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티헌터 - 장르와 원작에 충실하다

까칠부 2011. 5. 27. 10:35

솔직히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느끼게 된 불만이다. 어째서 보편적 정의에 속하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은 반드시 사적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마는 것인가? 개인의 분노를 통해서만 사회적 정의를 말하려 한다.

 

원래는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결식아동보조금을 사적으로 횡령하고 유용하는 공무원과 국회의원, 그것은 분명 공적으로 보편적 논리에 의해 단죄되어야 할 범죄일 터였다. 굳이 김나나(박민영 분)가 사는 아파트 반지하층에 사는 아이들 나올 필요는 없었다. 아는 아이들이라 들여다보고 그 사정을 알고 현실에 분노하고.

 

어쩌면 최근의 추세가 보편적 정의보다는 개별적 인정에 쏠이고 있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드라마의 시작에 이미 단초가 보이고 있었다. 아웅산 테러로 인해 분노하고 보복을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치란 보편적 논리와 이성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단지 개인적인 복수심을 애국심과 착각하며 5인회는 북파공작원들을 북으로 보내고, 북파공작원들도 그것을 애국심이라 여기고 북으로 갔다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에 분노하는 이진표(김상중 분)의 감정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다.

 

하기는 또 그런 것이 이런 종류의 이야기의 전형성을 담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원래 무협소설의 협(俠)이라고 하는 자체가 그렇다. 협이란 반문명적이고 반사회적인 것이다. 협이란 보편적 규범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수호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그 고기마저 먹는 산적들이 영웅이라 호걸이라 불리는 이유. 역시 남송 이후 대원을 지나며 만연한 협의 가치를 반영한 <삼국지> 역시 국가규모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정작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개인의 의리와 인정이었다.

 

보편이라는 것을 믿지 못할 때, 보편적 정의와 가치와 규범과 같은 것들이 더 이상 개인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 여기게 되었을 때,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을 전제로 생각하고 판단하려 든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협객의 협이고 영웅의 정의다. 그 극단에 나타나는 것이 <데스노트>의 키라나 <아쿠메츠>의 쇼다. 그들은 보편적 정의 따위는 말하지 않는다. 분노와 증오를 말한다.

 

사실 <시티헌터>만 하더라도 원래는 일본의 법테두리 바깥에 존재하는 비밀스런 청부업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었다. 시티헌터 사에바 료가 여자의뢰인의 의뢰만을 받으며 그런 여자의뢰인에 추근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시티헌터의 개별적 정의에 개인의 서사를 더하기 위한 장치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사에바 료를 통해 의뢰인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면서 의뢰인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은 독자 개인에 있어서도 타도해야 할 정당성을 얻게 된다.

 

굳이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보다야 그래도 같은 아파트 사는 아이들이라면. 굳이 자기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대하는 김나나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연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분노하고... 시티헌터가 나서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때다. 김나나와 함께 구청에서 돌아오며 구청의 방범시스템을 살피는 이윤성(이민호 분)처럼.

 

결국은 드라마이기 때문이라 할까? 시청자 개인이 보는 것이다. 만화는 독자 개인이 읽는다. 영화는 관객 개인이 본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대중 개인인 것이다. 개인이 이입할 수 있도록 개인의 이야기로. 개인적 서사로만. 그런 것들을 벗어난 거대서사가 유행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법질서의 수호자로써 합법적으로 자격을 갖추고 범법자를 쫓는 김영주(이준혁 분) 검사와 같은 캐릭터가 인기가 없는 이유다. 검찰과 경찰이 등장해도 사건의 해결은 개인을 통해서다.

 

아무튼 덕분에 개인적인 서사가 주를 이룬 회차였다. 이윤성 개인과, 김나나 개인과, 그 주변의 개인과, 김영주와 김나나의 동료인 신은아(양진성 분), 그리고 대통령 최응찬(천호진 분)과 대통령의 막내딸 최다혜(구하라 분), 이윤성과 현재로써는 청와대 동료인 송영덕과 고기준(이광수 분)등. 첫회가 이윤성의 개인적 서사였다면, 이제 극중 이윤성이 머물게 될 관계에 대한 서사였다. 이윤성과 김나나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얽히며 뻗어나가는. 이후의 전개도 결국 그러한 개인적 서사 안에서 이루어지리라. 덕분에 이야기가 너무 산만한 것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나아질 것이다.

