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세월이 그들에게 선물한 순수와 지혜...

까칠부 2011. 8. 1. 09:23

어쩐지 고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제불가라니. 지휘자 김태원이 어르신들을 만만하게 보다가 통제불능의 곤란한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고 한다. 도대체가 어르신들이 일방적으로 지휘자 김태원에게 지시받고 통제되어지는 대상이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김태원이 그런 역할이었다는 뜻일까?

 

물론 어린 아이라면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아직 모자르고 미숙한 경우라면 그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 만큼 사시고 알 만큼 아시는 분들이다. 지혜란 스스로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자유다. 자율이다.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는 원리이며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분명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합창곡을 정하고, 각각 파트장을 임명하여 연습을 시작하려 할 때, 여기저기서 목소리들이 튀어나오며 지휘자 김태원이나 그를 돕는 트레이너들이나 수습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김태원이며 박완규, 임혜영 등이며 무척 곤란해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소란을 수습한 것이 같은 청춘합창단의 멤버인 배용자(75세)씨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합주도 많이 했고 교향악단도 많이 했는데, 어떤 경우에든지 지휘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지휘자 말씀을 들어야 오케스트라가 화음을 내고 멋지게 되지 니 잘났다 내 잘났다 하면 아무것도 안 돼요!"

 

배용자씨만이 아니었다. 그 전에 이미 테너 파트장을 맡은 꿀포츠 김성록(54세)씨 역시 김태원의 지시에 따라 테너 파트를 이끌고 방으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이미 하프연주자로써 수많은 공연을 경험한 배용자씨의 일갈에 겨우 소란이 수습되고 김태원이 합창단원들에 한 말은 한 마디였다.

 

"결국은 가장 확실한 것은 우리 셋(김태원, 박완규, 임혜영)이서 여러분들을 존경한다는 것."

 

김태원을 비롯해 그를 보조하는 박완규와 임혜영이 해 줄 수 있는 것도 그 한 가지 뿐이었다. 존중해주는 것. 인정해주는 것. 그것으로 어차피 이미 경험도 있고 연륜도 있는 단원들은 알아서 할 터였다. 굳이 김태원이며 박완규, 임혜영의 입과 손을 빌지 않고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이미 그분들에게는 있다. 악보를 전혀 볼 줄 모르는 양송자(75세)씨를 역시 합창단원인 김영선(59세)씨가 직접 옆에서 도와주어 따라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처럼.

 

단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그 시작만을 조금 도와줄 뿐이다. 그토록 음을 잡지 못해 고생하던 베이스였지만 이내 귀가 트이고 음을 들을 수 있게 되자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게끔 되었다. 그것이 박완규의 역할이었다. 테너파트로 간 전현무며 이충희 역시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합창단원이며 테너파트장을 맡은 김성록으로부터 배우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리더십일 것이다. 지휘자 김태원에게 지휘를 가르치는 멘토를 맡은 인천시립합창단의 지휘자 윤학원씨가 가르치고 있는 것도 그것일 것이다. 정확한 지시와 무엇보다 지휘자인 자신과 합창단원들에 대한 신뢰.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따라오도록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자기가 가진 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일 게다. 불안해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단지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 수 있도록 가장 앞에서 반 걸음 앞서가며 길을 가리키는 것이다.

 

겸손의 리더십. 리더십이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이미 경험도 있고 실력도 있다면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뒷받침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베이스가 땅속 깊숙이 박힌 뿌리라면 리더란 그 땅 자체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김태원이나 임혜영, 박완규나 지휘자들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가만히 놔두어도 그분들의 경험과 지혜가 알아서 자기 길과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실제 잠시의 소란은 배용자씨의 일장연설에 이은 합창단원들의 자발적인 호응으로 이내 수습되고 각각의 파트로 나뉘어 오히려 정연하고 열성적인 연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테너나 베이스나 파트장들이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김성록씨와 김만식(54세)이지만 그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다른 단원들도 철저히 그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성실하게 따른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이를 따지고 서열을 나누었지만 합창을 연습하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합창에 대한 지식과 경험, 실력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때문이다. 어설픈 자존심을 내세우기에는 그분들은 인생을 너무 잘 아신다.

 

하기는 그러니까 만난지 채 몇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었을 게다. 그새 언니라 부르게 되고, 동생이라 부르게 되고, 형님이라 부르고, 동생으로 여기고, 마치 오래 만나온 사이처럼. 베테랑 축구선수들은 경기 바로 직전에 소집되었어도 잠깐 발을 맞춰보는 것만으로도 어디로 패스해야 하고 어디에서 패스받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고 하던가? 앞이 잘 안 보이시는 심양순(68세)씨를 누군가 자연히 손을 잡아 이끌고, 고령으로 몸이 자유롭지 않은 노강진(84세)씨를 옆에서 부축하며, 합창을 따라오지 못하는 양송자씨에 대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도움의 손을 내민다. 과연 어느새 양송자씨가 소프라노와 알토가 함께 연습하는데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소리를 더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 어느새 자기 자리와 역할을 알고 스스로 나서서 행할 수 있었던 그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젊은이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더 열심일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합창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그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그분들은 이미 경험으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안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에 자기의 목소리를 섞을 줄도 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의 위치가 어디인지 어디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안다. 경험이다. 연륜이다.

