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가출했다 돌아온 녀석의 이름이 쭈꾸미다. 어디보자... 벌써 4년 전이냐?
막 이사하고 얼마 안 있어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새끼고양이를 하나 발견했다. 쭈그리 녀석이 항상 지키고 앉아 있는 창가에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방안을 쳐다보던 까맣고 하얀 꽤나 예쁘게 생긴 고양이었다. 팔불출이라 하겠지만 우리집 세 녀석은 정말 고양이치고도 잘 생긴 녀석들이다.
처음에는 녀석들 먹다 남긴 밥이나 조금씩 창가에 놓아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덧 겨울이 다가오고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길고양이 녀석들이 겨울을 잘 못 넘긴다는데 저 조그만 녀석이 내년에도 창가에서 어슬렁거리며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 더구나 밥을 주는 게 고마웠는지 목욕탕 창가에 쥐마저 한 마리 갖다 놓은 터였다. 고양이가 은혜를 안다더니만.
그래서 마음 잡고 녀석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생포했다. 아마 그때가 한 5개월이나 6개월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집 안으로 유인해 끌어들인 다음 생포, 싫다는 녀석을 억지로 목욕시키고 집안으로 들이게 되었다. 녀석과의 4년이 넘는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꼭 깜돌이같았다. 목욕까지 시키고 말끔하니 단장해 놓았더니만 동생 책상 밑에 숨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녀석이 처음 책상 밑에서 나오기까지도 사나흘 정도 걸렸을 것이다. 이유는 역시 먹을 것.
투투나 깜돌이나 먹을 것에 예민한 이유를 안다. 배고팠을 테니까. 나도 그리 식탐이 많은 이유가 어머니 말로는 젖배를 곯아서 그렇다고 한다. 배고픔이란 꽤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나는 단 한 끼도 그냥 거르고는 지나치지 못한다. 쭈꾸미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녀석들도 식탐이 심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이 녀석은 거의 먹는 것에 목숨을 건다. 심지어 처음 보는 손님이 찾아와도 다른 두 녀석은 겁먹고 숨어 안 나타나는데, 이 녀석만큼은 뭐라도 하나 얻어먹으려 주위를 얼쩡거리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그때도 밥을 놓아두니 그것을 먹는다고 보지 않는 새 어슬렁거리며 나오다가 나중에는 당당하게 우리집 식구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그러고서도 친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아니 정확히는 지금도 그리 친하지는 못하다. 두 번의 엇갈림 때문이다. 이미 두 녀석을 키우고 있는데 한 녀석을 더 키우기가 부담스러워 분양하려다가 그만 녀석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 분양한다고 녀석을 잡아 박스에 넣는 사이에 녀석이 느껴야 했을 공포와 배신감이라는 것은 상당했을 것이다. 더구나 처음 보는 사람들에 자신을 맡기려 했으니.
그리고도 또 한 번 이사를 한다고 녀석을 억지로 잡아 이동장에 넣어 움직인 적이 있었다. 하필 그 집이 고양이를 그리 싫어하는 집이었다. 매일 그 집 개가 짖는데 고양이 우는 소리가 시끄럽고 냄새가 난다고. 그래서 그 녀석 잡는다고 한참을 씨름하다 손바닥의 혈관이 찢겨 병원까지 갔다와야 했었다.
그래도 그 전까지는 겨우 친해져서 발가락을 물고 놀기도 했는데. 자고 있으면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와 쪼그려 자기도 했었다. 이불 밑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면 다리 사이로 허벅지에 턱과 앞발을 기대고 잠들기도 했었고. 항상 주위에 있었고 항상 근처에 있었다. 손가락을 내밀면 킁킁거리다가 괜히 쓰다듬당하고 도망치기도 하고. 괜한 분양한다고 설치지만 않았다면.
가출도 그 사이 세 번인가 한 것 같다. 얼마전이 네 번째던가? 처음에는 억지로 붙잡아 놓은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나갔다가도 알아서 잘도 찾아들어온다. 이번에는 꽤 가출기간이 길어서 집에 있던 녀석들과 오래도록 틀어있더니만 한 일주일만엔가 다시 예전처럼 방 한 가운데서 늘어지고 있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래서일 듯. 녀석을 보면서 떠올리고 말았다.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여전히 꺼리고 경계하면서도 무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녀석을 보면서. 배고프면 밥 달라고, 목마르면 물 달라고, 심심하면 놀아... 이건 좀 아니고. 그보다는 창문을 열어달라고 조를 때가 많다. 뭐라도 지방과 단백질이 있는 것을 먹으려 하면 잠시도 방심 못하게 옆에서 감시하고. 뭔놈의 고양이가 만두를 그리 좋아하는지.