 

어쨌거나 드라마 <시티헌터>가 제작단계에서부터 이미 세간이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라면 역시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이민호가 주연을 맡아 출연하게 되었다는 점과 인기걸그룹 카라의 멤버 구하라의 첫연기데뷔작이라는 것 때문이었을 텐데, 확실히 이민호의 경우 첫회부터 어째서 그가 <시티헌터>의 주인공으로 낙점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큰 크에 단단한 체구, 무엇보다 묘하게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드는 사에바 료의 캐릭터에 최적화된 듯한 보는 눈이 즐거워지는 외모까지. 진지한 것도 껄렁한 것도 더없이 어울린다.

 

우습게도 여주인공인 박민영보다 더 화제가 되었던 구하라의 경우도, 생각보다 역의 비중이 작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는 연기가 처음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어색했고, 어색하다기보다는 캐릭터와 감정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였다. 다만 맞는 옷을 입은 듯 배역 자체가 구하라의 또래와 딱 맞는 배역인 탓에 어색한 가운데서도 자연스럽게 거슬리는 것은 없었다. 아마 매 신마다 카메라 앞에서 다시 감정을 잡고 그것을 연기하는 자체가 처음이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딱 연기 처음 하는 신인. 최근 발음과 발성이 좋지 않는 배우들이 워낙 많은 탓에 그 부분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등장신은 적지만 역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톱아이돌다운 모습을 보인다 하겠다.

 

박민영의 연기는 딱 이민호와 더불어 로맨틱 코미디에 어울린다. 역시 <시티헌터>만의 독특한 분위기일 텐데. 음울한 하드보일드와 유쾌한 코미디. 드라마는 음습한 음모와 폭력의 세계와 박민영과 이민호를 둘러싼 로맨틱 코미디로 이분화되어 진행될 것이다. 단아한 매력이 있고 보는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만 캐릭터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덜 되어 있는 듯한 부분이 조금 눈에 뜨이기는 했다. 작가나 감독의 탓이 아닐까. 의도는 좋지만 그다지 잘 쓰여진 대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첫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시티헌터>원작을 최대한 이해하고 반영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돋보이는 드라마였다. 너무 가볍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원래 <시티헌터> 만화 자체가 분위기가 가볍다. 오히려 원한이라는 극단적인 소재의 선택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가라앉히지 않을까 걱정했을 정도다.

 

결국 이진표의 캐릭터는 원작에서 사에바 료로부터 아버지라 불리던 유니온테오페의 장로에게서 따온 것이 아니었을까.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렸을 적부터 사에바 료를 아들처럼 보살피며 그에게 살인기술을 가르친 사람이었다. 이윤성에게서 아버지라 불리고, 그에게 살인기술을 가르쳤으며, 또한 엔젤더스트를 퍼뜨리던 유니온테오페의 장로와 비슷하게 그는 골든트라이엥글에서 헤로인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는 조직의 보스다. 그리고 마침내 이윤성과 충돌할 것이 예고되는 부분 역시. 예고편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부분이다.

 

전혀 다른 듯하지만 상당히 꼼꼼히 살펴 보면 의외로 원작을 의식하고 신경쓴 부분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오히려 그보다 더 문제라면 지나치게 장르적인 전형성에 의존하고 있는 결과 너무 많은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점이랄까? 하지만 원래 장르물이란 독창성을 기대하고 보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장르적 문법을 잘 소화해 보여주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보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야 비로소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드보일드 액션과 로맨틱 코미디, 그 암울한 잿빛과 화사한 원색의 유쾌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었기에 <시티헌터>는 지금까지도 명작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이진표, 이윤성 부자의 복수와 다시 이윤성, 김나나의 러브라인. 역시 대본을 잘 써야 하고, 연출을 잘 해야 하고, 무엇보다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연기해야 할 테지만. 아니 그 전에 이해할 수 있게끔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글쎄...

 

장면과 장면은 멋지다. 이야기와 이야기는 맛깔나다. 그러나 장면과 이야기의 연결에 있어서도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러운가. 도입부라 워낙 할 말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 이해한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달라지리라. 조금은 더 지켜본다. 화면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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