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주의 남자 - 사육신에 대한 폄하의도...

까칠부 2011. 9. 21. 23:28

둘 중 하나다. 하나는 텍스트만 보거나. 다른 하나는 신숙주나 수양대군의 후손이라 자기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 사육신을 깎아내리려는 것.

 

일단 사육신이 계유정난을 지지한 것은 원래 원래 원로대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황표정치라는 자체가 성리학적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어찌 신하로써 왕권을 침범하는가? 그같은 권신의 존재 자체가 유학자들이 혐오하는 것이었기에, 더구나 수양대군의 편에 집현전 학자들 사이에 신뢰가 깊던 신숙주가 섬으로써 주공의 예로써 단종을 보필하겠다는 수양대군의 명분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그래도 권신보다야 종친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선택이었다고나 할까? 이미 대세도 그리 정해져 있었고. 황표정치는 원래 당시부터도 비판이 많았던 체제였었다.

 

그리고 이후 성삼문이 공신에 책봉된 데 대해서는 수양대군이 집권하기까지 아마 공신으로 책봉된 이가 9000명이 넘었을 것이다. 워낙에 명분이 없는 반란이었다 보니 수양대군은 부족한 정통성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에 공신을 남발하고 있었다. 하여튼 적이 아니면 다 공신이었으니, 이 공신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내용이었다. 성삼문 등이 공신으로 책봉된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성삼문이 수양대군에게 양위조서와 옥새를 내어준 것도 그가 바로 왕명의 출납을 맡는 동부승지라는 관직에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가 수양대군의 적극적인 동조자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만일 성삼문이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수양대군의 집권으로 인해 국정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불만을 가지고 반역을 일으킨 것이라면 어째서 그들은 그 잔인한 고문에도 수양대군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것일까? 수양대군은 고문을 하면서도 몇 차례나 그들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었다.

 

확실히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들이 좋아한 것이 수양대군이었던 탓에. 그동안도 수양대군에 대한 미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져왔었다. 사육신에 대해서는 그 결과 폄하가 이어지는데. 그러나 사료에 나타난 바를 두고 보더라도 과연 사육신이 사욕으로 그같은 일을 벌였는가? 일을 꾸미고 또 뒷처리 과정에서 그리 영리하지 못해 그 부분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행간을 읽지 않고 단정부터 짓는 것은 조금 억울한 일이다.

 

하여튼 이래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고나 할까? 그 지랄을 떨었던 양녕이나 수양이나 신숙주나 후손들이 살아남아 열심히 변호해주는데, 성삼문은 후손도 없어서 변호해 줄 사람도 없다. 그 성삼문을 끝까지 충신으로 받들어 복권시킨 것이 조선의 사대부들. 그 사대부가 싫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죽음으로써 청사에 좋은 이름으로 남겠다. 그러나 혈족우선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것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몇몇 사료의 문구만을 가지고 그들을 폄하하려는 시도가 이리도 많으니. 그것을 마치 정설처럼. 역시 이 경우도 역사적 맥락을 살피는 관이 필요하겠다.

 

뜬금없는 사육신 이야기다. 아무튼 가슴이 울컥하게 비장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정종의 울분을 안다. 의로운 이름으로 남고 싶다. 부끄럽지 않고 싶다. 요즘은 참 보기 드문 기개다. 역사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