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부터도 제작진과 소통이 되네 피드백이 이루어지네 감탄하곤 하던 인터넷 여론을 보면서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곤 했었다. 이를테면 가방을 샀는데 만들다 만 것을 팔아놓고는 소비자가 쓰다가 찾아와서 이렇게 고쳐달라 했을 때 고쳐주고 한다면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의 모습을 그 메이커의 제품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두고 잘 만든 제품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비열한 것이다. 적당히 가족을 꿰매어 가방 형태만 만들어 놓고 일단 매장에 내놓는다. 팜플렛을 통해서는 이렇게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러나 일단 소비자는 그 가방을 메고 돌아다녀봐야 한다. 그래서 불편한 것이 있으면 찾아가 이야기하고, 심지어 다른 회사의 제품과 비교해 디자인을 그렇게 바꾸어달라 해도 그것을 그대로 따라준다. 많이만 팔린다면. 물론 많이 파는 것이 메이커의 목적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을 그 회사의 제품이라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렇게 피드백을 위해 선행해서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테스터라 부른다. 고객이 아니라 제품개발을 위한 정보를 주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없으니까. 자신들이 만들 가방에 대한 자신이 없는 것이다. 디자인도. 기능도. 충실히 시장을 조사하고, 어떤 제품이 팔릴 것인가를 파악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과 장점, 개성, 그리고 추구하는 컨셉을 전략적으로 고려하고, 그래서 완제품을 내놓아 소비자로 하여금 선택하게 한다. 그런데 그럴 자신이 없으니까 대충 만들어 놓고는 소비자의 눈치를 본다. 소비자의 말 한 마디에 귀를 솔깃하며 그에 맞춰 급하게 모양을 바꾸고, 기능을 달리하고, 컨셉을 뒤집고. 그것을 소비자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잘 만들어준다 좋아하고.
그래서 사실 드라마를 보고 나면 판단이 안 서는 경우가 많다. 한동안 한국드라마를 잘 보지 않은 이유였다. 시청율이 낮다고 중간에 뒤집는다. 아예 조기종영을 하기도 하고, 결말을 바꾸고, 심지어 주인공까지 바꾸고. 결국 스케줄이 맞지 않자 주연마저 교체하고 만다. 그러다가 시청율이 조금 좋게 나온다 싶으면 또 그것을 이유로 멋대로 연장하고, 그에 따라 또 결말을 바꾸고, 이야기를 바꾸고, 캐릭터와 배역을 바꾼다. 그것을 무어라 판단해야 할까?
작품이란 작가의 의지가 반영되기에 작품이다. 단순히 대본을 쓰는 작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획자와 제작자, 감독, 스태프 모두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작진일 것이다. 어떤 작품을 하려 하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려 한다. 그것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어떤 반응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났을 때 판단도 서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였다. 이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다. 그런데 방향을 잃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표류하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이 지나온 길이 어떻다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그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충실히 다 표현해 보여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촬영 직전에야 대본이 나오고, 그조차도 엄밀한 일관된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뀐 내용인 경우가 태반이다. <미스 리플리>의 경우처럼 아예 주연급 배우 하나가 화면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캐릭터의 성격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기도 한다. 배우란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 배역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드라마 안에서 배역 하나 바뀌면 그것이 단지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전에 캐릭터를 분석하고 상황을 이해하고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준비를 갖출 여지조차 없이 시간에 쫓기며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드라마를 내보내야 한다. 아예 편집하던 도중 드라마를 내보내느라 <싸인>의 경우처럼 아예 음향이 들리지 않고 화면조정까지 나오는 상황에까지 이른 경우마저 있다. 처음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연출가가 무엇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는지, 배우가 표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는지 과연 판단이 가능할까?
물론 이해한다. 드라마 제작이라는 것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드라마 방영시간대는 가장 높은 광고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노른자위 시간대다. 실패는 방송사 입장에서 크나큰 손해로 돌아온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막는가. 보다 전문성을 높여 기획단계에서부터 보다 철두철미하게 기획하고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일단 대충 맞으면 내보내 보고 시청자의 반응을 볼 것인가. 그러나 전자의 경우 상당한 전문성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책임이 무거워진다.
사실상 사전제작이란 책임제작이라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기획자는 기획에 대한 책임을, 제작자는 제작 전반에 대한 책임을, 작가는 대본에 대한 책임을, 그리고 이미 나온 대본과 기획에 대해서는 감독과 배우가 책임진다. 시청자는 다만 그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뿐이다. 그래서 시청자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제작진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만큼 더 엄밀하고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제작까지 하나하나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는 것은 너무 번거롭고 피곤하지 않은가.
그래서 보다 쉽고 편한 길을 찾아 그것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과거 국내 온라인 게임 가운데서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기획의 부담을 줄이고 실패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게임 제작 단계에서 일찌감치 베타테스트를 시작한다. 오픈베타테스트를 무료게임처럼 즐기는 유저들을 통해 데이터를 얻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물론 온라인게임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상당한 수준으로 축적된 지금은 과거와 같은 장기간의 오픈베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 드라마 수준이 2000년대 초반 아무나 약간의 돈과 아이디어만 가지고 온라인게임시장이 뛰어들던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할 수 있다. 심지어 부족한 돈과 시간을 개발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해결하려는 것마저 닮아 있다. 휴일이며 명절도 없이 밤샘을 일상처럼 해야 했던 그때처럼.
