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 리플리 - 장미리의 비루한 눈물과 고백...

까칠부 2011. 6. 14. 10:52

처음 기대에서 많이 벗어난 모양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원래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우습지 않니? 난 그대로인데 그깟 졸업장 하나에 그렇게 나를 다르게 본다는 게?"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말 그대로다. 과연 일본에서 술집 호스티스를 하던 시절과 지금 장미리(이다해 분) 그녀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오로지 남자를 유혹해서 그 남자를 이용하여 신분상을 꾀하는 지금의 모습이라는 것은? 남자를 유혹해 침대로 향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그 모습이라는 것은.

 

처음 생각하기로는 그랬다. 학력도 낮고 과거도 그다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가진 바 가능성과 재능으로 스스로 자신의 성공을 거머쥐는 그런 이야기를 나름대로 상상했었다. 밑바닥을 경험한 만큼 그만큼 더 악착같이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를 증명해내고 말 것이다. 그것이 나를 매료시켰던 이유였다. 어둡고 바르지 못한 길이지만 그래도 꿈이 있고 의지가 있고 힘이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호텔의 이사인 장명훈(김승우 분), 그리고 이번에는 몬도그룹의 후계자이자 호텔A를 인수할 당사자인 몬도그룹의 기획실장 송유현(박유천 분),  두 남자를 전전하려는 그 모습에서 그녀가 보여준 것은 뭐가 있을까? 적절히 그에 맞는 말과 행동으로 남자를 유혹하여 그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것? 유일하게 자신의 능력을 보인 일본 총리의 딸 유우의 경우만 해도 사실 거의 억지성에 가까운 무리한 설정이었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무엇을 하려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인간인가?

 

결국은 비루한 인생이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기에. 그래서 꿈을 꾸었고,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절망했고,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증오하며 남의 탓으로 돌렸다. 거짓말을 해서 비로소 기회를 얻고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기를 증명하려 하기보다는 단지 주위를 이용할 뿐이다. 모래위에 쌓은 성처럼, 바닥이 닿지 않는 신기루처럼.

 

문희주(강혜정 분)와의 대화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녀가 조금 더 당당한 존재였다면. 그녀가 조금더 자신과 주위에 당당할 수 있었다면. 그러나 그녀는 그 순간에조차 문희주에게 그 탓을 돌리고 있었다. 그녀 때문이라고. 그녀가 상한 우유를 먹고 배탈이 난 때문이라고. 그래서 운명이 뒤바뀌었다고. 그런 장미리를 문희주는 얼마나 가련하게 보았을까? 그것은 자신의 불행에 짓눌려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전혀 당당하지도 못했고, 그녀의 생각처럼 문희주를 몰아세우지도 못했다. 그녀는 비루했고 비굴했으며 비겁했다. 더없이 한심하고 처참하도록 초라하게만 보였다.

 

하기는 원래 그런 캐릭터였다. 그녀가 애써 친구인 문희주를 비웃고 비하하는 이유일 것이다. 끝내 그녀가 친구인 문희주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려는 이유다. 그래야 하니까. 무려 좋은 집안에 입양되어 동경대씩이나 졸업한 문희주는 그럼에도 여전히 자기 밑이어야 하는 것이다. 고아원 시절처럼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자기 손 아래에 있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안심할 수 있다. 그래야지만 친구 문희주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문희주를 원망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에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문희주에 대한 미안함이라기보다는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과연 장미리가 앞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의 <미스 리플리>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드는 이유다. <미스 리플리>의 시청율이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쫓기는 듯 불안해 하며 독기를 세우는 이다해의 연기는 여전히 매혹적이지만 그러나 공허하다. 단지 독하고 악하고 약하기만 해서는 시청자의 호감을 살 수 없다. 단지 문희주가 그러하듯 그녀를 동정할 뿐이다. 그에 비하면 <동안미녀>의 이소영은 비루한 듯 하면서도 디자인이라는 확고한 자기만의 영역과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잘못 생각했다. 역시 드라마는 끝까지 보아야 알 수 있다. 일본에서 호스티스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려 하던 장미리는 무척 아름다웠다. 한국으로 들어와 어떻게 해서든 일자리를 얻으려 여기저기 전전하며 면접을 보는 모습은 애처로웠으며, 그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할 뻔하고서도 당당하려 했던 모습은 매혹적이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기회를 가지겠다. 친구의 동경대 졸업장을 손에 넣었을 때의 그 표정은 전율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이상 그녀가 보여준 것은 무엇인가? 보여주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한 여자의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을 보고자 드라마를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청자들에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으로써 시청자를 납득시킬 것인가.

 

물론 그런 쪽이 구성하기도 쉽다. 적당히 남자를 유혹하고,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며 이용하려는 악녀의 모습 쪽이 더 인상적이고 자극적이기도 하다. 장명훈을 유혹해서 침대로 향하기까지 무척 선정적이기도 했다. 장미리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이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과연 그 모습 어디에서 시청자는 만족을 얻고 쾌감을 얻을까? 그녀가 남자를 유혹하는데 성공하면 함께 기뻐해야 하는가? 장명훈을 유혹하고, 다시 송유현을 유혹하고, 그런 모습에 함께 성취감을 느끼며 그녀의 행복에 자신도 행복을 느껴야 하는가? 장미리가 마침내 파멸하면 시청자는 그녀와 함께 절망할 수 있을까? 설사 그 끝이 파멸이고, 그것이 당연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면서도 시청자는 내심 그녀의 성공에 공감하며 짜릿한 흥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어디에 그런 것이 있는가?

 

시청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와는 동떨어져 작가와 감독만이 홀로 내달리려는 모습이다. 도취되어 있을까? 남자를 유혹하며 자신의 매력에 도취된 장미리처럼 그렇게 작가도 감독도 자신들이 만들어낸 캐릭터와 이야기에 취해 있는 것일까? 오판하고 있다. 정작 드라마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청자들이다. 시청자들에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이제는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 여성에게 자기주장이라 하는 것도 일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차라리 호스티스로 있으면서 호스티스 일에 프로의식을 가지고 보다 철두철미하게 그것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려 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비록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자기를 증명하려는 그녀의 당당함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았을까? 장미리라는 여자는 더욱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차라리 악하고 독하더라도 그런 긍정의 에너지를 사람들은 기대하는 것이다.

 

실망이 크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은 더 크다. 배우들이 아깝다. 특히 이다해. 그녀의 연기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최근 여성 연기자 가운데 가장 나를 매료시키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가 이래서는... 제작진의 분발이 - 아니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저 남자 유혹하는 모습을 보자고 나의 소중한 저녁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하루하루가 이제는 너무 아깝고 소중하다.

 

차라리 안타깝기까지 하다. 처음의 기대라도 없었다면. 어쩌면 장미리라는 여성이 살아온 환경에 따른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자라온 환경을 이겨내기란 사실 현실에서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밖에는 살 수 없다. 비극일 터다. 우울하다. 좋지 못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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