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플란더즈의 개>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만화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 네로가 그림대회에 자기가 스케치한 그림을 출품하는데 그러나 제대로 그림을 배워 본 적 없는 네로는 끝내 떨어지고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크리스마스날 굶주림과 추위로 죽고 만다.
참 많이도 울었었다. 네로의 불행이 슬퍼서. 가난하고, 할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며 돌보아주는 이 하나 없고, 심지어 누명까지 쓰게 되면서 마을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마지막 꿈이었던 그림마저도 인정받지 못한다. 오로지 파트라슈만이 친구로써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 확실히 유럽사람들이 개고기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던 만화영화였다.
지금도 꿈을 꾼다. 아니 그 전에 느끼고 만다. 꿈에 대해. 그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재능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에 대해서. 가진 것 하나 없이, 보살펴주는 이조차 없이 가난하고 외로웠던 당시의 네로처럼.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네로가 있을까? 마치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죽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 번 볼 수 있었던 루벤스의 그림이 아닌 네로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그를 도시로 보내 제대로 그림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자 했던 어느 화가처럼.
무협소설을 보더라도 그래서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소외된 이가 전대의 기인을 만나 천하제일의 무공을 손에 넣게 되면 그렇게 짜릿하고 흥분된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던 외로운 처지에서 그러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빼어난 재능으로 그것을 눈여겨 본 누군가의 제자가 되어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고 무림의 영웅으로 군림한다. 무협소설을 보는 재미일 것이다.
지난 4월 1일 패자부활전을 끝으로 마침내 결정된 <위대한 탄생> 생방송무대 진출자 TOP12. 그러나 정작 그 가운데 처음부터 심사위원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을 들으며 생방송에까지 이른 참가자는 이태권, 데이비드 오, 김혜리, 셰인 정도가 고작이었다. 데이비드 오와 김혜리의 경우 중간에 기복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처음부터 칭찬을 듣고 올라온 것은 이들 4명이 전부였다.
황지환이나 조형우나 역시 예선에서는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었다. 황지환의 경우는 심지어 방시혁으로부터 가지고 있는 나쁜 버릇을 절대 고치지 못할 것이라며 거부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제외하고는 순조롭게 올라온 편이다. 조형우의 경우아 신승훈 멘토스쿨에서 최종심사에서 떨어져 패자부활전을 거쳐야 했었지만. 심지어 휘성으로부터 문제점이 뭔지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는 극찬을 들었을 정도로 그의 변신은 극적이었다.
아예 심사위원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극심한 무대울렁증의 백새은, 재일교포 3세로써 언어상의 문제와 기본기의 문제를 동시에 드러내며 멘토들로부터 한 차례 거부당했던 권리세, 손진영은 그 특유의 비장함으로 오로지 김태원이 끌어줌으로써 패자부활전까지 올 수 있었고, 백청강 역시 특유의 콧소리와 모창의 문제로 김태원이 마치 구제하듯 뽑아주지 않았다면 멘토스쿨까지도 못 갈 뻔했었다. 그조차 이전에 몇 차례 탈락의 위기가 있었다. 정희주 역시 다른 멘토들이 떨어뜨리려는 것을 김윤아가 적극 옹호하여 위탄캠프에서 살아남고 지금은 백청강 등과 더불어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는 중이다. 노지훈 또한 방시혁 멘토스쿨 최종심사까지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채 발전가능성만으로 살아남고 있었다.
