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시티헌터>에서 최악의 적은 예상대로 이윤성(이민호 분)의 양아버지 이진표(김상중 분)이 될 것 같다. 원작의 시티헌터에서도 사에바 료는 아버지라 불렀던 유니온 테오페의 장로와 마지막 싸움을 벌인다. 확실히 제목만 가지고 온 것은 아니랄까.
아무튼 프로치고는 어처구니없이 허술한 것은 여전하다. 그렇게 구하기 힘든 향수라면 그 향수를 구입한 명단을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용의자를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은 명품브랜드에, 더구나 미리 주문하고서 대기해서 구입해야 하는 명품향수에, 그리고 심지어 그것들을 현장에 흘리고 떠났다.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하기는 그를 가르친 이진표부터가 기껏 저격총까지 들고 서용학을 암살하러 갔다가 그만 자기 지문을 노출하고 말았었다. 나중에 김영주가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손에 가짜 지문을 붙이고 있을 정도의 정성이라면 사전에 그만한 주의는 기울였어야 하지 않을까? 김영주가 유능한 것인지. 아니면 이진표와 이윤성이 세트로 무능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진표가 한창 교육받고 훈련받았을 당시의 대한민국 당국의 체계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이런 류의 액션스릴러를 그다지 써 본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닌가. 원래 이윤성과 같은 프로들은 완벽함에 그 짜릿함이 있는 것이고, 김영주와 같이 그를 쫓는 공권력은 그럼에도 그 완벽함을 깨뜨리려 하기에 전율이 있는 것이다. 차라리 프로파일링을 하고, 혹은 이윤성과 이진표가 잠입한 루트를 되짚고, 어쩌면 군관계등을 통해서 같은 프로의 조언을 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허술한 증거들에 의지하기보다.
너무 쉽다. 마치 일부러 남겨 놓은 듯한 이윤성의 흔적에, 그야말로 몇 개가 생산되어 팔렸는지도 모를 인형 하나에도 그를 연상케 하고, 더구나 이윤성을 돕는 진세희(황성희 분)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마치 짜맞춘 듯, 김영주를 위해 준비해 놓기라도 한 듯 그렇게 당연하게 모든 것이 술술 풀려나간다. 만일 김영주가 주인공이었고 오히려 이윤성과 이진표 부자를 쫓는 것이 목적인 드라마였다면 얼마나 기운이 빠졌을까? 그렇다고 이윤성이 김영주를 의식하고 경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로 정신이 팔려 있으니.
완벽한 가운데 이윤성과 이진표의 사이가 벌어졌다. 단서라고는 하나도 없는 가운데 이윤성과 이진표가 충돌하며 빈틈이 드러난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가운데 마치 발악하듯 시티헌터를 추적하고 있는 김영주 앞에 나타난 두 사람의 분열과 갈등. 그리고 충돌. 파편을 손에 넣고 이야기는 더 급박하게 진행된다. 그런 김영주를 이윤성은 아닌 척 의식하고. 이진표와 충돌하면서도 그런 김영주로부터 이진표를 보호하려 들고. 김영주는 이윤성에게 농락당하면서도 차근차근 그에게 좁혀간다. 아마도 정석으로 쓴다면 이런 식으로 쓰게 될 테지만.
물론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세상에 이야기를 쓰는데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건 이것대로 재미있고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다. 문제라면 지금 상태로는 전혀 긴장이라든가 짜릿한 전율과 같은 것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것. 정작 비리정치인이고 단죄받아 마땅한 서용학이건만 그를 응징하는 이윤성의 행동에 어떤 짜릿함을 느끼지 못한 이유와 같다. 너무 지분거린다. 그렇다고 갈등과 긴장이 첨예해서 마음을 조이게 하는 것도 없다. 김영주가 시티헌터가 이윤성임을 너무나 쉽게 단정짓는 것처럼.
스릴러란 비트는 것이다. 꼬는 것이다. 그래서 퍼즐처럼 푸는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비틀린 것을 억지로 펴고, 꼬인 것을 다시 풀어 버리고, 마치 게임에서 치트를 쓰듯. 그렇게 답을 보여주며 이제 재미있을 것이다. 김영주의 비중이 너무 커진 게 문제다. 기왕에 커질 것이면 진지하면서도 항상 뒷붇이나 치는 허당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고기준 역할의 이광수가 김영주의 역할을 맡았으면 더 재미있었을까? 고기준과 김영주의 역할이 바뀐 듯도 하고.
