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남자들이었다. 군대, 실연, 재수, 고향, 추억, 외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결국 남자들이 항장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어머니일 것이다.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의 포근함. 언제 돌아가도 여상히 맞아줄 것 같은 그런 그리움. 이윤석이 1등 할 만했다.
소고기국을 끓일 때 소고기를 90분을 삶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윤석이 어머니의 집을 찾아갈 때마다 매번 밥 달라 하면 바로 나오던 것이 소고기국이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따로 나가 사는 아들이지만 아무때라도 아들이 찾아왔을 때 바로 내놓을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언제 올 지 모르는 아들을 위해 아들이 좋아하는 소고기국을 준비하며 보낸다. 순간 울컥 어머니 생각이 치밀었다.
아마 그런 점에서 차이가 났을 것이다. 이미 이윤석이 가져온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맛보고 김태원이 가지고 온 역시 어머니의 우엉밥을 먹으면서 그리 극찬을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먹은 모든 음식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릴 정도로 대단한 맛이다. 이경규도 맛있기는 김태원이 가져온 음식들이 가장 맛있다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엉밥은 그다지 남자들의 기억에 없다. 반면 된장찌개는 집마다 만드는 법이며 맛이 제각각 다르지만, 그러나 항상 밥상에 오르던 익숙한 일상의 음식이었다. 어머니의 기억이 다른 남자들 역시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에 짙게 배어 있다.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우엉밥이며 가오리구이의 경우 김태원에게는 어머니의 맛이지만 다른 멤버들에게는 평소 먹어보지 못한 특별한 맛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김태원의 어머니의 맛이다. 비유하자면 요리와 집밥의 차이와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재수의 기억도, 고향 인제의 추억도, 군대의 경험도, 실연의 아픔도, 외할머니도... 그러나 어머니란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기억인 것이다. 공감하는 그리움인 것이다. 김태원 역시 어머니의 손맛을 찾아 바로 집으로 달려간 것처럼.
확실히 군대 다녀온 연도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난다. '군대리아'가 필자가 군대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일단 계란이 프라이가 아니었다. 수백 명 분량의 계란을 프라이로 만든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삶아서 나온 것을 으깨어 양배추 샐러드와 함께 빵에 발라 먹었다. 껍질째로 튀긴 감자튀김과, 치즈는 없었고 양배추 샐러드는 거의 비슷했다. 딸기쨈은 상당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딸기쨈을 발라서도 햄버거를 먹는구나 싶어서. 물론 제대하고 나서 단 한 번도 햄버거에 딸기쨈을 발라 먹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밖에서는 햄버거를 그다지 즐겨먹지 않았기에 그럭저럭 불평없이 먹을 수 있는 메뉴였을 것이다.
다만 튀긴 건빵까지는 모두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테지만, 불고기떡볶이나 볶음밥은 아무래도 윤형빈의 오판이 아니었을까? 물론 윤형빈 개인의 아프고 고마운 기억이 담긴 소중한 음식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필자의 경우만 하더라도 군대에서 그와 같은 음식을 먹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가는 알겠지만 굳이 그러한 사연이 음식과 매치되는가? 그것은 김국진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목적한 짜장면을 가져와 내올 수 있었다면 상당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테지만, 고향 인제의 묵은 무란 단지 그리운 맛에 불과한 것이다.
확실히 필자의 경우에도 짜장면이라는 것이 단순히 중국음식점 메뉴 가운데 가장 싸고 만만한 면요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도 중학교 졸업식도 그 다음 코스는 당연히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 것이었다. 다른 메뉴는 없었다. 오로지 짜장면 하나. 대신 곱배기를 먹었다. 지금도 다 먹지 못하는 곱배기를 초등학교 다니던 당시 다 먹고도 아버지가 드시던 것을 뺏어 먹을 수 있었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그저 짜장면이 좋았던 때문일 것이다. 아니 짜장면보다는 짜장면이 상징하는 어떤 특별함이었을 것이다.
워낙에 아들이 짜장면을 좋아하니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언제부터인가 짜장면 만드는 법을 배워 아들의 생일이면 직접 만들어 주시곤 했었다. 면은 시중에서 파는 납작한 우동면, 고기도 없고, 또 약간 눌은 듯한 냄새까지 나던 그 짜고 시커먼 짜장면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첫날은 면에 비벼먹고, 그 다음에는 남은 것을 밥에 비벼 짜장면을 만들어 먹었다. 지금은 어머니도 짜장면 만드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시는데. 아마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아들의 입맛이 바뀌게 된 터라 짜장면이 아닌 카레로 메뉴를 바꾸게 되었던 탓이었다.
