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悅, 마음이 푸르른 그대들에게...

까칠부 2011. 7. 11. 07:49

한 가지 바로잡고 시작했으면 한다. 지난주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 첫회가 방송되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며 반응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슬퍼서 눈물이 나더라. 그러나 과연 슬퍼서만 흘리는 눈물이었을까?

 

열(悅)이라 한다. 희열, 법열 할 때 바로 그 열(悅)이다. 즐거운 것과 기쁜 것은 사실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다. 가족과 함께 유원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가 첫걸음을 떼고, 처음으로 말을 하던 그 순간의 기쁨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간절함일 것이다. 절실함이다. 그 어떤 삿된 궁리도 계산도 포함되지 않은 올곧은 순수한 바람이다. 내 안에 결여된 무언가. 혹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무언가. 그래서 그것을 마침내 손에 넣었을 때의 그 충만감. 북받쳐 오르며 마침내 넘쳐서 전율이 일고, 소름이 돋고, 마침내 눈물이 쏟아진다. 목은 메이고 가슴은 답답하고 어느새 뜨거워진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열(悅)이란 곧 열(熱)이고 또한 열(烈)이기도 하다. 뜨거운 것이고, 간절한 것이고, 그리하여 충만하여 행복한 것이다. 아이가 일어나 걷기를. 아이가 '아빠'라 말하기를.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러기를 바라니까. 그래야 하니까. 그래서 그 순간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북받쳐오르는 기쁨을 느낀다. 그것을 희열(喜悅)이라 부른다.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기쁨. 행복.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다. 

 

과연 가슴아프고 우울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는가? 눈물을 흘리고서 그리 고통스럽고 애통해했는가? 오히려 비에 씻긴 듯 시원하게 맑아지고 있었다.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픈 가운데서도 비오고 난 뒤마냥 후련해지고 있었다. 말끔하게 개어 버린 하늘마냥 웬지 모르게 눈물이 나오도록 기쁘고 반갑다.

 

단순히 슬프기만 하다면 다시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기만 했다면 굳이 다시 보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눈물은 그 이상의 행복과 환희를 담은 눈물이었다. 인간에 대한 경외와 삶에 대한 애정, 무엇보다 순수에 대한 올곧은 본능.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시 눈물을 흘리기 위해 그것을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울기 위해서. 슬퍼서가 아니라 그것이야 말로 벅찬 감동이고 기쁨일 터이므로.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7월 10일 방영된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 두 번 째 이야기는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첫회처럼 격한 눈물은 없지만 어쩐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흐뭇함이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가슴벅찬 웃음이 있었다. 입꼬리는 올라가고 자세는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헤실헤실. 웃는다.

 

올해 아흔살이 되신다는 이혜진자 할머니. 90성상을 온갖 풍파와 고락을 다 겪어 왔을텐데 이제 와서 뭐가 그리 긴장되고 떨리고 하겠는가? 하지만 평소 잘 하시던 노래였음에도 가사가 기억나지 않아 세 번이나 다시 부르고 계셨다. 그러고도 미련이 남아 한 번만 더 부르게 해 달라.

 

고목나무에도 꽃이 핀다던가? 아마 잊고 있던 설렘이었을 것이다. 다시는 없을 것이라 여기던 벅찬 떨림이었을 것이다. 긴장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하셨지만 어느새 노래를 부르고 꿈을 꿀 수 있게 되는 순간 할머니의 가슴에도 살랑이며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기대가 없으면 불안도 없다. 희망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다. 간절한 것이 있기에 떨리는 것도 있는 것이다. 이제 삶을 돌아보고 정리할 때가 되었어도 다시 앞을 보면 아직 남은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나가자면 불안도 두려움도 떨림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런데도 간절히 바라게 되니. 아흔살이 되었어도, 아니 100살이 되었어도 사람은 누구나 같다.

