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나는 가수다 - 명곡을 명가수로 듣는 재미...

까칠부 2011. 3. 14. 06:04

확실히 이런 게 '나는 가수다'의 재미일 것이다. 김건모가 부르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 정엽이 부르는 '짝사랑', 이소라가 부르는 '너에게로 또다시', 윤도현이 부르는 '난 항상 그대를', 김범수가 부르는 '장미꽃 한 송이', 백지영이 부르는 '무시로', 박정현이 부르는 '비오는 날의 수채화'...

 

하나같이 명곡들이다. 그리고 모두가 내로라하는 명가수들이다. 과연 이들 탁월한 음악성의 명가수들이 부르는 명곡은 또 어떤 맛일까? 기대가 되지 않는가? 다만 아쉽다면 역시 80년대를 직접 겪었던 입장에서 확실히 요즘과는 감수성이 다르다는 것...?

 

윤도현과 백지영이 좋게 들린 것은 이들의 노래가 가장 담백했기 때문이었다. 80년대 가수들은 노래를 참 정직하게 불렀다. 90년대도 마찬가지다. 흑인음악이 유행하면서 흑인음악적인 기교가 강조되기 시작한 탓에 어느샌가 노래라는 게 기술이 되었지만 당시까지도 얼마나 악보다로 정직하게 부르는가 하는 게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첫째조건이었다. 비교해 들어봐도 참 맑다.

 

가장 실망했던 것은 박정현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 뭐랄까 추적추적 진흙탕을 튀기며 내리는 소나기 속에 오히려 캔버스가 젖어 일그러지는 유화의 느낌이다. 너무 힘이 들어갔다. 기교가 심하고. 이게 아마 강인원 작곡일 텐데. 강인원은 아주 맑은 감수성의 소유자다. 이 노래가 주제가로 쓰였던 '하얀 비요일'도 순정만화풍의 맑은 감수성을 보이고 있고.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본선에서 달리 편곡할 것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김범수의 '장미꽃 한 송이'도 만만찮게 실망스러웠다. 얄밉도록 야무지게 시원스런 민혜경에 비해 뭐 이리 걸리는 게 많은가. 그렇게 끈적거릴 노래는 아닐 텐데. 그에 비하면 정엽의 '짝사랑'은 트로트와 소울의 접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문득 박인수도 떠오르는 것은 바로 신중현의 음악세계가 트로트와 흑인음악과 록의 경계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어떤 감수성이었고 탁월한 해석이었다.

 

백지영의 '무시로'는 백지영이 노래 잘 하는 가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고, 그리고 노래란 기교가 아니라 감성이며, 그 감성에 충실한 것이 가장 훌륭한 기술임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이소라는 언제 어느때는 노래 그 자체에 충실한 말 그대로 "가수"다. 완벽주의자인 그녀이기에 준비가 되지 않은 무대를 거부하고 먼저 돌아간 것이 이해가 된다. 그녀는 천생 가수다. 김건모는 어떻게 해도 김건모. 의외로 윤도현의 창법이 이선희의 노래와 어울릴 수 있는 건 이선희도 락보컬을 지향했기 때문에. 많이 탁해지기는 했지만 윤도현 또한 후련하게 지르는 창법이 장점이다.

 

결국은 감성의 차이일 텐데. 기교를 강조한 노래에서 보다 깊은 소울을 느껴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다 깔끔하게 곡 그 자체가 주는 매력을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로 체험한 음악이 다르니까. 내가 요즘 왜 음악을 잘 안 듣는가도 깨달을 수 있었고. 왜 그렇게 카라의 노래를 마음에 들어했던가. 현재 아이돌 가운데 가장 깨끗하게 부르는 팀이니까. 80년대의 정서가 느껴진다 하지 않았던가. 새삼 확인했다.

 

더불어 또한 당시 얼마나 훌륭한 가수들이 많았는가. 사실 강인원은 보컬로서는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다만 '비오는 날의 수채화'의 경우는 권인하와 김현식이라는 두 괴물이 참가하고 있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불러 노래방에서 항상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갖도록 만들던 변진섭, 다시 없을 목소리의 나훈아, 이선희야 말할 것도 없고. 주현미의 묘하게 중국음악의 냄새가 나는 비음섞인 목소리도. 그나마 가장 인지도가 떨어지는 게 임주리인데, 사연이 있어서인가 절절하게 울리는 게 심상치 않다. 지금의 최고의 가수들과 견주어 보니 역시 음악은 시대를 타지 않는구나. 좋은 가수는 언제든 좋은 가수다.

 

아무튼 역시 이런 게 맛이라는 것이다. 명곡을 명가수가. 명곡을 명가수가 자기에 맞게 재해석해서. 그리고 이름만 들었던 작곡가와 편곡자들도 대거 참여하고. 연주자들도 등장했으면 좋겠다. 미션으로 연주자와 함께 하는 것을 한 번 해 보면 어떨까? 다음주를 기대한다. <1박 2일> 시간대로 2부로 옮기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