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파이명왈 - PD, 작가, 드라마를 통해 한예슬을 공개디스하다!

까칠부 2011. 8. 17. 10:02

워낙 화제가 되어 뒤늦게 찾아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얼핏 한국의 드라마제작관행을 비판하려는 듯 보였다. 이미 죽은 한명월(한예슬 분)을 단지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되살려내려 하다니. 전혀 그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시청자마저 그것을 바란다. 작가는 그에 맞춰 대본을 다시 써야 하고. 작가의 자괴감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야, 한명월. 너는 어떻게 신인이 나보다 늦게 와? 선배보다 먼저 와 있어야 하는 것 아냐?"
"그리고 그게 인사야? 어디서 건방지게 고개짓이야? 90도로 제대로 인사 못해?"
"한명월씨, 당장 사과 못해? 뭘 잘 했다고 큰 소리야! 아무리 스케줄이 힘들어도 그렇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남들에게 피해주지 말아야 할 것 아냐? 혼자만 밤새고 혼자만 연예인이야? 프로가 괜히 프로냐고?"
"그게 죄송한 사람의 자세야? 하늘같은 선배 앞에서? 당장 인아 앞에 무릎꿇고 사과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지금으로서는 판단이 불가능하다. PD와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그러나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내용 아닌가. 한예슬이 무단으로 촬영을 거부하고 나온 이야기들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내용들이다. 과연 저 장면들을 한예슬은 직접 연기해야 했던 것일까?

 

물론 저 대사의 내용이 언론에 나온 것처럼 사실이라면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함께 고생하는 처지에 다른 배우나 스태프는 나몰라라 자기 입장만 챙기려 한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피해를 주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로도 이해되어질 수 없는 일일 터이니. 그러나 저런 식으로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 망신을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폭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신체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물리력의 투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것도 폭력이다. 특히 인격에 대한 폭력은 자칫 살인을 불러올 수도 있다. 자존감이란 인간이 인간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와 같은 내용들을 공공연히 지적받고 비난받는다. 그것을 스스로 연기해야 하고 그것이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 보여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촬영장의 분위기는 어떠했을까?

 

그야말로 대본을 쓰는 작가와 연출을 하는 감독이라는 입장을 이용한 비열한 폭력인 것이다. 망신주기이고 모욕이다. 심지어 인격말살이다. 과연 한예슬이라는 배우가 아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정히 문제가 있어 더 이상 촬영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따로 해결하면 될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방식으로 지위를 이용한 폭력으로써 모욕주고 상처입히는 것으로 해결하려 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상대를 모욕주고 비하하여 굴복을 받아내면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가.

 

하기는 항상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은 가끔 잘못한 것 이상으로 혼을 내고는 한다.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 이상의 폭력을 휘두르면서 그것을 아이의 인성을 바로잡기 위한 사랑의 매라고 부른다.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무수한 악플러들은 사실 매우 정의롭다. 다만 한 인간을 바로잡고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조금 심한 응징을 하고 있을 뿐이다. 모욕주고 상처입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앞으로 복종하도록. 폭력이 긍정되는 사회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촬영도 접고 중간에 미국으로 가버린 것은 너무 심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드라마를 보면서 오히려 납득하고 말았다. 필자 같았어도 이런 장면을 계속 찍으라 했다면 더 이상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보는 가운데.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보는 가운데 작가가 쓰고 감독이 연출하는 그같은 장면을, 대사를 연기해야 한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래서 전해오는 말이 있다. 차라리 죽일지언정 모욕은 가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죽음보다 더 비열한 것이 모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 인간의 인격을 파괴할 수 있는 가장 극단의 폭력일 것이니. 자존감이 사라지고 명예를 잃어버린 사람이 과연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말했듯 사람은 때로 그 자존감을 위해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과연 함께 드라마를 촬영해야 할 배우인데 그런 식으로 망가뜨려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단지 그 상황을 고통스러워하는 한예슬을 보며 분풀이를 하고자 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모습이 TV를 통해 대중들에 보여지는 것을 보면서 복수의 쾌감을 즐기려 했던 것이었을까.

 

과연 어째서 한예슬이 PD교체를 주장하고, 심지어 중간에 촬영마저 관두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며 미국으로 떠나버렸는가. 문정혁에 대한 실망도 크다. 최소한 침묵할지언정 굳이 그런 식으로 한예슬을 비난할 필요가 있었는가. 가장 문제가 되었던 뒷부분의 대사는 문정혁이 자기 입으로 윽박지르듯 내뱉은 것이었다. 최소한의 동료로써의 의리가 있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PD의 자격미달이다. 작가의 프로의식부재다. 드라마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한예슬이 들었던 비난을 그대로 돌려주겠다. 공중파라는 것이 자기들 분풀이에 이용할만한 그런 만만한 것이었는가. 막대한 돈을 들여 제작하는 드라마이고 더구나 시청율마저 그다지 높지 못하다. 그런데 드라마 찍다 말고 이런 한심한 짓이나 하고 있으니. 드라마가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알겠다.

 

PD가 하는게 단순히 큐사인 주고 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배우들의 컨디션까지 체크해가며 그들이 최선의 컨디션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리다. 현장 바깥에서는 어떻든 현장 안에서는 그들이 순순히 촬영에 임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PD인 것이다. 다른 식으로 징계를 하더라도 아무리 현장에서 그런 식으로 모욕을 주는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믿고 싶어졌다. 이것은 한예슬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한예슬과는 무관한 드라마 제작관행에 대한 나름의 풍자이고 비판이다. 그것이 하필 한예슬에게까지 영향이 가게 되었을 뿐. 아니라면 내 상식을 의심해야 한다. 자기가 만드는 드라마를 가지고도 이렇게까지 할 정도라면 평소에는 어떠했다는 말인가. 동정하게 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인간의 기본에 대한 것이다.

 

그야말로 2011년 최악의 막장드라마일 것이다. 촬영시간에 지각하고 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것을 대본까지 수정해가며 배우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그로 인해 배우는 미국으로 도망쳐 버리고, 그것을 제작진은 단합해서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차라리 이것으로 드라마를 편성했으면 <스파이명월> 이상은 나왔었겠다. 아주 등줄기가 저릿할 정도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아무튼 한 가지는 성공했다 힐 수 있다. 워낙 드라마 내용이 엉망이라 아예 돌아보지도 않던 드라마를 이제라도 찾아보게 되었다. 다만 역시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드라마였다. 그새 한명월은 연예인이 되어 있던가. 참 뭐가 뭔지 무엇을 추구하자는 드라마인지 헷갈릴 뿐이다.

 

최악의 자충수라 할 것이다. 한예슬을 향하던 비난여론을 자기에게로 돌렸으니. 배우를 위한 희생정신이라면 정말 대단하다 할 것이다. 어이가 없을 뿐이다. 한심하다. 말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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