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사연이 아닌 실력을 위주로 멤버를 구성한 이유...

까칠부 2011. 8. 6. 10:00

아마 이번 KBS의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의 "청춘합창단"에 대해 그 멤버선발을 두고 아직까지도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사람들을 온통 감동의 눈물바다에 빠뜨렸던 많은 참가자들이 배제된 채 그다지 감동도 없던 참가자들이 실력위주로 뽑혀 있으니. 차라리 그보다는 아픔도 있고 사연도 있는 소외된 이들을 합창단 멤버로 뽑았으면 더 감동적이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답은 바로 다름 아닌 그러한 비판 그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는 쪽이 더 감동적이다. 처음 <남자의 자격>에서 1960년 이후 출생자들을 대상으로만 합창단 오디션을 본다고 했을 때 가해졌던 어떤 우려들이었다. 지나치게 감동컨셉으로 가려는 것 아닌가. 이미 노인을 대상으로 청춘합창단을 꾸리겠다 했을 때부터 감동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무슨 뜻이겠는가?

 

사실 현대사회에서 노인들이 겪게 되는 가장 일반적인 네 가지 고통으로 일컫는 것이 이른바 가난과 질병, 고독, 그리고 무위의 4고(苦)일 것이다. 가난이야 나이를 먹으면 하던 일도 그만두어야 하는데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란 그만큼 어려워지게 되니까. 질병이란 오래 써 온 만큼 몸 곳곳에서 고장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독은 사회활동은 위축되는데 그나마 알고 지내던 사람들마저 하나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영영 떠나게 되니 갈수록 외로워지는 것이고. 하지만 그 모든 문제의 근본을 이야기하자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무력감, 무위일 것이다.

 

하던 일도 나이를 먹었다고 거의 강제로 그만두어야 했다. 다시 일을 하자니 몸도 마음도 예전같지 않고 바쁘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 혼자서만 덩그라니 뒤쳐져 남아 있는 것 같다. 이것저것 분주하고 열심히 잘하는 젊은 세대 비해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란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한가. 자기 일을 가지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던 모습에서 용돈을 받아 하루하루 지내는 처지가 되고, 무엇을 하려 해도 자식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고. 한참 젊은 나이에서도 그러고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어느샌가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노숙자가 다시 재활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무력감. 정확히는 자존감의 상실.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전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 같다. 흔히 말하는,

 

"늙으면 죽어야지!"

 

그것은 노인들 자신만이 아닌 주위의 시각이기도 하다. 다 늙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시대에 뒤쳐진 구닥다리 취급이나 하고. 아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퇴물로 여기며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래서 실제 "청춘합창단"에서도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려주던 참가자들에 대해 그리도 감탄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겠는가.

 

"나이도 많은 분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몰랐다."

 

아마 많은 노인분들이 멀리 지방에서까지 고속버스며 기차를 몇 시간이나 타고서도 굳이 서울까지 올라와 청춘합창단 오디션을 보고자 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무언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다. 주위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 아니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저 뒷방에서 시들어가는 존재가 아님을. 동정받으며 보살핌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존재로써.

 

옛이야기에도 있다. 인근에 효자라고 소문난 이가 있었는데 몰래 숨어서 살펴보니 어머니에게 발을 씻기고 있더라. 나이가 들어 기력이 예전만 못해도 아들을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은 것이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다. 기껏해야 말을 씻겨주고 간단한 집안일이나 하면서도 무기력한 존재가 아님을. 무가치한 존재가 아님을. 그래서 요양시설에 가 보면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도 이것저것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 스스로 하게끔 배려한다.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이 게으르거나 무례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무어라도 스스로 하게끔 하는 것이 오히려 노인분들을 위한 것이 된다.

 

다시 합창단으로 돌아가서 과연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대로 어떤 사연도 있고 아픔도 있는 이들로만 합창단을 꾸리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실력과는 상관없이 단지 눈물짜는 이야기로만 사람들을 뽑아 합창단 멤버를 구성하게 되었다면? 그랬다면 바로 말이 나왔을 것이다.

 

"억지감동을 짜내느라고 그렇게 멤버를 구성했다."

 

합창단원들의 노력과 열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단지 동정의 대상으로서의 그분들에 대한 서사만이 남게 될 것이다. 처음 청춘합창단에 대해 걱정했던 감동컨셉으로 이어지고 마는 것이다. 노인이란 단지 그렇게 지난 이야기로 사람들 눈물이나 짜는 존재다.

 

하지만 어떤가? 80세가 넘어서도 여전히 음정과 박자에 신경쓰며 성실하게 정확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인다. 70세가 넘어서도 여전히 목소리가 소녀같고 고음아 맑고 우렁차다. 60대는 아예 노인도 아니다. 50대는 법적으로도 노인이 아니고 합창단 가운데서는 막내 청년들 뻘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젊은이들 못지 않은 탁월한 노래실력은? 그렇게 노인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 젊은이들까치 참가하는 합창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게 되면 어떻게 될까?

 

말하자면 대표선수일 것이다. 50대 이상의 시니어 세대에서의 대표선수. 신분이며 계급은 상관없다. 전공자의 여부도 상관없다. 누구나 자기가 잘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 자의반타의반으로 놓아야 했던 것들. 하지만 그런 50대 이상 가운데서 이토록 실력에서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50대 이상 모두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었다 해서 더 이상 쓸모없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 않을 뿐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동정은 오히려 노인들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쟁을 통해 실력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존경을 받아야지 동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인간으로써. 보살핌받는 노인이 아닌 여전히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써. 하기는 과거 노인문제가 지금과 같지 않았던 것도 노인을 존경할 수 있었던 때문이었다. 사회가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기 이전 노인의 지혜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요긴했을 터이므로. 존경이란 노인 자신에게도 자존감을 회복하는 동시에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에도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탄했다. 솔직히 필자 입장에서도 반드시 합격했으면 하는 분들이 있었다. 아픈 사연을 가지고, 그래서 합창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하지만 정작 전체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을 위해서는 오히려 그들 자신의 실력과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들이 아직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오히려 더 냉정하게 실력을 평가하느 것이 옳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그보다는 윤학원씨나 김태원 등의 음악인으로써의 고집과 자존심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섣부르게 동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들의 인간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사연을 동정하기보다는 그들의 실력만을 냉정하게 평가한다. 그것이 오히려 그분들을 위하는 일일 터이기에. 당당히 실력으로 인정받고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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