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사랑 내곁에 - 이휘향과 온주완의 특별한 연기력...

까칠부 2011. 7. 11. 08:11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중언부언 하는 것이다. 했던 말 또 반복하고, 반복한 말을 또 다시 반복하고. 하지만 때로 그런 것들이 필요한 때가 있다. 바로 지금과 같은 때.

 

이휘향(배정자 역)의 연기는 정말 탁월하다. 어쩌면 배정자라는 인간의 내면을 저렇게도 절묘하게 자연스럽게 연기해 내는가. 이휘향이 아니라 배정자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리 독하게 강정혜(정혜선 분) 회장에게 설사약을 먹이고, 송씨를 매수하고 사람을 고용해서 그토록 간절하게 찾던 손자가 죽었다고 거짓말까지 했던 터였다. 아들 고석빈(온주완 분)을 위해서. 강정혜의 재산이 강정혜의 외손자에게 돌아가지 못하도록.
 
그러나 정작 강정혜가 외손자의 죽음에 충격받은 모습을 보니 어느새 독살맞던 표정이 애처롭게 풀리고 만다. 더구나 자신에 그렇게 잘해주던 손윗동서 선아(이혜숙 분)의 무덤 앞에서는 차마 그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지 부엌일마저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맡기려 들고.

 

물론 그렇다고 죄책감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배정자가 아닐 것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어느새 강정혜가 외손자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 것을 눈치채고, 더구나 강정혜에게 사위 고진국(최재성 분)의 재혼을 권하는 친구 정말자(사미자 분)의 말을 듣고서는 이번에는 고석빈으로 하여금 조윤정(전혜빈 분)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아 그 아이를 양자로 주자는 계획까지 꾸미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고석빈을 위해서.

 

분명 자신이 지금 하는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알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죄책감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이 그녀에게는 있다. 강인함이라기보다는 독기일 것이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뒤틀린 모성애. 거기다 불우했던 어린시절로 말미암아 풍요와 안락이라는 눈앞의 유혹을 외면하지 못하는 나약함.

 

그것을 이휘향은 배정자 자신이 되어 디테일하게 섬세하게 표현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휘향이 보이는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서 그 모든 사연들이 주루륵 흘러내리도록.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압도적이다. 단지 극중 캐릭터에 불과한 배정자에게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실제 인간인 양 생명력이 불어넣어진다.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극중 이휘향의 아들로 출연하고 있는 고석빈역의 온주완 역시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저지른 죄를 알고, 그것이 자기로 인한 것임을 알고, 어머니에 대한 원망에서 자기에 대한 자학으로, 그리고 끝내 어머니를 미워할 수 없기에 현실과 타협하기로 한다.

 

인지의 부조화다.

 

"정말이야. 그 손자 죽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30년이 지났는데도 왜 안 나타나겠어? 그러니까 네 마음속에 요 만큼이라도 찝찝한 생각 담을 필요 없어."
"맞아요, 어머니. 그 손자 죽었을 거에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그런 이상한 죄의식같은 마음 가질 필요 없으세요."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지 않으면 어머니가 죄인이 된다. 죄인이 되어 단죄받아야 한다. 그것은 그 자신이 용납할 수 없다. 타협해야 한다. 자신을 속여야 한다. 죄가 되지 않도록. 어머니를 용서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속이고 양심을 속여야 한다.

 

그 순간의 모멸감이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오히려 잘되었다 말해야 한다. 양심을 속이는 것은 자신의 존엄을 꺾는 것이다. 마치 울 것 같이 냉소적으로 바뀐 고석빈의 표정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연기 차원이 아니다. 바로 그런 몸짓 하나 표정 하나를 통해 고석빈을 이해하게 된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째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물론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작가의 대본일 것이다. 작가가 쓴 대사와 지문들. 그러나 역시 그것을 직접 연기해 보이는 것인 온주완 자신이다.

 

온주완이라는 배우에 대해 깊이 각인하게 된 계기였다. 고석빈이라고 하는 복잡한 내면의 인물을 단지 표정만으로도 훌륭하 시청자에게 이해시킨다. 악하지 않으나 악역이 되어 버린 고석빈의 불운과 고민을 단지 표정연기만으로도 훌륭히 납득시킨다.

 

참으로 찌질한데. 화가 나도록 한심한데. 그래서 욕이 튀어나오는데.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고 마는 자신이 있다. 납득하고 마는 자신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원래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던 터다.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상의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할 것이다. 물론 드라마의 주인공은 도미솔(이소연 분)과 이소룡(이재윤 분) 커플이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에서 이야기를 주도하여 끌고 가는 것이 누구냐면 바로 이들 배정자와 고석빈 모자일 터다. 가장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 비하면 도미솔이나 이소룡이나 그 주위 인물들이나 너무나 단순한 동선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도미솔은 너무 꿋꿋하다. 이소룡도 너무 순수하다. 사실상 둘 사이에서 나올 이야기란 그다지 없다.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단지 순수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살 뿐인. 그들의 삶에 풍파를 가져 오고 굴곡을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배정자와 고석빈 모자일 것이다. 이들에 의해 드라마의 방향이 결정되고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달라지고 만다. 그만한 힘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이소연이나 이재윤의 연기가 부족한가면 그것은 아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갈 뿐인 주인공이라고 내면의 변화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과장되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고석빈에 대한 감정마저 하나가 아닌 여러 색깔로 칠해버릴 수 있는 그 섬세함과 다채로움은 굳이 대사가 필요치 않을 정도다. 그러한 이소연과 김미숙(봉선아 역)이라고 하는 또다른 중심이 있기 때문에 이휘향과 온주완 역시 마음껏 자신들의 연기력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수훈갑은 역시 작가일 것이다. 대사 하나하나가 그렇게 맛깔난다.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원래 하나의 그림이었던 듯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 하필 봉선아가 맹장염으로 병원에 가려는 순간 봉우동(문천식 분)아 이주리(이의정 분)과 약속이 있을 것이 무언가. 그래서 이소룡의 도움으로 봉선아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거기에서 고진국은 봉선아를, 고석빈은 아들 영웅을 만나게 된다. 영웅이와 고석빈이 만나는 순간을 지켜보며 놀라고 당황해하는 도미솔의 떨림이 화면 바깥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또 만나는가. 봉선아와 고진국의 만남이 고진국에게 반찬을 싸주게 하고 어쩌면 그것이 배정자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는지 모른다. 개연성이 있다.

 

작위적인데, 그러나 작위도 이 정도 쯤 되면 장치고 역량이다. 치밀하게 짜여진 관계가 굳이 밖에서 이유를 찾지 않아도 안에서도 얼마든지 이유를 생산해낼 수 있다. 최소한 드라마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드라마 안에 그 이유와 원인이 있다. 상당히 설득력 있게 개연성을 가지고 그러나 밀도있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다만 준비작업은 필요하다. 그것을 지금까지 해 왔다 보면 된다.

 

아무튼 악해서 미운 것이 아니라 동정하게 되는 드라마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까지 인물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설득력 있게 디테일하게 묘사한 드라마가 최근 그다지 흔치 않다. 등장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확실히 좋은 배우다. 좋은 배우들이다. 어째서 배우인가. 어째서 배우에게는 연기력이 요구되는가. 그 답을 보여준다. 가장 정석적인 방법으로. 배우란 무척 아름다운 직업일 것이다. 훌륭하다.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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