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분이 계셨다. 어디서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면 무슨 빨갱이 매국노 집단으로 매도하던 분이셨다. 그러다가 어느날 직장에서 일로 파업을 하게 되었다.
"이제야 왜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고 하는지 알겠다."
민주노총이 왜 존재하는가를 그제서야 깨달았단다. 그리고 시민이 왜 연대를 해야 하는지도. 지금은 시위로 인해 길이 막혀 지각을 해도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이해를 하신다. 굳이 시위에 참여하거나 그들을 지지하지는 않아도 그런 정도 참아주는 것이 장차 자기를 위한 일임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진보다.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깨치고 행동에 나서는 사람도 없다. 사람은 학습하는 동물이다. 배우고 익힌다. 그리고 실천한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이 되고...
바로 이것이 시작이다. 전혀 그동안 동료연예인이나 사회소수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면 바로 이 일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 된다. 아니더라도 그를 통해 주위의 다른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연대를 하게 되면 그것으로 역사는 그만큼 진보하게 된다. 과거에 어쨌으니... 중요한 것은 지금이고 미래다. 그가 지금 보이고 있는 행동 자체가 진보이며 역사의발전인 것이다.
아무리 김흥국이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 싫어도 김흥국마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여야지 단지 예전의 일로 그를 내치는 것은 시민사회와 연대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념과 사상과 별개로, 그가 어떤 인간이고 어떤 행동을 해왔는가와도 또 별개로, 시민은 시민이기에, 인간이기에 존엄을 갖는다. 가치를 갖는다. 그를 존중하지 않고 끌어안지 않으면 결국 그 만큼 비워 놓고 가야 한다. 깨닫지 못한 채.
솔직히 나도 김흥국에 대한 기대는 없다. 과연 이번 일이 해결되고 김흥국이 동료연예인의 문제에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줄까? 하지만 모르는 거니까. 아니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거니까. 그가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시민사회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부당함에 저항한 흔적을 남긴 것만으로도. 그것을 사람들에 보이고 사람들의 기억속에 각인한 것만으로도.
시민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시민이란 무엇인가? 무한히 자유로운 개인이다. 자유로우며 그래서 다양한 개인들이다. 그러한 무수한 개인의 집합이다. 집합이면서 독립적인 개인이기도 하다. 그 개인의 연대로써 민주주의란 존재한다. 단지 과거의 성향으로, 혹은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간다울 때 이인권이 있다. 시민다울 때 시민일 수 있다. 그 답다는 말이 바로 시민을 부정하는 파쇼의 시작임을. 내가 지난 정부에서 지지자들을 무척이나 혐오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자기들만이 시민이고 국민이었다.
어째서 김흥국을 지지해야 하는가? 그것은 당위인 것이다. 개인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 양심에 정직했던 것을 이유로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된다. 직접 방송에서 지지발언을 한 것도 아니고 방송외적으로 사적인 자리에서 정치적 참여를 한 것이 불이익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미화와 김제동이 있기 때문에 김흥국도 당연하다. 그보다는 김흥국이 안 되기 때문에 김미화와 김제동도 안된다.
김흥국에 대해 여전히 쏟아지는 비판과 조롱들이 불편한 이유다. 시민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에서 시민이 갖는 의미란 무엇인가? 김흥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인시위에 대해서. 다움을 요구하는 것이 파쇼다. 자격을 요구하고 그것으로 제한하고 강제하는 그것이 파쇼다. 경계하는 바다.
말하지만 역사가 진보하는 것은 한 사람부터다. 진화도 어느 한 개체로부터 시작된다. 과거가 아니라 그 순간이다. 그 순간 역사는 미래로 나아간다. 과거만 돌아봐서는 발전이 없다. 믿는 것이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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