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최고의 사랑 - 진달래꽃과 네잎클로버

까칠부 2011. 5. 27. 09:19

왕자는 신데렐라에게 자신이 가져온 구두를 신겨준다. 연인에게 바치는 꽃은 그를 향한 마음이다. 붉은 장미의 꽃말은 불꽃처럼 뜨거운 정열의 사랑.

 

참 상징적이다. 곤란에 처한 구애정(공효진 분) 앞에 무릎을 꿇고 신발을 신겨주며 구원해주는 독고진(차승원 분), 역시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위기에서 세 송이의 장미꽃을 건네는 윤필주(윤계상 분).

 

여기에서 꽃은 진달래꽃과 네잎클로버로 나뉘게 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원래 처절한 역설의 시였다. 고이 보내드리겠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 그러나 꽃을 뿌려 놓을 테니 살포시 즈려밟고 가시라. 차라리 저주하며 붙잡는 쪽이 마음 편하다. 더구나 가는 앞에 뿌려놓은 진달래꽃이 수술받은 병약한 심장이라면.

 

그래 이제부터 나는 불행해질 거야. 어떻게 될지 몰라. 가라, 가. 어떤 이야기가 들리더라도 놀라지 마라. 어떤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돌아보지 마라. 생각하지도 마라.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그러나 부담 갖지 마라. 책임 같은 것 느끼지 마라.

 

아마 일상에서도 뿌려놓는 진달래꽃이란 그런 것일 게다. 그리고 그 진달래꽃이 무서워 뒤돌아서는 사람과, 그 진달래꽃이 애처롭고 눈에 밟혀 발목이 잡히는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살포시 즈려밟고 떠나는 사람들과. 혹은 그 진달래 꽃을 밟고서 한참을 서성이는 사람들. 아예 밟히고 찢겨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물론 독고진은 그런 고전적인 멜로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동백꽃의 점순이다. 첫사랑이 수줍고 설레지만, 그런 만큼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고 저돌적이다. 그러고 보니 10년 전 수술에 성공하기까지 병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했었지.

 

자신의 심장을 내건다. 수술자국을 보인다. 즈려밟고 떠나라. 떠나려거든 그것을 밟고 떠나라. 가슴 아파해라. 안타까워해라. 그러니 떠나지 마라. 그리고는,

 

“차라리 후딱 지나가면 내가 더 괜찮겠지? 그러니까... 그냥... 가!”

 

이야말로 진달래꽃의 마음이 아닐까? 김소월이 진달래꽃을 쓴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짓 괜찮은 척 말투마저 톡 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쓰럽고 애처롭기만 하다. 그 순간에도 여전히 독고진일 수 있다는 점이 배우 차승원의 대단한 점일 것이다. 진심으로 독고진을 동정했다.

 

“당신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앞뒤가 안 맞는 일들이 이러나는 세계 안에 있어요. 당신을 그 세계에서 데리고 나오고 싶었어요.”

“나는 이제 당신을 치료해주기 전에 더 다치지 않게 지켜주고 싶어졌습니다.”

 

독고진과의 관계가 화려한 꽃과 같다면 윤필주와의 관계는 수수한 클로버와도 같다. 독고진은 그녀에게 신발을 신겨주고, 윤필주는 그녀에게 꽃을 바친다. 독고진은 왕자이며 윤필주는 신사다. 독고진의 화려함은 그녀가 몸담은 연예계의 험난함이고, 윤필주의 수수함은 그녀를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내 줄 구원자다.

 

하필 국보소녀의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일반인으로 돌아가 결혼까지 한 한민아(배슬기 분)가 윤필주 앞에 나타난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한민아는 윤필주를 찾아가 과거 구애정이 가장 좋아하던 것이라며 국보소녀 시절 숙소 근처의 빵집에서 팔던 네잎클로버 빵을 가르쳐준다. 격정도 열정도 없지만 평온과 안식이 있는 사랑. 그러나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두근거리고 아슬아슬한 위태로운 열정이 필수적이다.

 

“윤필주씨야 말로 나한테 행운인데, 정말 대박 네잎클로버인데, 지금 제 속에 벚꽃도 피고, 동백꽃도 피고, 진달래 꽃도 막 뿌려지고 해서 클로버가 잘 안 보여요.”

 

확실히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두 말 할 것 없이 윤필주다. 성실하고 헌신적이며 무엇보다 안전하다. 직업도 확실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나무랄 데가 없고, 그래서 극중 연예버라이어티 <커플메이킹>에서도 완벽남으로 캐스팅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독고진은 너무 위험하고 리스크도 크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많이 다쳐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 그런 경험도 적잖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고진에게는 떨림이 있으니까. 자기를 속이고 자기를 억누르고, 그럼에도 끝내 다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고 마는 설렘이 있으니까. 그녀가 국민비호감이 되어서도 3류에 싼티의 이미지를 안고서도 10년 가까이 연예계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연예계에 남아 꿈을 꿀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제니도 한민아도 모두 떠나버린 연예계에서. 독고진조차 두려워하는 상태 그대로.

