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게 거짓말을 해봐 - 무존재가 되어 버린 현상희와 오윤주...

까칠부 2011. 6. 28. 11:13

필자가 한때 시나리오 수업을 받으면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이 주어진 소재 몇 개로 이야기를 구성해 보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배운 것이 이야기를 일단 만들고 그 이야기로부터 필요한 요소들 - 즉 캐릭터와 오브젝트를 추출해내는 것이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드라마라고 하는 것은 캐릭터와 캐릭터의 관계, 그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사건에는 여러가지 매개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캐릭터를 만들고 각 상황과 사물을 배치한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오윤주(조윤희 분)는 저기 왜 나오고 있는 것일까? 현상희(성준 분)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드라마에 캐스팅된 것일까? 비중이 작은 것도 아니다. 차라리 카페에서 기타치던 아가씨 정도의 비중이라면 그저 수많은 단역 가운데 하나이겠거니. 그러나 원래는 현기준(강지환 분)의 비서인 박훈보다도 비중이 더 높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도닦는 드라마도 아니고, 오윤주는 혼자서 술마시고 괴로워하더니만 더 이상 현기준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 파리로 돌아가겠다. 현상희 역시 혼자서 화실에 들어앉아 그렇게 고민하더니 모든 정리가 끝난 듯 오윤주를 해맑게 보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결국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현기준(강지환 분)과 공아정(윤은혜 분) 커플의 위기라는 것도 그들의 관계 안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 현기준 공아정 커플의 위기 역시 오윤주와 현상희와는 별개로 전혀 상관없이 해결되고 있었다.

 

마지막에 공아정과 현기준을 차례로 만나는 오윤주의 모습은 왜 이리 공허한가. 화실에서 공아정을 만나는 현상희 역시 그림보다도 존재감이 없다. 캐릭터라는 건 결국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것일 텐데, 공아정이나 현기준이나 현재 아무런 관계도 맺고 있지 않으니 과거의 아련함처럼 형체도 없이 허무할 밖에.

 

나중에서야 알았다. 필자의 경우 그다지 드라마 외적인 요소들에 크게 관심을 두고 하는 타입이 아니었던 터라. 작가가 바뀌었다. 아주 오래전에 바뀐 듯했다. 드라마가 처음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로맨틱 코미디가 멜로가 되고, 모든 이야기가 나의 예상을 깨고 진행되고 있었을 때. 나는 그것을 어떤 신선함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얼마전까지 서프라이즈라 무리수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가 바뀐 탓이었구나.

 

어쩔 수 없다. 기존에 쓰던 이야기가 있으니 오윤주와 현상희가 있다. 그런데 오윤주나 현상희나 원래 쓰던 작가가 필요에 의해 설정한 캐릭터들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어쓰게 된 작가에게 이들의 존재는 낯설다. 그렇다고 준비기간이라도 충분하면 어떻게 살려보겠는데, 그조차도 우리나라 드라마 현실상 쪽대본이기 쉬웠을 것이다. 아마 현기준과 공아정의 캐릭터를 살리는데도 - 그조차도 어느새 무색무미의 특색없는 캐릭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째서 서프라이즈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는가. 기존의 내적인 관계와 구조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자칫 잘못 이야기를 넣고 나면 이제까지의 유기적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 이야기가 일관성을 잃고 맥이 끊길 수 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사건으로. 작가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결과는 이렇지만.

 

덕분에 현명진(오미희 분) 회장 역시 그다지 비중이 없고, 공아정의 아버지 공준호(강신일 분)과 심애경(이경진 분)을 두고 삼각관계를 이루던 황석봉(권해효 분) 역시 화면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동안 심애경에 대한 마음이 식어버린 것일까? 유소란(홍수현 분)도 더 이상 공아정을 질투하지 않고, 천재범(류승수 분) 역시 어느새 반듯한 남편으로 돌아와 있고. 차라리 이대로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재미는 있겠다.

 

진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조건을 이야기하는 현명진 회장에게서, 그리고 대기업 CEO와 열애설이 난 덕분에 하마트면 공무원을 그만둘 뻔했던 공아정의 이야기에서. 차라리 그렇게 서로 좋아하게 되어서, 그러나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아 괴로워하고 갈등하는 그런 이야기였다면 그것도 꽤 재미있지 않았겠는가. 결국 마지막 갈등요인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봐야 전력이 있으니 기대는 되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는 드라마가 없다. 고민도 갈등도 충돌도 그 어떤 드라마적인 요소도 없다.

 

아니면 차라리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신데렐라라 불리는 것도 싫고, 단지 현명진의 아내로써만 여겨지는 것도 싫다. 일을 그만두기도 싫다. 현기준을 좋아하는 만큼 더욱 우울하게 가라앉는 공아정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과연 로맨틱 코미디인가. 그러고 보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보며 웃어본 지도 꽤 되었다. 웃음이 없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없는 드라마. 이것도 새로운 경험일까?

 

그리고 한 가지 바로잡을 부분은,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인사에게는 중요한 업무를 맡기지 않는다. 사랑을 하는 건 좋지만 그런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한 업무를 맡는 것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업무에 크게 지장을 주는 것이다. 당장 결과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올 텐데. 그로 인한 감정적인 행정적인 비용은 누가 감당하겠는가? 더구나 모든 비리는 그런 개인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공아정이 해직된 것이 당연하다고 보기에. 서로 연인관계였으면 그것을 알리고 다른 사람에게 선정을 맡겨야 했었다.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오해의 여지를 줄였어야 했었다. 그것을 하지 않은 자체만으로도 공아정은 공무원으로써 직분을 다 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잃어버린 고리를 찾은 것 같다. 가끔은 드라마 외적인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그리 어색하고 부대끼더니만 작가교체의 부작용이었다. 최악의 사례일까? 작가를 교체하려면 면밀한 준비를 거쳐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교체를 했어야 하는데, 그냥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다고 일단 바꾸고 보았으니 결국 드라마가 이리 흘러갈 밖에. 모르고 보았을 때는 처음에는 의도한 것이겠거니, 그러면서 보고 있다가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이야기하는 바, 기획력의 문제일 것이다. 처음 드라마를 제작하게 된 것도, 작가를 교체하게 된 것도, 전혀 명확한 방향성 없이 주먹구구. 제대로 된 계획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었을까? 느닷없이 소품만도 못해진 오윤주와 현상희가 불쌍할 뿐이다.

 

아마 이제 한 회인가? 더 이상 궁금한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다. 단지 어떻게 이 난잡한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는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것은 있지만 굳이 예상따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지켜볼 뿐이다. 그 마지막을. 참 힘빠지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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