이번에 한예슬의 돌연한 잠적으로 불거진 <스파이명월> 사태에 대해 한예슬의 입장을 상당 부분 이해하며 동정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사실 <스파이명월> 자체가 무리한 드라마였다. 원래 예정된 드라마가 지연되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거의 땜빵식으로 들어간 드라마였으니. 당장 주요인물들의 캐릭터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고, 사건 역시 개연성 있게 준비되지 못했다. 오히려 컬트에 가까운 그같은 산만함이 매력으로 여겨지던 드라마였다. 보는 입장에서야 그런 것이 신선하게 다가오겠지만 정작 출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항상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배우의 당연한 욕심일 것이다. 가장 멋진 훌륭한 모습만을 대중들에 보여주고 싶다. 필자 역시 글을 쓰는 입장에서 시간에 쫓겨 제대로 검토도 못하고 기사를 송고하고 나면 후회와 미련만 한가득인데. 그것을 수많은 대중이 읽게 될 것이다. 제대로 관리도 못한 채 벌거벗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느낌이랄까? 자기가 못해서 그런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현실적 여건이 받쳐주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 어떤 심정이겠는가.
최선을 다해 최고의 연기를 보이고 싶지만 여건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았다. 부족한 사전준비와 그에 따른 무리한 스케줄, 그리고 그로 인해 그러고 싶어도 자기가 출연하는 작품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기조차 어렵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TV를 통해서, 더구나 낮은 시청율로 인해 그다지 좋은 소리를 못 듣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배우 자신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겠는가. 그렇다고 이런저런 의견을 개진하고 아이디어를 내보아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남은 것은 두 가지 선택 뿐일 것이다. 체념하고 순응하던가. 아니면 판을 엎던가. 다만 이 경우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순응하기보다는 판을 엎는 쪽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일이 이렇게 커진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과연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드라마를 한예슬 혼자서 찍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정혁이 있고, 이진욱이 있고, 원로배우인 유지인과 조형기, 이덕화마저 함께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한 참 낮은 처우에 더 많은 시간을 촬영에 매달리며 고생하는 다른 스태프는 어찌할 것인가. 한예슬 한 사람으로 인해 더 이상 촬영을 진행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자칫 <스파이명월>에서 명월 없이 앞으로의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버렸다. 그 피해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누가 과연 그것을 책임지겠는가. 드라마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근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결국 닿는 것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드라마제작현장의 전근대적인 후진성에 있다 할 것이다. 체계적인 사전준비나 기획 없이 거의 주먹구구로 드라마를 제작하던 관행이 지금과 같은 파행을 불러 온 것이었다. 다른 배우들처럼 조금 더 인내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남들도 다 참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모순이 모순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잘못은 잘못이고 잘못은 시정되어야 한다.
오죽하면 연예인 관련 이슈가 터져나올 때마다 연예인을 희생양삼던 네티즌 여론조차 일부 한예슬을 동정하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겠는가 말이다. 고작 이틀이었다. 그러나 14일 무단으로 촬영에 불참하고 바로 15일 그동안의 방영분을 편집한 스페셜편이 긴급 편성되고 있었다. 이틀 촬영에 빠진 것으로도 더 이상 드라마를 방송에 내보내지 못할 정도로 <스파이명월>역시 시간에 쫓기며 졸속으로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냥 한예슬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다만 한예슬이기에 문제가 이토록 크게 불거지게 되었을 뿐.
문제라면 그럼에도 여전히 한예슬 한 사람에게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운 채 현장의 모순은 그대로 덮고 가려는 듯한 분위기일 것이다. 한예슬 한 사람만을 집중적으로 때리며 드라마 촬영은 이제까지 하던 대로 계속 한예슬만 빠진 채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에도 그래왔으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시정을 요구했지만 정작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예슬 한 사람이 어쩌기에는 너무나 오래된 관행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그런 관행에 익숙해진 채 전혀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쨌거나 핵심은 한예슬로 하여금 그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끔 만든 한국 드라마제작의 현실일 것이다. 일주일에 70분이 넘는 분량의 드라마 두 편.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45분짜리 한 편씩 방영한다. 140분이면 어지간한 장편영화 분량이다. 주 5회 방영되는 일일드라마나 시트콤 역시 이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그나마 일일드라마나 시트콤은 세트촬영이 주라지만. 배우 개개인의 희생을 강요해가며 만드는 드라마라. 하기는 최고의 시청율을 기록했던 <최고의 사랑>에 출연했던 공효진 역시 촬영이 너무 바빠 인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 하고 있으니. 그러한 현실부터 바로잡고 난 다음에 한예슬에 대해 독단적인 행동을 한 책임을 물어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까운 것이다. 개명한 21세기에 1970년대 스타일의 노동력을 착취해가며 유지되는 제작현장이 있다는 것이. 더구나 그 제작현장은 미완의 상품을 소비자에 떠맡기고 그 요구에 따라 맞춰가는 그런 현장이었다. 급하게 소비자에게서 요구가 있을 때마다 노동력에 의지해 그것을 해결해가며 유지되는 현장. 상상이 가는가. 수없이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여전한 현실이다.
부디 이번만은 어떤 계기가 되어주었으면.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현대화된 드라마 제작현장을 바란다. 그런 책임있는 드라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당당하게 작가와 제작진과 마주하며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작품을 보고 싶은 것이다. 시청자의 눈치를 보며 땜질하듯 누덕누덕 기워 만드는 어설픈 상품이 아니라. 아쉽다. 부질없는 바람이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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