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게 거짓말을 해봐 - 그러나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까칠부 2011. 6. 29. 07:49

그야말로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고 하는 드라마를 한 눈에 압축해 보여주는 엔딩이었다. 마지막회가 되어서까지 서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밀고당기기에, 더구나 마지막에는 되도 않는 오해까지. 오해도 아니다. 일방적인 단정이었고 판단이었지. 도대체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의 사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확신을 가지고서 사귀는 것. 다른 하나는 확신을 가지고자 사귀는 것. 전자는 이미 상대를 좋아하기에 함께 있고 싶어 사귀는 것일 테고, 후자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막연한 호감이 더욱 그를 알기 위해 사귀려 하는 것일 테고. 결국 어느 쪽이든 사귐의 끝은 확신이거나 아니면 불신이다.

 

로맨틱 코미디 역시 마찬가지다. 멜로라는 것도 그렇다.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있었든, 아니면 막연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든, 그 끝은 서로에 대한 확신이어야 할 터다. 그것은 이루어짐에 대한 확신이기도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음에 대한 확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맞지 않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헤어져야 함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희극이거나, 아니면 비극이거나, 그리고 그 가운데 희극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는 장르일 것이다.

 

과연 결혼을 앞두고 결혼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는 있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은 이제까지의 자신을 잃는 듯한 두려움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 더구나 그동안에도 현명진(오미희 분) 회장을 비롯 공아정(윤은혜 분) 자신을 단지 현기준(강지환 분)의 아내로써만 공아정을 대하려 하고 있었다. 신데렐라라고. 현기준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월드그룹의 안주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어디에도 인간 공아정은 없었다. 두렵고 부담될 만하다. 다만 왜 지금인가?

 

바로 그를 위해 로맨틱 코미디가 있는 것이다. 서로 전혀 접점이라고는 없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겠는가? 갈등도 많고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두려움과 불안, 설레임, 떨림, 안타까움과 간절함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딛고 마침내 두 남녀가 사랑을 이루고 만다. 거기에 로맨틱 코미디의 쾌감이 있다.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로맨틱 판타지가 있다. 그러면 그 가운데 결혼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 것인가?

 

사실 소재는 많았다. 당장 무존재로 전락해버린 오윤주(조윤희 분)나 현상희(성준 분)의 캐릭터만 적극적으로 활용했어도 그 동안에도 윤은혜에게 그런 부분을 일깨울 기회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현명진이 한 손 거들고, 더구나 아버지 공준호(강신일 분)와 심애경(이경진 분)과 황석봉(권해효 분)의 삼각관계까지 더해지면 더욱 확실해진다. 유학을 떠나기로 했던 유소란(홍수현 분)이 애써 임신까지 해가며 캐릭터까지 바꾸고 공아정에게 상의해 오지 않더라도. 유소란과 천재범(류승수 분)의 갈등이 초반 설정처럼 극단을 치달았으면 그것은 어땠을까? 하지만 그런 모든 기회들은 되도 않는 서프라이즈로 채워버리고 말고.

 

고민할 틈이 없었다. 갈등할 틈이 없었다. 정작 현기준을 좋아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질만한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공아정은 단지 타자였다. 그에 깊숙이 개입하며 현기준의 존재를 느끼고 그를 절실히 필요로 할 만한 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서로 좋아하는가, 아닌가? 확신조차 없이 그렇게 주위에 떠밀리듯 어느새 연인이 되고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고.

 

그런 점에서 작가가 얼마나 인물의 심리나 상황등에 대해 세밀하게 파악하고 그에 대해 충실하게 극본을 쓰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겠다. 정작 그동안 공아정에게 현기준에 대해 확신을 가질만한 어떤 계기도 사건도 없었다. 현기준은 오윤주도 있고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공아정에 대한 확신을 오래전에 가지게 되었지만, 공아정은 이리저리 떠밀리기만 할 뿐 정작 진지하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었다. 그것을 파악한 자가 나름의 세심함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너무 늦어버린 고민 탓에 드라마가 늘어지고 말았다. 마지막회 정도는 깔끔하게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어야 했는데, 되도 않는 밀고당기기에 이야기만 늘어지고 말았다. 더구나 난데없는 천재범의 가출이라니? 어느새 공아정에 의지하고 있는 유소란의 캐릭터도 당황스럽거니와, 더구나 그것이 공아정으로 하여금 고민하던 현기준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만드는 한 계기로써 설정된 장면이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약간은 민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천재범이 가출하고, 그런데 천재범이 가출한 사이 유소란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아내가 임신했다는 이야기에 어느새 천재범은 표정을 바꾸고 공아정 앞에서 애처가의 모습을 보인다. 결국 결혼을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니. 아이 아버지가 된다는 기쁨에 아내와 화해하는 남편 아닌 아버지의 모습 역시. 흔한 클리셰지만 그다지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것을 아이로 인해 아내가 어머니로써 소외당하는 갈등의 근거로 썼다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오히려 공아정의 결심에 도움이 되었다면 현기준이 해 주었던 말 쪽이 더 가까웠을 것이다.