 

과연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가.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요구되는 행동과 자세란 어떤 것이겠는가. 굳이 유니폼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직접 받으러 온 노강진씨처럼. 할머니라는 말을 붙이기조차 죄송스럽다. 어머님이기 이전에 그분은 한 인간일 터다. 주어진 기회의 고마움을 알고, 그 기회에 자기가 해야 할 것을 알며, 그것을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 누가 통제해야 할까? 누가 가르쳐야 할까? 오히려 그분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솔직히 젊다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장면이었다. 한참 어린 트레이너에게. 지휘자에게. 파트장이라고 모두 나이도 어리다. 힘들기도 하고. 몸이 안 따라주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습을 하는데 진도를 나가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그만큼 적극적이었다는 뜻일 게다. 과연 젊은 사람들을 모아놓았을 때 물론 더 빨리 배우고 더 쉽게 익숙해지겠지만 저렇게 적극적일 수 있겠는가. 아니 그런 분들이었기에 여전히 꿈을 놓지 않고 꿈을 쫓아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이리라.

 

통제가 안 된 것이 아니었다. 잠시의 소란이야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과연 그 소란을 어떻게 바로잡는가? 폭력인가? 아니면 설득인가? 그도 아니면 속임수인가? 혹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 소란을 바로잡고 질서를 유지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청춘합창단원들만 같으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럴 수 없었기에 인류는 여기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무튼 김태원과 <남자의 자격>의 인연은 그야말로 운명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남자의 자격>을 통해 김태원은 음악인으로써의 자신과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고, 심지어 올초에는 초기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목숨자저 구하고 있었다. 반면 <남자의 자격>은 김태원이라는 뛰어난 음악인을 통해 '아마추어 밴드'라는 초유의 미션과 '배낭여행' 미션을 정리하고 기념하는 '배낭여행'이라는 훌륭한 노래를 얻을 수 있었다. 호주의 하늘 아래에서 좁은 텐트에 의지해 기타 하나로 써내려가는 '배낭여행'의 작곡과정은 얼마나 낭만적이며 아름다웠던가. 김태원이니까 가능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합창곡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까지.

 

너무 본격적이 되어 버렸다. 그저 기존의 합창곡을 연습하여 부르는 아마추어 합창미션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우리 말로 쓰여진 우리 정서가 담긴 합창곡을 불렀으면 좋겠다는 음악인으로써의 욕심이. 그리고 합창단원이 된 아버지, 어머니 연배의 분들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하듯 들려주고 싶다고 하는 진심이. 울컥 듣고 있는데 눈물이 나려 한 것은 그만큼 그 가사와 멜로디에 김태원의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야말로 청춘합창단을 위한, 청춘합창단에 어울리는, 청춘합창단의 노래였다. 이건 그냥 예능프로그램에서 하는 아마추어 합창 미션이 아니다.

 

단지 합창단원을 모으고 연습하여 무대에 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합창곡을 쓰고, 그것을 다시 합창에 어울리도록 편곡하는 과정까지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었다. 현재 세계의 합창 트랜드는 아카펠라다. 세계의 합창곡을 들으며 김태원의 곡을 어떻게 아카펠라에 어울리도록 재구성할 것인가.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고 조율해가는 과정이 또한 너무 아름다웠다. 음악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이렇게 청춘합창단이 부를 노래가 만들어진 것이로구나. 그리고 이어진 청춘합창단의 연습장면.

 

정말이지 유니크한 예능이라 할 것이다. 어디에 이런 예능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지휘에는 초보지만 음악에는 베테랑이다. 비록 합창은 처음이지만 작사와 작곡이 모두 되고 음악에 대한 이해도 높다. 함께 합창을 배워가는 과정이지만 합창곡마저 그의 손에서 나오고 있다. 합창곡을 쓰고 직접 편곡을 함께 하는 모습과 지휘를 직접 배우는 모습 사이에 어떤 연관성과 모순이 있을까? 단지 예능을 보고 있음에도 합창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느낌이랄까? 지나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하여튼 역시 어르신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누구나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머리가 희어졌어도 여전히 꿈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순수가 자신에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서의 순수는 무지일 테지만 나이 먹어서의 순수란 지혜다. 부모님처럼 여겨진다는 김태원의 말에 오히려 김태원이 남자로 보인다던 유혜정(62세)씨의 넉살처럼.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직 너무 많다. 너무 젊다. 꿈은 사람을 젊게 만들고, 순수가 꿈을 꾸게 하며, 지혜가 사람을 다시 순수하게 만든다. 욕심이 생긴다. 부디 나도 저랬으면.

 

전현무의 캐릭터가 상당히 좋았다. 물색없이 아무때나 툭툭 내뱉는 말이지만, 하지만 사실 문외한이라면 잘 모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넉살좋게 잘 물어주고 있었다. PD의 센스가 좋았다. 전현무가 '초견'을 몰라 망신을 당할 때 얼굴색이 달라진 다른 어르신들을 이야기하며 역시 넉살좋게 넘어가고 있었다. 전현무의 역할이 이럴 듯하다. 주책맞고 눈치없이 그러나 어르신들이 혹시라도 말하지 못할 것들에 대해서. 상당히 적절한 안배였다.

 

오디션이 감동을 주었다면 합창단 오리엔테이션은 그보다는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격의없는 단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순수하며 감사할 줄 알고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노력할 줄 아는 그 모습들을 통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통렬한 꾸짖음일 터다.

 

항상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순수다. 거짓도 꾸며짐도 없는 오롯한 올곧음. 순백의 투명함. 사람이 나이를 먹어 머리가 희어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수. 그 순수를 보게 된다. 그 순수에 취하게 된다. 마음껏 웃으며 보았다.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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