
끼니를 굶다가도 친구가 찾아오니 옷을 전당포에 맡겨 술상을 봐 오게 하고, 당장 먹을 것이 없으면 이웃집에서 빌려서라도 밥상을 차리게 하고. 가장 귀하고 가장 맛난 것은 손님의 밥상에. 그러고 보면 어려서 그것이 그리 부러웠다. 그리고 손님이 먹으라고 덜어주는 그것이 그리 고마워서 또 손님이 찾아와 주었으면...
하물며 음식을 직접 만들어 대접하는 마음이야. 어머니는 항상 가족을 위해 앞치마를 두르신다. 아버지가 휴일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가족들을 위하려는 마음에서다. 하다못해 자취방으로 친구를 불러 라면을 끓여주고,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어머니까 물어 배운 음식을 서툰 솜씨로 만들어 먹이고. 여자친구가 맛있는 것 해 준다고 부르기라도 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가 입으로 들어가는가, 맛있는가 맛이 없는가 상관없이 대접받는 것만으로도 좋다.
어렵다면 여자친구가 아닌 여자친구 가족에게 초대되었을 때. 그때 들은 말이 참 복스럽게 잘 먹어 어르신들 좋아하겠다. 정성을 들여 음식을 해 놓았으면 그것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서로 마음을 전하는 한 방법인 것이다. 맛있게 먹으라 만든 음식이기에 맛있게 푸짐하게 더 먹으라 하면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좋아하는 이와 함께 하는게 못 끓인 라면인들 어떨까? 인스턴트 식품을 대충 녹이고 끓여 먹더라도 그렇게 나누는 마음이 좋은 것이다.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맛이야.
"이 만큼이라도 해 주면 부인이 까무라칠 걸?"
친구인 서경석조차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던 이윤석의 육개장을 보면서도 김영옥 선생이 한 말이다. 아니 서경석 역시 앞에서는 맛이 없네 해도 돌아서는 표정에서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음식을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 대접한 사실에 대한 고마움과 반가움이 있었다.
한 번을 하고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무한도전에서도 그랬지만 음식이란 예능에서도 아주 쏠쏠한 소재 가운데 하나일 테니까. 남자의 자격이라는 타이틀에도 어울린다. 지난번 아내가 사라졌다 편에서도 적당히 나온 적도 있었고. 하지만 굳이 그리운 이들을 불러 대접한다는 것은.
아내가 -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그 마음이라는 것일게다. 가족을 위해 항상 더 맛난 것, 더 좋은 것을 고민하는 그 정성에 대한 것일 게다. 음식을 통해 전해지는 그런 마음들이. 그래서 딸을 부르고, 오랜 친구를 부르고, 연인을 부르고, 존경하는 선생님을 부르고, 그들에 음식을 대접하고. 혹시나 평가가 어떨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설레고 기대한다. 맛있게 먹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솜씨야 서툴더라도.
음식을 만드는 그 자체로도 즐거웠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초대한 그리운 이들에 대접하는 그 장면이 더 정겨웠다. 왁자하게 바닥을 구르며 웃다가 어느샌가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나도 누군가 그리운 이를 불러 그렇게 음식을 대접해주고 싶다. 다행히 나는 남자의 자격 멤버보다는 음식에 익숙하다. 평소 먹는 것은 거의 내가 만들어 먹고 있으니.
역시나 이윤석의 슬랩스틱은 최강이다. 이윤석의 개그는 이런 몸을 쓰고 직접 부딪혀야 하는 소재에서 빛을 발한다. 항상 진지하다. 그런데 서툴다. 우울하면서도 그러나 낙천적이다. 몸개그라 하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면서, 그 일상에서 어느새 자연스레 벗어나 있는 그 어색함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원래 슬랩스틱이란 그랬다. 억지로 몸을 부딪히고 뒹구는 것보다는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모습들에 - 그러나 과장되고 일그러진 일탈의 모습들에 웃음을 짓고 마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정진이 빠지고 여섯 남자 가운데 음식을 완성하기까지가 가장 소소하게 쏠쏠하게 웃겼던 사람은 이윤석이었다. 빵 터지는 것도 있고 문득 발견하고 짓궂은 웃음을 짓는 것도 있었다. 더 큰 웃음이나 입담을 바란다면 그에 이윤석이 충족시켜주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종류의 웃음이라면 이윤석보다 더 나은 이란 아마도 없지 않을까. 그야말로 이윤석을 위한 에피소드랄까.
물론 이윤석만이 아니다. 이경규도, 김태원도, 김국진도, 윤형빈도, 김성민도, 모두 하나같이 자기를 찾은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궁시렁거리면서도, 어쩔 줄 몰라 당황해 하면서도,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들에 자기가 먼저 놀라고 곤란해 하면서도 그러나 맛은 없어도 끝까지 그들은 자신의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런 진정이 있었기에 그 서툰 모습들이 더 정겹지 않았을까. 그래도 예능이라고 더 웃기려 하기보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보는 모습에 긴장하면서도 흐뭇해하는 그런 마음들이 더 즐겁지 않던가.
역시나 남자의 자격다운. 같은 요리를 소재로 했어도 바로 이래서 남자의 자격이라 할 수 있는. 남자의 자격만의 개성이며 매력이랄까. 남자의 자격이기에 가능한. 남자의 자격일 것이다.
한 입 맛을 보는 것만으로도 표정이 바뀌면서도 어느새 한 술 더 뜨고, 한 젓가락 더 입에 넣고,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 정겨워서. 날은 덥고, 땀은 흐르고, 마음은 훈훈해지고, 따뜻하다는 것이 이렇게 시원한 것이었구나. 일요일 저녁 굳이 기다려 본 보람이 있달까?
그나저나 다음주 예고 "남자의 자격 밴드편". 드디어 마무리다. 아니 이미 결과는 알고 있다. 쓸데없는 기자의 스포일러 때문에. 그러나 결과를 보자는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과연 그들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까. 그들은 어떤 모습의 밴드가 되어 있을까.
원래는 한참 전에 방송되었어야 할 분량일 테지만 그러나 그동안 파업으로 미뤄진 탓에. 외주PD들에 편집을 맡기에는 그 의미하는 바가 너무 컸다. 그래서 더 기대하는 중이다.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 것인가.
재미있어서 재미있었고 정겨워서 정겨웠고 그리고 다음주가 더욱 기대가 되고. 역시나 이래서 남자의 자격을 챙겨 보는구나. 즐거웠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짧지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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