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제 아버님인 것이 참으로 괴롭습니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했습니다. 더는 아버님과 부모자식의 연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어쩌면 가장 안타까운 처지에 있던 것이 다름아닌 수양대군(김영철 분)의 딸 세령(문채원 분)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규방아가씨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세상을 알았고, 그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알았다. 그를 위해 당연히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누구나 아는 것이다. 신하가 임금을 내쫓는 것은 반역이다. 삼촌이 조카의 자리를 탐내어 빼았는 것은 패륜이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무고하게 죽이는 것은 죄악이다. 그러나 하필 그것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였다. 어찌하겠는가? 부모와 자식과의 사이는 천륜인 것을.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했을 보편적 정의란 천명이었을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사실 이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루어져 오고 있었다. 대의인가? 명분인가? 대의란 보편적 가치를 따르고, 명분은 직분과 상황을 따른다. 신하로써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도 명분이고, 자식으로써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것도 명분이다. 그런데 신하로써 아버지가 임금을 내쫓아 죽이려 한다면 자식은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인내했다. 인내하며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실망하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다시 원망하며, 그러면서도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그 기대가 산산히 부숴지기까지. 부모에 대한 의리를 다하려 했고, 그러면서도 경혜공주(홍수현 분)와 김승유(박시후 분)를 도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이제 사육신마저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고 단종마저 폐위되어 유배를 갈 처지가 되었으니 그녀가 허용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이제 더는 타협은 없다. 아버지와의 부녀간이라는 의리와 명분을 쫓을 것인가?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하는 보편적 대의를 쫓을 것인가? 이런 강단있는 인물이 단지 허구의 캐릭터라는 사실이 필자로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것은 신면(송종호 분)의 선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수양대군의 선택과도 전혀 다른 것이었다. 신면은 아버지 신숙주(이효정 분)와의 부자간의 정을 끊지 못했고, 수양대군은 자신의 야심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승유에 대한 그녀의 연정은 단지 그 빌미가 되었을 뿐, 공주라는 고귀한 자리마저 박차고 수양대군을 거부한 것은 순수한 그녀의 의지였다. 옳지 않은 것은 설사 부녀지간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 옳지 않은 것은 아무리 아버지라도 옳지 않은 것이다. 옳은 길을 가겠다.
하기는 그래서 신면이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녀를 보면 욱신거리며 아파 올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갖지 못한 그러한 강한 의지에 이끌린다. 수양대군이 유독 딸 세령을 아끼고 사랑한 것도 그런 곧고 굳은 심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수양대군 자신도 그럴 것이라 여겼었는데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 앞에서도 당당한 세령을 보면서, 드러나 정작 사육신 앞에서 안절부절하던 자신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생소한 감정이다.
사료를 통해서도 느끼는 부분이다. 수양대군은 겁장이였다. 그리고 대단한 낙천가였다. 그는 자신이 김종서와 황보인만 죽이고 나면 더 이상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될 수만 있으면. 사육신을 죽이고 단종을 영월로 유배보내고 나면.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그의 행위를 비난하고 반대하고 심지어 그를 내쫓고 죽이려고까지 하고 있었다. 더욱 겁을 집어먹고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리고는 나중에는 그 죄책감에 못이겨 불사를 일으키면서도 악몽과 착란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음을 맞고 있었다.
아마도 드라마상의 수양대군도 그동안 한 번도 큰 실패나 좌절을 겪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유일한 컴플렉스라면 장자로 태어나지 못해 왕이 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그는 당연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왕위를 탐하기 시작한다. 왕위만 손에 넣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저 지고무상의 자리멘 오를 수 있다면 모든 뜻하는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그러나 딸은 그를 거역하고, 한때 그와 고락을 같이 했던 집현전 학자들은 그를 임금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상왕 단종만을 떠받든다. 그리고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차라리 그가 신숙주나 한명회처럼 단지 탐욕만으로 왕위를 노렸다면 아무런 자책도 후회도 없었으련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컸기에 생소한 좌절이 더 크게 깊이 다가오게 된다. 오히려 정적이었던 김종서보다도 사육신에 더 잔인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아이가 비로소 세상을 알고 겁을 집어먹은 것과도 같았다. 수양대군의 눈물은 비로소 세상을 알게 된 아이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아이라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지만. 가장 영광된 순간이 가장 비참한 순간이었다. 영웅의 아러니일 것이다. 영웅의 반대편에 있으니 반영웅의 아이러니인 것이다. 가장 고귀하나 가장 추악한 이에 대한.