 

매슬로우가 주장한 욕구 5단계설이다. 처음에는 살아남기를 바라고, 살아남게 되면 안전하기를 바라고, 안전이 확보되면 어딘가에 소속되어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바라고, 그리고 모든 것이 충족되었을 때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기를 바라며,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를 바란다. 이 가운데 가장 존엄하고 고차원적인 욕구가 바로 뒤의 두 가지 자존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다.

 

어차피 이룰 것은 다 이루었다. 물론 모든 노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몸마저 건강하지 못해 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 노인분들을 보면 그렇게 서럽고 외로울 수 없다. 당장의 생존조차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그런 고차원적인 욕구란 어쩌면 사치일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에 오디션씩이나 보러 올 정도면 그래도 많은 것을 이루고 난 뒤일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 아들이 신청을 하고, 며느리와 딸이 사연을 적어 보내고, 오디션을 보는 동안에도 문 밖에서는 딸과 며느리가 오히려 당신보다 더 떨려하며 지켜보고 있다. 나란히 함께 오디션을 보려 들어온 조석영(72세) 박찬열(71세) 부부의 모습은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가? 어느 정도 살 만하고, 더 이상 어려운 일도 없고, 장성한 자식과 손주와 그리고 아내와 남편이 있다. 교사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와 설겆이를 하며 중국에 집도 사고 딸도 데리고 들어와 시집도 보냈다고 하는 오정숙(56세)의 자부심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이제 존경까지 받고 보면 남은 것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 인간이 인간인 이유일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인간은 꿈을 꾸기 위해 살아간다. 꿈을 꿀 수 있을 때 인간은 살아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을 노력하고, 꿈을 쫓느라 수많은 어려움과 절망과도 싸우면서, 그럼에도 그 꿈을 이루는 그 순간의 희열을 위해서 사람들은 살아갈 힘을 얻고 나아갈 의지를 가지게 된다. 꿈을 잃는 순간 사람은 늙어가며, 꿈을 꿀 수 없을 때 사람은 죽어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된 이들의 눈빛이란 그래서 사막보다도 더 황량하고 메말라 있다.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있다. 꿈을 꿀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된다.

 

차라리 병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꿈을 쫓기를. 자칫 잘못될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는 꿈을 쫓은 그 설렘과 긴장을. 그래서 불과 1년 전 간과 신장을 이식하고, 또 다시 몸에 이상이 생겨서 담즙주머니를 옆에 찬 채로도 이만덕(56세)씨는 아내의 반대에도 병원을 퇴원하고 오디션을 보려 서 있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무엇보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무엇보다 자신을,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들의 노래가 그토록 맑고 투명하게 들리는 것은 그래서다. 물론 잘하신다. 배다해 류재향(63세)씨도 계셨고, 선우 안봉하(57)도 계셨다. 연변에서 오신 오정숙씨와 아나운서출신 조석영, 박찬열씨 부부 역시 프로수준의 실력을 보였고, 이비인후과 청력검사실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영현(68세)씨나 은퇴를 앞두고 있다던 김철(60세)씨의 노래 역시 훌륭했다. 아마 나이를 지우고 노래만 들었어도 분명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그분들의 노래에는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절로 눈시울을 글썽이게 되는.

 

15년만에 처음 부르는 노래라 했었다. 음악교사를 하다가 술과 담배, 그리고 생활에 쫓겨 목소리를 잃게 되었다고. 잃어버린 것을 하나씩 찾아보고자 술과 담배를 끊고 목소리가 어느 정도 돌아온 듯하자 주위에 알리지도 않고 오디션에 응하게 되었다고 했었다. 너무 오랜만에 부르는 노래라 목소리가 자기 목소리 같지 않지만 이원배(55세)씨가 15년만에 처음 노래를 부르기로 한 장소는 다름아닌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 오디션장이었다. 그것이 이유가 되지 않을까?

 

"애보는 늙은이, 집 보는 늙은이, 갈 곳 설 곳 잃어가는 우리에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 수 있게 배려해주신 남자의 자격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윤형빈도 말하고 있다.