 

그녀는 강하니까. 구애정에 대한 자신의 짝사랑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받아들인 독고진이 강한 것처럼. 마음이 가지 않는데 그것이 현실이라 해서 그리로 도망치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은 국보급이다. 그래서 독고진과의 관계에서도 독고진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이 가는 것은 알지만 그로 인해 자신을 잃을 수는 없다. 독고진과 구애정의 차이다.

 

아무튼 그러고 보니 흥미로운 것이 역시나 싼티 이미지로 활동하던 연예인 장영란이 하필 또 한의사와 함께 출연했던 예능프로그램에서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장영란이 이 가운데 프로포즈를 받겠다 선언했었다고 하는데, 아마 작가가 그런 부분까지도 고려했던 것이었을까?

 

독고진이 구애정에게 한 말,

 

“너(구애정)처럼 되는게 무섭냐고 했지? 인정해. 항상 무서워.”

 

아마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두려움일 텐데. 그래서 선배 연예인들이 꼭 해 주는 말이 있다. 날아오르는 동안 내려가는 법도 배워두라. 말하지만 구애정은 정말 강한 여자다. 그녀가 항상 말하는 국보급 자존심처럼. 한 순간에 그렇게 추락했는데도 아직까지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한 순간에 나락으로 내몰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사라진 연예인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 이것은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온 대사가 아니었을까.

 

결국 국보소녀가 해체되고 구애정이 국민비호감으로 전락하게 된 사연이 나오게 되었는데. 원래는 강세리(유인나 분)가 구애정에게 수상쩍은 약을 먹이려 한 것이 우연히 한민아가 그것을 먹게 되면서 구애정이 뺨을 때린 것이 모든 것의 발단이었다. 정작 살아남은 것은 강세리, 구애정은 그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10년째 비호감연예인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는 중이고, 제니와 한민아는 아예 연예계를 떠나 버렸다. 어쩌면 그런 근성이 지금의 강세리를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독고진에 대한 감정까지 철저히 비즈니스로 이용할 수 있는 그런 것. 그럼에도 윤필주와 만나면서 보여주던 모습도 그녀의 본모습이었겠지.

 

슬슬 자신과 관계있는 독고진 윤필주 두 남자가 구애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과거의 일로 제니에게 압박을 받은 것을 계기로 강세리가 본격적인 악역으로 등장하게 될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악역이라기보다는 심술맞다는 표현이 더 어울려서. 숨술맞은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철없이 이기적이다. 악의는 아마 지금부터가 아닐까.

 

그나저나 작가도 참 강세리 만큼이나 심술궂다. 감자의 싹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되게 빨리 자란다며 놀라는 장면이 바로 그 몇 분 전이다. 구애정의 독고진에 대한 감정이 구체화되고, 그래서 기회일지도 모르는 윤필주와의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독고진은 구애정에 대한 자신의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된다. 아니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국보소녀의 노래 “두근두근”으로 인한 암시이고 세뇌였다고. 그 노래에 대한 생사를 오가는 수술 도중의 기억이 그로 하여금 구애정에 끌리도록 만든 것 같다고.

 

하긴 이대로 풀려가면 드라마가 재미없을 것이다. 구애정이 속편하게 현실적으로 네잎클로버 윤필주를 선택하는 것도 로맨틱 코미디로서는 재미가 없듯, 이렇게 일찍 서로의 감정이 결정되고 만나는 것도 너무 뻔하고 지루하다. 역시 난관이 있어야 한다. 굴곡이 있어야 한다. 우여곡절이 있어야 사랑은 더 깊고 단단해진다. 불쌍한 윤필주.

 

과연 독고진이 알아낸 사실은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짝사랑에 놀라고 지친 그가 믿고 싶어 ‘선택’한 것이었을까? 어쨌거나 이로 인해 구애정과 윤필주의 리얼연애프로그램은 제작될 듯 보이고, 삼각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데렐라의 구두는 독고진이 신겨줬지만 윤필주도 구애정에게 세 송이의 장미를 선물했다. 유난히 반복되어 나오는 3이라는 숫자. 어쩌면 윤필주에게도 세 번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암시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의 오해와 또 한 번의 엇갈림, 그리고 또...?

 

김유정의 “동백꽃”과 김소월의 “진달래꽃”, 그리고 감자, 신발... 어쩌면 감자는 김동인의 감자인지도 모르겠다. 독고진이 구애정을 오해한 그 장면에서 구애정은 감자를 캐가는 것이 아니라 감자를 가지고 독고진을 찾아갔었다. 고단한 삶에 치여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복녀와 그러나 도리어 사가지고 간 감자를 떨구고 나오는 구애정. 그리고 이번 8회에서의 신데렐라를 나타내는 듯한 신발까지. 구애정이 놓아두고 간 감자에서는 싹이 자라고 있다. 독고진의 감정도 자라고 있었다.

 

과연 작가의 의도인가. 아니면 무의식이거나 필자의 오버인 것인가. 어쩐지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가는 작품일 것이다. 작은 즐거움일 것이다. 보는 보람이 있다. 재미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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