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말하기가 애매하다. 이런 소개팅이란 어디까지나 만나는 당사자 개인의 일이라. 김성민 스타일이 좋을 수도 있고, 이정진 스타일이 좋을 수도 있고, 전혀 의외로 괜히 옆에 바람잡으러 나와준 이경규에 혹해서 안 좋은 길로 빠질 수도 있고... 그러자는 게 소개팅 아닌가?
우주적인 기적이라고 누군가 말한다. 50억 개의 별 가운데 두 개가 우연히 만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가운데 우연히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만나고. 성격이 통하고, 취미가 통하고, 스타일이 통하고, 그 이전에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그걸 누가 뭐라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만남이란 산수도 수학도 아니니까. 불가에서는 사방 15킬로미터의 바위를 천 년에 한 번 물방울을 떨어뜨려 구멍을 내는 시간을 겁이라 하는데, 그 겁이 8천 번이 쌓여야 현생에 부부로 만난다고 한다. 부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맞는 인연을 만나는게 보통 쉬운 일인가? 그것은 밖에서 누가 말할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이성과의 첫만남의 설레임은 누구나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이경규와 김태원마저 그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리던 것처럼. 단지 TV모니터 너머로 지켜보면서도 그리 설레고 두근거리던 것처럼. 그런 점에서 말없는 이정진이나 말 많은 김성민이나 한 가지가 아니었을까? 나도 사람을 만나 긴장하면 말이 극단적으로 없어지거나 말이 극단적으로 많아진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 거리가. 어색하게 말 많던 김성민이나 어색하게 말 없던 이정진이나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거리를 좁혀가는 그 시간들이. 이래서 사람들은 이성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구나. 아니 사랑에 빠지지 않더라도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구나.
아마추어 야구팀에서 투수를 하고 있다던가? 느닷없이 아는 체를 하며 볼링을 치러 가자더니 야구장에서 괜히 폼을 잡으며 상품을 골라보라 한다. 이성에 멋지게 보이고 싶은 것은 남자의 본능 아닌가? 남자에게 허세란 진심이다. 남자다움이란 남자이고자 하는 허세다. 특히 이성 앞에서. 예능이라던가 연예인이라던가 이전에 저런 게 또 남자의 모습 아니겠는가.
괜히 말 한 마디 걸어보려다 다시 어색해지고.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고. 어떤 화제로 대화를 이끌어가야 할 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기다리자니 그것도 그렇고.
수줍음과 두려움은 한 가지다. 두려움과 배려도 한 가지다. 세상에 가장 두려운 것이 매력적인 이성이다. 잘 보이고 싶고 미움받기 싫은 본능이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잘 보여야 할까? 말 하고도 행동을 하고도 어쩐지 아차 싶고 후회도 되고... 그건 나이를 먹어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좋아질 것 같은 사람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겁쟁이가 된다.
"여자 마음을 몰라!"
당연하지. 어떻게 아나? 그래서 만나는 것 아닌가? 모르니까 만나고, 모르니까 대화하고, 모르니까 서로를 이해한다. 알고 싶어 말을 걸고, 알고 싶어 무어라 듣기를 바라고, 함께 거리를 거닐고, 함께 놀아도 보고, 함께 식사도 하고, 함께 드라이브도 하고... 그리고 보다 멋지게, 보다 매력적으로 자기를 알리고 싶다. 그래서 마음이 통하고 더 알고자 하는 감정이 생기면 다시 연락도 하게 되겠지. 어쩌면 사랑이란 평생을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안다고 생각할 때 그래서 사랑도 함께 식는다.
참 보기 좋았다. 특히 이정진 커플이 좋았다. 외모도 이정진 커플 쪽이 내 취향이었다. 약간은 수줍은 듯 어색한 모습도 그린 것 같았고. 너무 쉽게 친해지는 것도 로망이 없다.
"선수처럼 보이면 그렇잖아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정진은 충분히 선수다. 그동안도 정주리와의 러브라인에서도 그런 능숙한 사려깊음을 보여주더니만. 그 어색함마저도 어쩌면 프로의 작업이었을까? 어차피 그냥 있기만 해도 훈내가 풀풀 풍기는 남자이다 보니. 물론 여성분 마음에 달린 것일 테지만.
장기프로젝트였으면 좋겠다. 만나고 사귀고 사랑하고 그리고 결혼까지... 지속적으로 소개팅을 시도해 보아도 좋지 않을까? 김국진도 함께. 김국진도 급하다. 더 늦기 전에 홀어머니께 며느리도 보여드리고 손주도 안겨드려야지. 모두가 김국진을 가장 먼저 걱정하더라는 게 괜한 게 아닐 게다. 이정진도, 김성민도.
아무튼 그렇게 크게 터지는 웃음은 없어도 흐뭇한 미소는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 시린 옆구리가. 보일러를 그렇게 올렸는데도 왜 옆구리로는 남극의 차가운 폭풍이 몰아치고 있을까? 얼어붙은 옆구리 살들이 조각조각 부스러지는 느낌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부럽고. 참 매력적인 여성들이었다. 외모도 외모려니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당당함이라든가. 굳이 방송을 위해 자기를 내보이려 하지 않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프로다웠달까? 이제까지의 데이트 프로그램과는 다른 차분히 가라앉은 그런 따뜻함이 무척 좋았다.
장기프로젝트 하자. 이정진도, 김성민도, 김국진도. 그리고 함께 프로그램 말미에 일곱 커플이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겠다. PD의 차는 참 검소했고, 작가의 차는 참 정겨웠고, 새똥은 자연의 혹독함을 말해주는 것 같았고, 비는 정지훈인 줄 알았다. 즐거웠다. 멋진 데이트였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춥다. 겨울이 유독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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