생판 낯설고 경계심 많은 녀석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비결은 한 가지다. 그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온세상의 중심이 그라 여기고 따르는 것. 굳이 깜돌이를 방안으로 들이려 하기보다는 문 근처에서 움직이지 않는 녀석에게로 오히려 다가가 그 옆에 누워 잠드는 김태원처럼. 똥오줌 못가리는 것을 보면서도 그에 화를 내며 윽박지르기보다는 인내하며 그것을 치우는 이경규처럼. 개와 그리 친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에게 겁먹은 덕구에게 다가가려 어떻게 안는가를 묻는 김국진처럼.
어차피 말을 하지 못한다. 말을 한다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무어라 한다고 그대로 따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버려진 녀석들이다. 밖을 떠돌던 녀석들이다. 사람의 눈을 피해 사람을 겁내며 돌아다니던 녀석들이다. 녀석들이 내게 다가오지 못한다면 내가 다가갈 밖에. 싫어해도 털을 빗겨주고, 질색을 해도 목욕을 시켜주고, 진저리를 쳐도 다가가 쓰다듬어주고. 아프면 약도 먹이고. 발톱을 간다고 온 사방을 헤집어놓고, 스프레이를 한다고 온 사방에 오줌을 흘리고, 털갈이 한다고 털이 날리고, 그러나 고양이는 원래 그런 것이니까. 고양이가 스스로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을 터이니 사람이 그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람에 맞춰 길들여진 고양이더라도 많이 그래야 하는데 하물며 녀석들은 사람과 떨어져 자기만의 삶을 살던 녀석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개와 고양이가 같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고양이는 어지간해서는 똥오줌 못가리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래와 화장실만 잘 갖춰져 있으면 고양이는 알아서 거기서 변을 보고 뒷처리까지 한다. 아주 어린 새끼라서 배변훈련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하긴 그런 경우에조차 배변훈련까지 직접 시켜주는 아가씨를 본 적이 있었다. 참 정성과 인내가 필요한 일인데도. 그건 고양이가 확실히 개보다 나은 부분이다. 이경규가 다리를 탁탁 치니 - 아, 우리집 꼬맹이도 언제부터인가 내가 방바닥을 치면 어디서인가 듣고 쪼로로 달려와 내 주위에 앉는다. 이 녀석이 고양이인가? 개인가? 그보다는 돼지에 가깝겠지만.
비단 고양이만이 아닐 것이다. 개만도 아닐 것이다. 사람을 사귀는 게 그렇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그렇다. 처음 보는 사람과 어떻게 친해지는가? 경계하고 의심하는 사람과 어떻게 가까워지는가? 그가 다가오지 못한다면 내가 다가가야겠지. 그가 나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가 먼저 알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먼저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허락하지 않고서는 사람도 사랑도 얻을 수 없다.
동물을 대하는데서 그 사람의 인격이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말도 못하고,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고, 본능에 따라 내키는대로 행동할 뿐이고, 더구나 약하다. 얼마나 자기를 양보하고 인내하며 배려할 수 있는가? 동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말도 그래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항상 좋은 일만 하리라는 법도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예전 업둥이를 들이던 기억에 다시 보는 남자의 자격이 그리 새롭다. 너무 오래 되어서일까?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불현듯 녀석이 업둥이라는 사실이 떠오르지 않은 것은. 녀석을 들이던 일들이 당장에 매치가 되지 않았던 것은. 녀석은 이미 가족이니까.
다시 보아도 흐뭇하고. 투투처럼 우리집 녀석들도 뻑하면 바닥을 뒹군다. 말한 것처럼 쭈꾸미 녀석은 식탐이 심하기도 하다. 여전히 경계하면서도 은근히 마음 놓고 나를 관찰하는 것은 깜돌이 같기도 하다. 개는 내가 감당이 안 될 것 같고. 보고 또 봐도 좋을 또 하나의 작품이 될 것 같다. 좋았다. 유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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