 

"시간은 무한해 흔적도 없고, 공간은 무한해 자취도 없다."

 

결국은 박물관 관계자가 말한 너무 가까이 있으면 알 수 없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오윤주가 돌아왔을 때, 그리고 공아정 앞에서 현기준이 오윤주를 선택했을 때, 이미 공아정은 그 감정을 경험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당시 공아정은 현기준으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겨우 가까워졌는데 이제는 현실의 문제가 그녀를 두렵게 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전혀 없으니 마음의 결정이라면 이미 오래전에도 가능했을 것이다. 역시 드라마가 얼마나 인물들의 갈등과 해결에 관심이 없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덧붙여,

 

"사랑에 대한 가치를 기억으로 되찾아 준다."

 

아마 그것은 사랑보다는 정이었을 것이다. 정이란 누적된 관계이며 감정이다. 좋아했었다는 기억. 행복했었다는 기억. 애절하고 간절했었던 기억. 그 기억을 곱씹어 그리워진다. 아련하게 안타까워진다. 그것을 달리 사랑이라고도 하는 모양일 테지만. 어쩌면 영원과도 같던 긴 시간 속에 그 짧았던 순간순간의 감정이 그녀의 결심을 일깨운 것이리라. 마지막 터무니 없는 오해까지 맞물려.

 

하여튼 참 긴장이라는 게 없는 드라마다. 드라마가 없다. 드라마란 갈등이며 긴장이다. 바로 전회까지도 현실의 문제로 현기준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만한 갈등과 긴장이 있어 그 뒤가 궁금해야 할 텐데 헤실헤실 웃으며 마주하는 두 사람 사이에 그런 것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흐르는대로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은 해결되고 중간 과정이 생략된 듯 결론이 나와 버린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인데도 도저히 그 끝이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재범이 가출한 그 순간부터 괜한 사족이라는 생각에 여름이고 장마철임을 떠올리고 말 뿐이었다. 마지막 두 사람의 베드신은 진짜 엔딩을 내보내야 하는데 시간이 남아돌아 집어넣은 장면처럼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나의 이야기란 퍼즐과 같은 것이다. 하나의 캐릭터와 또 하나의 캐릭터, 각 캐릭터가 만들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속에 다시 생산되고 커져가는 이야기, 그렇게 이야기란 덩굴뿌리처럼 뿌리를 넓히며 그 크기를 키워가는 것이다. 이야기란 바로 그런 유기적 관계속에 있다. 코미디의 헤프닝이란 바로 그런 유기적 관계 속의 한 부분일 터다. 로맨틱 코미디에서의 헤프닝은 마지막을 위한 크고작은 퍼즐조각들이다. 과연 드라마에서 퍼즐조각은 제대로 갖추어졌는가? 혹시라도 퍼즐조각을 잃어버리고 손으로 나머지 조각을 그려넣지 않았을까?

 

차라리 허황되더라도 처음의 분위기를 계속 밀고 갔으면. 그랬다면 시청율은 낮았을지언정 이렇게 방향을 잃고 표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을 보았는가 허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과연 어떤 드라마였을까? 어떤 느낌의 드라마였지?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아쉬운 것이다. 초반 설정은 신선했고, 주위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중반 디테일이 더해질 때는 드라마가 스케일이 있구나. 하지만 미니시리즈이고 이제 남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 했을 때부터 수습을 걱정하게 되더니, 결국 마지막이란 허무함. 나는 뭣하자고 이것을 보고 있었을까?

 

그야말로 작품에 대한 부정일 것이다. 자기부정이다. 이제까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제까지의 모든 설정은 허구이며 무의미한 헛된 것이다. 헛된 것을 보고 느끼고 판단하고 있었다. 아나 근래 최악의, 어떤 말로도 설명 안 되는 엔딩이었다고나 할까? 보고 있는 내가 미안했다. 실망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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