그래서 결국 이번에도 가장 큰 갈등요소는 이윤성과 김나나(박민영 분)의 사이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김나나는 그동안의 의혹을 이윤성의 입가를 손으로 가림으로써 이윤성이 시티헌터인 것을 알아차린 것 같고, 이윤성은 그런 김나나를 이진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짐짓 냉정하게 차 버린다. 한창 깊어지려는 김나나의 감정에,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그것을 표현하지 모하고 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차라리 그 비련이 더 흥미를 자극한다고나 할까? 결국 서용학을 경호하는 과정에서 총을 빼앗기고 인질까지 된 일로 해직의 상황에까지 내몰린 김나나의 우울한 처지가 더욱 그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로맨스 액션이라기보다는 액션 로맨스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액션은 단지 이윤성과 김나나의 관계를 돋보이기 위한 설정이고 장식에 불과한 것이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내가 만난 킬러" 정도가 될까? 그렇게 역시 차라리 김나나의 입장에서 이윤성을 보는 구도로 갔더라도 또 다른 흥미를 자아냈을 것이다. 이윤성의 정체에 대한 묘사를 최소화하고 김나나의 눈으로 이윤성과 시티헌터 두 존재의 간극을 채워나가는 것도 흥미로운 과정이었을 터다.
균형을 잃은 탓이다. 이윤성과 김나나의 로맨스, 이윤성과 이진표 부자의 복수, 시티헌터 이윤성과 이진표 부자를 쫓는 김영주, 그리고 이윤성과 이진표 부자의 충돌.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난번에도 말했듯 이윤성이 너무 허술한 것으로 인해 그 균형이 무너지며 뒤엉켜버리고 말았다. 이제 김영주가 이윤성의 정체를 눈치챈 것 같은데 이건 또 어떻게 해결할까? 아마 이윤성과 이진표의 충돌에 광기를 드러낸 이진표를 막아내는 역할로써 협력관계로 발전할지도 모르겠다. 원작에서의 믹 엔젤과 노가미 사에코의 역할일까?
어쨌거나 이진표가 이경완을 마침내 살해함으로써 헐렁하게까지 보이던 드라마에 바짝 긴장이 조여지게 되었다. 어찌되었거나 죽이지 않고 단지 파멸시키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과 직접 손을 써서 죽이는 것과는 받아들이는 느낌이 전혀 다르니까. 어떻게 해도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치열하고 더 첨예할 수는 없다. 이제까지가 마치 장난하는 것과 같았다면 이제부터는 무언가 본격적이라는 느낌일까?
마지막에 자신의 광기를 아들인 사에바 료가 잠재워주기를 바랬던 유니온 테오페의 장로처럼, 그러나 이진표가 이윤성의 방식에 분노하며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된 만큼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물론 원작과 드라마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결국 끝없는 이진표의 폭주와 그것을 막는 이윤성의 대결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새 이윤성의 정체를 눈치챈 김영주와 진세희가 그 싸움에 깊이 개입하게 되고. 역시 김나나도. 이대로 로맨스로만 끝나기에는 김나나의 존재가 아깝다.
과연 다음 타겟인 김종식에 대해 드라마는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까? 더구나 김영주와 김나나와도 서로 깊이 얽혀 있는 상대일 터이기에. 아마도 김나나에게 김영주의 존재가 드러날 테고, 역시 그것을 계기로 더욱 김영주와 진세희가 복잡하게 이윤성과 얽히게 될 듯도 하고. 어쩌면 김종식의 존재가 김영주와 이윤성이 어떤 형태로든 밀접하게 엮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어 줄 지 모르겠다. 그러면 더 재미있을 텐데. 이야기 자체가 상당히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기대는 가져본다. 재미있으리라.
결국은 장르인가 드라마인가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장르에 대한 애정이 깊은 필자의 눈에 모든 것이 모자르고 어색한 것 투성이지만, 그러나 보편적인 드라마로써는 이윤성과 김나나의 달달한 사랑이야기 등 볼 만족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윤성의 복수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비리라든가, 그것을 응징하는 통쾌함, 더불어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액션들. 어찌되었거나 <시티헌터>는 한국 드라마일 테니 말이다. 아쉽지만 그래서 적절하다. 적당하다.
아버지 이진표와의 갈등과, 어쩔 수 없이 밀어내야 했던 김나나에 대한 감정과, 어느새 턱밑까지 쫓아온 김영주, 그리고 남아 있는 복수. 한 구석에 자리한 어머니에 대한 애증. 과연... 원작과는 다른 복잡함과 깊이가 한국 드라마임을 느끼게 한다. 그 점 무척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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