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한예슬" 회당 수천만원의 인기여배우의 어떤 무모한 충동에 대해서...

까칠부 2011. 8. 19. 18:37

사람은 누구나 이성이라고 하는 보호막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이 과연 내게 도움이 되겠는가. 내게 이익이 되겠는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 것인가. 보다 현명한 판단은 무엇인가. 재고 따지고 계산하여 자신을 지키는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간다. 어른이라 불린다.

 

필자가 처음 한예슬이 드라마 촬영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이 상당히 심각할 수 있겠구나 생각한 이유였다. 그것은 데뷔 10년차의 연기자의 행동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유아스러운 충동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이성의 보호막이 사라지고 대신 충동이 겉으로 드러날 상황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아예 처음부터 이성의 보호막이 부실했거나, 아니면 굳건하게 이성의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감당할 수 없이 충동이 커졌거나. 전자라면 아이가 있을 터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이는 곧잘 본능의 충동에 이끌려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라면 후자의 경우는 도저히 이성을 허락하지 않는 절박한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독스런 가난으로 한계에 몰린 사람이 가족과 더불어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아내이고 자식이고 부모일 텐데 그런 것은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이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면 원래 한예슬의 성격이 그랬었겠구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여러 편의 드라마를 해 왔고, 사소한 문제는 있었을지 몰라도 이런 큰 사고까지 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소한 한예슬의 이성이 촬영현장에서의 일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그렇게 무모하게 반응할 정도로 어이없이 허술하지는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예슬을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갔던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바로 한예슬이 인터뷰에서 밝힌 '엄청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그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새벽 5시까지 촬영하고 다시 7시부터 촬영을 시작해야 했다는 살인적인 촬영스케줄. 더구나 <스파이명월>에서 한예슬의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상 원톱이었다. 남주인공인 강우(에릭 분)조차 한명월에 비하면 거의 화면에 보이지 않는다 할 정도였다. 그것도 몸으로 때워야 하는 연기가 상당한 분량이었다. 사람이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게 된다.

 

당연한 것이다. 하루만 밤샘하고 나도 옆에서 하는 말들이 그냥 좋게만 들리지 않는다. 며칠 제대로 잠도 못자고 혹사당하고 나면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만다. 사실 생산성 높이겠다고 야근에 철야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그로 인한 심신의 피로는 도리어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원흉이 되고 만다. 스태프나 다른 배우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거의 혼자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그녀가 느껴야 했던 부담과 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드라마를 보다 말고 필자가 한예슬의 소모를 걱정해야 했겠는가.

 

그래서 나오는 말이 '오죽하면'이다. 오죽했으면. 그래도 데뷔 10년차이고 그동안 드라마도 적잖이 찍었던 터라 드라마 제작환경이 어떤지도 아는 사람이. 다른 한예슬이 보다 현명하게 지혜롭게 대처했어야 했다는 주장에 대해 그다지 탐탁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럴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한예슬 역시 미국으로 떠나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가는 악수였을 텐데.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성이 아닌 충동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도대체 촬영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예슬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저리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가. 저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충동에 자신을 맡기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가. 뻔히 자기에게 불리할 것을 알면서도.

 

결국 그 이유들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었다. 그나마 의미가 있다면 주연배우의 이탈이라는 최악의 상황 덕분에 다른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분위기가 상당히 훈훈해졌다는 소식일 것이다. 그동안 관행이라고 방치해 왔던 부분에 대해서 자칫 최악의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경계심이 보다 출연배우들을 배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태프나 단역들에 대해서도 그런 배려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나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꾸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미 공효진 등 다른 배우들도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었다. 일단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면 배우는 자기의 모든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한예슬이 CF를 찍었다 비난을 듣는 이유도 그것이다. 촬영 스케줄도 바쁜데 시간을 내어 CF를 찍었다. 하지만 CF역시 한예슬의 일이었을 터다. 그러나 모든 자기 생활을 희생해가며 드라마에 올인해야 하는 현실. 일주일에 140분 이상의 방영분량이면 어지간한 영화보다 더 분량이 많을 것이다. 그나마 시트콤은 한 자리에서 거의 대부분을 찍는 반면 일반 드라마는 여기저기 촬영장을 옮겨가며 찍어야 한다. 하물며 <스파이명월>에서 아예 한예슬이 나오지 않는 장면 자체가 거의 없다고 할 정도였다.