 

"놀란 게, 저런 어머님 아버님들도 마음 속에는 꿈이 다 있으신 거였네요."

 

하지만 나이가 들었으니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루지 못한 꿈들이 생각나는지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채워줄 수 있는 꿈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떤 삿된 욕심에서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갖는 당연한 본능이고 욕구일 것이다. 인정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다. 그 이전에 가치있는 인간이고 싶다. 가치있는 삶을 살다가 가치있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 오히려 살아갈 날들이 많은 만큼 여러 이해가 얽히며 궁리와 계산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에서의 그것보다 더 절실하고 더 순수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무사(思無邪), 생각함에 삿됨이 없으며, 열(悅), 그것을 대하는 마음이 오롯하게 벅차 오르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또한 인간의 본능일 것이므로. 순수를 쫓고, 그 순수를 탐하고, 다시 그 순수에 기뻐하는 바로 그것이야 말로. 인간은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다.

 

참 구성이 좋다고 생각한다. 첫 회에는 노래보다는 사연과 진정성으로 눈물을 있는대로 쏙 빼 놓았다. 그리고는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는 뛰어난 실력들과 그분들의 삶을 교차해 보여 주었다. 격한 감동은 없지만 젖어드는 희열은 있다. 그리고 다음주는 이번주보다 더 뛰어난 실력과 그리고 유쾌한 웃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주 뮤지컬배우 홍지민씨의 친정어머니인 김유옥(80세)씨는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80의 나이에도 이렇게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또 하나 얻은 기쁨이라면 어렸을 적 그리 좋아하던 혼성그룹 "서울패밀리"의 김승미씨를 다시 볼 수 있었다는 것일 게다. 사실상 "서울패밀리"를 이끌던 위일청씨는 그 자리에 없지만 대신해서 김윤호씨가 옆에 함께 하고 있었다. 세월은 흘렀어도 그 시절의 감동은 여전하다. 김승미씨의 노래 또한 과연 무릎을 치게 만든다. 다시 세상에 그들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아무튼 오디션으로는 빵점인 프로그램이라 할 것이다. 도대체 어느 오디션에서 가사까지 잊고 노래도 더 부르지 못하는데 두 번이나 기회를 더 주는가? 아예 잘하라 응원까지 해주고, 노래를 부르는데는 박수치며 장단까지 맞춰준다. 합격자를 가려내고 불합격자를 떨구어야 할 오디션에서 이런 식으로 편파적이어도 되는가? 하긴 모든 참가자들에 편파적이니까.

 

도저히 오디션 프로그램은 못되는 프로그램이다. 합격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다. 단지 설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벅찬 떨림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좋다. 물론 합격해서 더 오랜 시간을 함께 그 설렘과 떨림을 쫓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으로 행복하니까. 당사자들이 그렇다는데.

 

음악이 어울린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서른이라는 나이를 제하면 역시 세월이 흐르는 것을 담담하면서도 진실되게 잘 담아낸 노래일 것이다. 그리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을 쫓는 사나이의 멋을 이야기하고 있고. 확실히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는 남자의 노래다. 빗속을 헤치고 오디션장에 도착하는 남자분들과 너무 잘 어울렸다.

 

일요일 오후 5시라면 가족시간대일 것이다. 분주한 주말을 지내고 다시 시작될 한 주를 준비하며 가족들이 모여 휴식을 취할 무렵이다. 더구나 어느새 방송으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한 노인분들이라는 것이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분들도 계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들과 딸과 사위와 며느리, 손자와 손녀, 모두가 둘러앉아 볼 수 있으면.

 

김태원이 말한 그대로 1급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프로그램이었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순수의 독한 향기가. 그분들의 어느새 하얗게 순수로 바랜 삶의 진한 내음이. 취하고 중독된다. 기대하고 기다리게 된다. 일주일을 <남자의 자격>으로 살아가게 한다. 말이란 구차할 뿐이다. 진짜다. 이것은.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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