지난번 귀농미션에서 김태원이 시골장터의 중국집 짜장면을 극찬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던가? 어쩐지 시간을 잊은 듯한 그곳으로 가야만 맛볼 수 있는 그리운 맛에 대한 기억이 김태원이 찾은 중국집에 대하 궁금함으로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었다. 짜장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특히 김국진이나 필자 또래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외식이라는 것이 흔치 않던 시절, 유일하게 맛볼 수 있던 외식이 바로 짜장면이었다. 아마 된장찌개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소울푸드로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문득 일본 소설 '우동 한 그릇'이 우리나라에서 쓰여졌다면 '우동'을 대신해 '짜장면 한 그릇'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양준혁의 실연은 처음 들었다. 소주 두 병을 원샷하고 죽네사네 하는데 어떤 여자가 겁먹지 않을까? 일단 양준혁을 말리고 보자고 그랬던 것이라는 다른 멤버들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설마 지난번 '시' 미션에서 양준혁이 쓴 시의 주인공이 그때 그 여자분이었을 줄이야. 양준혁이 아직까지도 혼자인 데에는 그것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까? 윤형빈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이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래서 아마도 필자의 눈에도 전복죽보다는 소주 두 병이 더 들어왔던 것인지 모르겠다. 전복죽은 공감할 수 없지만 소주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소주가 맑고 투명한 것은 그만큼 많은 기억이 그 안에 녹아 있는 때문이다.
전현무의 경우는 그다지 와닿는 것이 없었다. 재수학원 근처의 자주 다니던 음식점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뼈다귀해장국이라는 자체가 소주 한 잔 곁들인 모임의 주된 소재 가운데 하나인 터라. 아무래도 재수생의 애환보다는 일을 마치고 함께 나누던 소줏잔이 더 기억나지 않을까? 제대로 오랜 시간을 끓여 익힌 것이 뼈까지 녹아 씹힐 것 같은 맛이다. 항상 소주를 마실 때면 뼈다귀해장국이 단골안주였는데. 먹고 싶어졌다. 영등포면 그다지 멀지도 않다.
이경규의 닭곰탕에 대해서는 필자가 가장 격하게 공감한 음식이었었다. 필자 역시 어려서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이경규와는 달리 필자의 경우는 아직 초등학교 때였다. 초등학교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신 외할머니를 적적하실 거라며 필자로 하여금 어머니께서 함께 살도록 하셨던 때문이었다. 물론 닭곰탕 같은 것은 폐지를 주워 팔던 외할머니 처지에 언감생심이었다. 어디서 얻어 온 떡볶이 떡을 넣은 떡라면이 별식이었다. 호박을 넣은 풀때기나 밀가루반죽을 가래떡모양으로 빚은 뒤 썰어 끓인 떡국모양의 수제비, 그런 가난한 음식들이 외할머니와 필자 사이의 기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을 만들다가 망쳐서 정체도 알 수 없는 색으로 엉성하게 만든 꽃을 여름이 다 가도록 가슴에 달고 계셨었는데. 돌아가실 때 날이 너무 맑아 서러워 울었던 기억이 있다. 문득 보고 있다 눈시울이 시큰해진 것은 그렇게 어려운 살림에도 외손자를 위해 무어라도 해주려 하시던 그 거친 손길 때문이었을 텐데.
음식이 맛있어서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투표의 결과도 그에 따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것은 크게 공감하면서, 어떤 것은 그다지 생소한 느낌에, 그 사연을 먹는 것이다. 영혼이 담긴 음식 - 소울푸드, 굳이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지 않아도 충분히 TV화면 너머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묵은 무를 보면서는 입안이 시어지고, 된장찌개를 보면서는 어느새 밥을 찾게 되고, 외할머니의 닭곰탕에는... 외할머니 닭곰탕이라도 한 그릇 맛나게 드실 수 있게 해드렸어야 했는데. 우엉밥은 진짜 한 번 직접 만들어 먹어 보고 싶었다.
참 그리고 가오리 구이에 대해서, 필자 아버지의 고향이 원래 함경도시다. 아마도 친가에서 어머니께서 배우신 듯 한데, 어려서 슬레이트 지붕 위에는 그래서 겨울이면 가자미가 말려지고 있었다. 꾸덕하게 마른 가자미를 조밥을 넣어 삭히면 그것이 식해다. 함경도식은 보다 담백하고 경상도식은 고추가루가 들어가 벌겋다. 언제부터인가 가자미를 말릴 곳도 없는데다 그다지 잘 먹지도 않아 만들지도 않게 된 음식이었을 것이다. 역시 만드는 법도 기억에 없으시다는데.
<남자의 자격>다운 미션이었다. 시청자층이 고령화되어간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그런 그리운 느낌을 반가워하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긴 한 것이다.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그리고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꼬르륵 입맛 다시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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