 

시청율이라도 높게 나왔으면 그것을 가지고라도 힘을 낼 수 있었으련만. 그 밖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은 그런 상황에서 한예슬에게 다른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사람은 의외로 강해서 버틸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만 있어도 어지간해서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인터뷰에는 어떠한 절망과 좌절이 숨어 있었을까.

 

물론 그럼에도 한예슬이 비난받아야 하는 이유는 한예슬이 떠난 뒤에도 그 자리를 지키는 다른 배우나 스탭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그동안 함께 고생해 왔는데 한예슬의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로 인해 더 이상 촬영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방송조차 정상적으로 나가지 못하고 말았다. 그 책임을 다 어떻게 질 것인가.

 

아무리 한예슬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어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도 많다. 한예슬만 드라마를 찍은 것도 아니고 <스파이명월>의 현장에는 더 열악한 조건에서도 여전히 촹열장을 지키고 있는 스탭과 배우들이 많다. 그래도 주연이고 더 대우도 좋게 받는데 한예슬 역시 어떤 경우에라도 참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한예슬은 다른 배우나 스탭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서로 놓인 조건이 다른데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무엇보다 한예슬이 그러한데 다른 배우나 스탭들은 어떠할까 생각해 본다. 한예슬마저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갔는데 뛰쳐나가지도 못하고 버티고 있는 다른 배우나 스탭들은 어떠할까.

 

한예슬이니까 이슈가 된다. 촬영팀에서 한두사람 빠진다고 그것이 따로 이슈가 되지는 않는다. 단영배우 몇 명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도망치면 그대로 출연자 명단에서 지워질 뿐이다. 일각에서 그래도 한예슬이기에 이슈가 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그렇게라도 한국 드라마제작의 모순이 표면화될 수 있으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런 부분에 대해 개선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당장 다른 드라마 촬영현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하는 보도의 내용처럼.

 

과연 한예슬의 인내도 다른 배우나 스탭들 수준에 끼워맞춰져야 하는가. 아니면 촬영현장의 강도가 한예슬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되어야 하는가. 언제까지나 배우 개인의 인내심과 적응력에 의존하여 드라마를 촬영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단지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고 비난하기에는 이미 드러난 모순들이 상당하다. 그것들을 먼저 고쳐야 하지 않을까.

 

물론 과연 한예슬은 투사인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사실이다. 어떤 거창한 명분에 의해 대단한 목적을 가지고 한 행위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여전히 한예슬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나 오죽하면.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리고 전해지는 한국 드라마제작현장의 모순들에 대해서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변화를 위한 단초를 제공해주게 되었다.

 

다만 과연 한국의 드라마 제작현장이 이번 일을 계기로 크게 바뀌기는 할 것인가. 그다지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여전히 한예슬이 더 책임을 가지고 견뎠어야 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제작진보다는 더 책임을 지고 비난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일단 드라마 제작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동안에는 누구도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나 이렇게 이슈화된 것만도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

 

한예슬이 받는 회당 수천만원의 출연료. 대단한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일 년 연봉으로도 그 만큼을 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부당한 조건에서도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녀가 받는 출연료는 그녀가 출연함으로써 얻어지는 기대수익에 대한 대가일 것이다. 오히려 그만한 대우를 누리는 배우이니까 행동 하나하나가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조금 더 여론이 그녀의 뒤를 받쳐주었다면 그녀도 투사가 되어 돌아올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문제는 봉합되었고 한예슬은 촬영현장으로 복귀했다. 다시 없었던 일처럼 촬영장은 예전처럼 돌아가고 말 것이다. 단지 철없는 여배우 하나가 책임감이 없어 저지른 헤프닝 정도로 여기고. 미디어도 대중도 제작진도 그렇게 봉합하려 한다. 아쉬운 결말일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순종적인 한예슬이 그런 무모한 일을 저지른 그 충동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입맛이 쓴 사건이었다. 회당 수천만원의 출연료를 받는 인기여배우의 현실조차 저렇다는 것이다. 한예슬을 비판하던 여러 논거 가운데 하나가 현실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도 일을 하고 있다. 야근은 강요당하고 철야와 휴일근무를 당연하게 여기며. 개인의 사생활마저 포기할 것을 강제당하며 오로지 생산에만 매달리고 있다. 가족에 대한 책임과 회사에 대한 의리,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이유들을 가지고.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회당 수천만원의 출연료와 천문학적인 위약금과 대중의 비난조차 순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외국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한다. 이성이 마비되어 버릴 정도의 절박함.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까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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