결국은 그런 나약함으로 인해 정작 수양대군이 정난을 일으키고 찬탈까지 하게 된 명분인 왕권강화와는 전혀 상관없이 세조의 치세는 왕권강화는 왕권강화인데 측근인 공신들에 의존한 왕권강화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흘러가게 된다. 드라마에서도 정작 임금의 대전인데 신하라고는 권람과 신숙주, 한명회(이희도 분)가 전부인 것이 바로 그것을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었을 게다. 온갖 부패와 전횡을 일삼는 공신들을 방치하는 대신 공신들은 철저히 세조의 왕권을 받들었다. 그리고 세조가 죽은 이후 공신들의 부패와 전횡은 성종의 성세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결정적으로 약화되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고 할아버지 태종처럼 공신들을 제거하기에는 그에게는 반대자가 너무 많았고, 그들 반대세력을 상대하기에는 그는 너무 겁이 많았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흔히 보게 되는 이야기다. 나름대로 주관도 뚜렷하고 능력도 훌륭하다. 무언가 해내겠다는 자신감도 확고하다. 그러나 정작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되었을 때 이내 중심을 잃고 폭주하다 자멸해버리는 경우다. 다만 이 경우 세조에게는 한명회와 신숙주라는 조선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인재가 있었으니까. 행정은 신숙주가 뛰어났고 정치는 한명회가 탁월했다.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고 싶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딸로부터 경멸받는 이유가 되었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게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폭주가 시작된다.
아무튼 그렇게 결국 수양대군이나 신면이나 자신이 한 선택의 결과를 눈앞에 마주하게 된다. 오히려 더 강한 의지로 자신에 거역하며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딸 세령으로부터, 그리고 탈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음에도 당당히 죽음을 맞으려는 스승 이개와 친구 정종(이민우 분), 그리고 사육신의 모습에서. 자신은 단지 어쩔 수 없어서 그리 했을 뿐이라 변명하고 있는데, 스승 이개와 친구 정종은 죽음 앞에서조차 초연하다.
"이젠 돌이킬 수 없습니다."
차라리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물론 그렇더라도 신면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그는 세령처럼 강하지도 못하고 정종처럼 의지가 굳지도 못하다. 그래서 끝내 아이처럼 울고 만다. 후회하고 번민하며. 차라리 자기가 옳다 주장하지도 못하고. 친구와 스승의 죽음마저 외면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세령을 위해 그같은 선택을 했듯, 다시 친구를 위해 스승을 위해 자책의 눈물을 흘린다. 때로는 약하다는 것도 악한 이유가 된다. 비극적인 종말을 예고하는 듯 보인다. 그는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멋지다. 의로운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 그 뜻을 전하기 위해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탈출하지 않는다. 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기에 그들은 탈옥과 같은 구차한 짓을 하지 않는다. 육신의 삶을 이어가는 것보다 더 고귀한 푸르른 역사에 의로운 이름으로 길이 남아 이어갈 더 값진 삶이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한 군자가 죽지 않는 이유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떠올리는 이가 있는 한 그는 죽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그들은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다. 기독교가 천국에서 영생을 얻고, 불교가 해탈을 통해 영원을 얻는다면, 유교에서는 역사를 통해 영속을 얻는다. 과연 사육신이 죽어 무덤에 묻혔다고 그들이 죽었다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후손이 있어도 조상의 이름을 차마 부끄러워 밝히지 못하는가 하면, 후손이야 끊어졌어도 모두가 선인으로써, 조상으로써 받들어 그 이름을 기린다. 생물학적으로야 그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지 못했으니 패배자일 테지만, 인간의 의식에 있어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 한반도인의 역사가 이어지는 한 사육신은 충신으로써 영원히 기억되게 될 것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그것이야 말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바른 말과 바른 뜻을 위해 서슴없이 목숨을 내던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구차하게 삶을 유지하기보다 역사 속에 바른 이름으로 영원을 누리겠다.