처음부터 인정받았던 4사람, 그 동안의 우여곡절이야 어찌되었든 나머지 8명은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노력하여 바꾸거나, 멘토를 비롯한 주위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 자신도 몰랐을 재능을 프로그램이, 그리고 멘토가 지금에까지 끌어올려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지 지금 당장의 실력만 보고자 했던 오디션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지난 3월 4일 이른바 김태원과 외인부대라 일컬어지는 김태원 멘토스쿨이 사람들 사이에 크게 화제가 되었던 것이 그래서였다. 탈락의 위기에까지 내몰렸던 백청강이 이태권마저 누르고 또 한 사람의 우승후보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4월 1일 패자부활전에서는 오로지 김태원에 의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손진영이 참가자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1위로 생방송에 출연하는 12명에 합류하고 있었다. 더구나 조선족 출신으로 먼 타지에서 가난과 외로움과 싸우고 있는 백청강의 모습이라든가, 힘겨운 삶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손진영의 모습이 감동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성장이야 다른 출연자들도 함께 성장했지만 이들에게는 그만한 드라마가 있었다. 백새은의 성장도 극적인데 이들의 드라마는 깊은 울림까지 선사하고 있었다.
바로 <위대한 탄생>만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아니 매력이라기보다는 마력일 것이다. 기적을 만들어내는 마력. 그 기적은 꿈일 것이다. 네로가 가난과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기회를 부여받고,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고. 더 이상 네로는 쓸쓸히 놀림처럼 루벤스의 그림이나 보며 개를 친구삼아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낼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야 모두가 그럴 수 없겠지만 그런 꿈을 보여준다.
안타까운 장면도 있었다. 잘못된 창법으로 정작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이동미의 경우가 그랬다. 너무 안타까워 울고 있었다. 앞에서 다른 참가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대신해서 아파하고 있었다. 누군가 바로 이끌어주었다면. 누군가 올바른 길로 어긋나지 않도록 이끌어 줄 수 있었다면. 마치 죄인인 것처럼. 그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부디 없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지금도 수많은 연습생들이 각 기획사에 소속되어 기본부터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기회조차 사실 선택된 소수에게나 허락된 것이었다. 그나마도 <위대한 탄생>에 출연하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외모에 약점이 있으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멀리 <위대한 탄생>을 통해 힘들게 돌아가려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꿈을. 물론 <슈퍼스타K>와 같은 완전한 서바이벌 오디션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당장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조차 찾아서 믿고 가르치고 길러내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준다는 멘토란 너무 따뜻한 매혹적인 꿈일 것이다. 나도 멘토들로부터 배워보고 싶다. 멘티를 선택하는 듀엣미션에서 떨어지고서도 '처음으로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말하고 있던 한승구씨처럼. 단순히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만이 아닌 그를 위한 기회 - 배우고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이것을 필자는 <위대한 탄생>의 기적이라 말하고 싶다. <위대한 탄생>의 마법이라고. 특히 손진영. 특히 백새은. 심지어 다른 멘토들은 물론 시청자들로부터도 외면당했던 그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고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던 바로 그들이야 말로. 누가 되었든 확률적으로 최종우승자 역시 기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순탄한 길을 걸어왔던 네 사람을 빼면. 기적의 반전은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처음 심사위원들의 예측이 들어맞을 것인가? 드라마로서는 반전을 선호하지만. 바란다.
이제 네로도 노래에 뜻만 있다면 <위대한 탄생>에 도전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아도 알아봐주는 멘토가 있을 것이다. 그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스스로 방패막이가 되어 지켜주고 길잡이가 되어 이끌러주는 이가 있을 것이다. 굶주리지 않아도 되고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된다. 파트라슈와 아로아와 함께 내일의 보다 큰 꿈을 꾸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시 꿈이다.
<위대한 탄생>을 보는 이유일 것이다.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위대한 탄생>을 지켜보며 그에 울고 웃고 기뻐하며 감동하는 이유일 것이다. 꿈에 취해서. 그 꿈을 쫓는 열정에 취해서.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하는 따뜻함에 취해서. 꿈을 꿀 수 있다는 구원일 것이다. 그것이 좋아서.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멋진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기를. 가장 멋지고 매력적인 참가자도 좋지만 그러나 <위대한 탄생>이 아니고서는 안 될 것 같은 누군가의 꿈을 이루는 기적도 좋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기적을 꿈꾼다. 그 꿈을 보려 한다. 매주 <위대한 탄생>을 보며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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