정종의 비극이었다. 아마 경혜공주와 세령의 운명이 교차하는 시점이었을 것이다. 세령은 대의 앞에 아버지와의 사적인 인연을 끊는다. 그러나 경혜공주는 남편 정종을 살리기 위해 원수라 할 수 있는 수양대군 앞에 무릎을 꿇는다. 세령에게 단종이 대의였다면 경혜공주에게 단종이란 동생을 보살피는 누이로써의 명분이었던 때문이다. 동생에 대한 명분과 남편에 대한 명분. 결정적인 순간 허물어지고 마는 것은 그녀의 정종에 대한 정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차라리 죽으려 했음에도 정종은 죽지 못했다. 사는 것이 차라리 부끄럽다. 당당히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 속에 홀로 경혜공주에 의해 목숨을 부지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 그보다 더 큰 절망이 어디 있을까? 그것이 미안해 경혜공주는 울고 그것을 알기에 정종은 산다.
이 또한 조선만의 멋이었을까? 역사를 통해 영원을 산다. 사람들의 기억과 의식을 통해 죽지 않고 영원을 누린다. 그래서 그토록 의사도 많고 열사도 많았다. 조선이 600년을 그 수많은 고난에도 이어져 온 비결이었다. 사육신이 죽임을 당하고, 김일손과 김종직이 세조의 찬탈을 비판하고, 이후로도 수많은 의로운 선비들이 사육신과 단종과 김종서의 신원을 꾀했다. 수백년에 걸친 역사바로잡기가 마침내 세조의 후손인 숙종과 영조에 의해 빛을 보게 된다. 그들을 잊지 않고 끝내 역사에 기록해 남기는 이들이 있었다. 비장하지만 그래서 슬프지만은 않다.
참 이야기가 넘치려 하고 있다. 사육신의 비극과 아버지와 의절하는 세령의 비장함과 남편을 위해 세조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경혜공주의 비참함과, 그리고 그런 가운데서도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아강이는 아무일 없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게 진흙탕을 뒹굴며 피를 흘리는 어른들 사이에 모든 한도 분노도 잊고 웃을 수 있는 아강이야 말로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진심으로 화가 나려 한다는 점에서 수양대군을 연기한 김영철의 경륜에 경의를 표한다. 그토록 당당하던 모습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한심한 모습까지, 심지어 딸이 찾아와 말을 하려는 것조차 두려워 회피하려는 모습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드라마를 쓰는 것은 작가이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것은 감독 이하 스태프지만, 그것을 시청자에 전달하는 것은 배우다. 수양대군이 지금 과연 어떤 감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 디테일한 선이 칼날처럼 베어 온다.
어쩌면 최근 방영된 어떤 역사드라마보다도 가장 역사드라마다운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분명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본다면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너무 많다. 거의 픽션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과장되고 생략되고 재구성된 사건들이 역사의 맥락을 적확하게 짚어내는 데에는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끼게 된다. 진정 역사를 알고 인간을 아는,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쓴 드라마다. 역사적 사실이야 나중에 책을 찾아보면 되더라도 역사를 이해하는 안목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내 숨도 못 쉬고 보았던 것 같다. 한 시간 내내 달린 것보다도 더 숨이 차고 등에 땀이 난다. 어느새 드라마 한 가운데 놓인 것 같다. 결국 유령과도 같이 관찰자로써 역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김승유와 세령의 딜레마와 함께. 어떻게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타깝게도. 시청자 역시 단지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비극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 굳은 의지를 지키고자 했던 그 올곧은 영혼들을. 비탄과 비감의 시대에도 당당하게 웃을 수 있는 강함이 있다.
어째 회수를 거듭할수록 힘이 빠지기보다는 힘이 더해가는 느낌이다. 운명 앞에 당당한 세령처럼. 잔인한 시대 앞에 당당할 수 있었던 수양대군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릎을 꿇고, 그를 위해 부끄럽더라도 살아가야 하고. 김승유의 눈이 바로 나의 눈이다. 지켜볼 수밖에 없으되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좋은 드라마다. 그 말 밖에 다른 할 말이 없다. 여운을 즐기며 다시 오늘을 기약할 뿐. 한 주 한 주 가는 것이 그리 설레고 아쉽다. 이야기가 넘친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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