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레인 - 김상철이 이강훈에게 더욱 엄격하고 가혹한 이유...

까칠부 2011. 12. 7. 09:34

결국 이강훈(신하균 분)은 의사이기보다 성공을 택했다. 자신의 환자보다 자신을 출세시켜줄 환자를 우선해 선택한 것이었다. 물론 이강훈이 아니었다면 혜성대학병원의 혈관모세포종환자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기 환자가 우선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김상철(정진영 분)의 비난은 지나친 바가 있다. 더 이상 천하대학병원에서 이강훈의 자리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동기인 서준석(조동혁 분)이 먼저 조교수가 되면서 직급상 아래인 이강훈을 압박해 오기 시작했고, 이미 서준석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져버린 학과장 고재학(이성민 분) 역시 이강훈으로서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김상철 역시 이강훈이 천하대학병원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 가운데 하나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이강훈이 천하대학병원에서 의사로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겠는가?

 

아마 많은 시청자들이 상당히 문제가 많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어느새 이강훈에게 자신을 이입하며 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동기 가운데 누구보다도 뛰어난 실력과 그러나 그런 실력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그토록 아부하던 고재학은 그를 단지 이용하려고만 들고, 김상철은 실력 외적인 이유로 그를 배척한다. 출신이 좋다는 이유로 동기는 자기보다 먼저 조교수가 되었고, 그로 인해 점차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간다. 어쩌면 그런 이강훈의 모습에서 현실의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력 외적인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은.

 

이강훈의 문제가 많은 행동들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워낙에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안환경에 오로지 자기 실력만으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끌어줄 사람도, 밀어줄 사람도 현실에는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자기 실력만으로 앞으로도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서준석처럼 준비된 길을 차근히 밟아나가면 되는 편안한 처지와도, 그다지 큰 욕심 없이 그냥 주어진 일들만을 처리하기도 바쁜 전공의들과도 처지가 다르다. 그런 만큼 절박하고 더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천하대학병원에서 자신의 자리가 사라진다면 그로서는 기다리기보다는 다른 자리를 찾아 떠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여유가 없다.

 

말 그대로 그저 몇 번의 날개짓만으로도 높이 하늘을 나는 새들과는 달리 어떤 새들은 쉴 새 없이 날개짓을 하지 않으면 떠 있는 자체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준석조차 조교수가 되고 나니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이강훈을 의식해서 여러 무리수를 두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무런 욕심 없이 그저 묵묵히 의사로서 자기 일만 충실히 안다고 알아주는 그런 세상에서 이강훈은 살고 있지 않다. 그가 보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다. 아마 시청자 가운데 이강훈에 이입하여 보고 있는 많은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세상도 같을 것이다. 그렇게 이강훈은 급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 급한 마음이 그로 하여금 무리하여 행동하도록 만든다.

 

사실 필자 역시 의문이었다. 김상철이 이강훈을 대하는 것이 확실히 지나치기는 지나치다. 보통은 아무리 성품이 고결해서 이강훈과 같은 타입을 싫어한다고 그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내는 경우는 동류들인 경우가 많다. 대개는 무관심하다. 한 마디로 굳이 다른 대학에서 조교수임용을 앞두고 조언을 구하는데 의사로서 부족함이 많다는 식으로 솔직한 평가를 들려주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혹평을 하는데도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전혀 상관없는사람이라면 혹평조차 하지 않는다.

 

아마 김상철 나름의 애정이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집착이었다. 개입하고 싶은 것이다. 이강훈의 삶에. 이강훈의 방식에. 그것은 나름의 보상을 위한 행위였을 것이다. 무엇을 위한 보상이었을까? 드라마는 그것을 이강훈의 과거와 관계된 어떤 사건일 것이라 암시하고 있다. 과거 김상철이 저질렀던 어떤 행위가 이강훈을 통해 되살아나면서 김상철로 하여금 그에 집착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실제 혜성대학병원의 학과장이 조언을 듣고 돌아간 뒤 김상철 역시 괜한 짓을 했다는 자책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기가 일하고 있는 대학출신의 앞길을 막은 꼴이 아니던가? 재능도 있고 능력도 있는 친구다.

 

과연 그러한 과거가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 것인가? 그것은 이강훈에게는 다시 없을 비극이었고, 김상철에게는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마침내 화해하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을 얽매고 있던 비극과 짐 역시 두 사람을 자유롭게 풀어주리라. 김상철에게도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고, 이강훈이 풀어야 할 숙제가 그와 겹친다. 두 사람이 끝내 얽힐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계기는 아마도 예고편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이강훈 어머니의 병. 어머니의 병 앞에서 약해지고 만 이강훈이 먼저 손을 내밀게 된다.

 

이강훈이 김상철을 싫어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강훈이 서준석을 싫어하는 이유와 같다. 고재학이 이강훈을 잡으며 눈물마저 그렁했던 이유였다. 이강훈에게는 김상철의 사람 좋은 모습이 가식으로만 여겨진다. 사람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가? 도대체 누가, 어떤 경우에 사람이 그렇게 좋은 모습으로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강훈에게는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차라리 기회주의적인 속물인 고재학 과장 쪽이 이강훈에게는 맞는다. 고재학 역시 고고한 서준석보다는 적당히 속물인 이강훈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응석이었을 것이다. 이강훈의 뛰어남을 질투하고, 이강훈에게 들킨 자신의 미숙함을 부끄러워하고, 그래도 이강훈이라면 괜찮겠거니 거리를 두고 서준석을 선택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등을 돌려버린 이강훈이 서운하고 야속하다. 고재학 역시 세상 사는 것이 서툰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렇게 속을 훤히 드러내 보여서야 어떻게 그 험한 정치판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속물도 너무 노골적으로 속물이면 수가 보이는 것이다. 고재학이 귀여운 이유다.

 

어쨌거나 이강훈도 드디어 궁지에 몰렸다.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의 결과다. 자신의 환자가 아닌 혜성대학병원의 환자를 선택했고, 고재학에게 굽히고 들어가기보다 천하대학병원을 그만둘 것을 선택했으며, 김상철이 좋은 말로 달래는 것을 분노로써 거절했다. 그의 어머니 역시 그가 외면한 결과 자신도 모르는 새 병을 키워 중태에 빠져 있는 중이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도록 그로 하여금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도록 만든 것들이 상황을 그에게 비극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그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던 환경과 여건들이 그를 그렇게 몰아간 셈이다.

 

작가가 참으로 잔인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이 드라마는 이강훈의 드라마니까. 신하균의 드라마다. 서준석이 어느 정도 균형추 역할을 해 주었어야 했는데 갈수록 서준석의 역할은 주인공을 질투하는 악역1을 벗어나지 못한다. 김상철이 유일하게 이강훈과 맞서고 있다. 단독으로 주인공을 맡으려면 그 만큼 겪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법이다. 더 많은 비극과, 더 많은 고난과 시련과, 더 많은 상처와 아픔들. 누구도 이강훈을 어려움에 처하도록 만들 수 없기에 현실이 그로 하여금 비극으로 빠져들도록 만든다. 이강훈이 잘난 탓이다. 신하균이 잘난 탓이다.

 

모두가 적이다. 천하대학병원도, 의사들도, 누구도 그의 편에 서려 하지 않는다. 윤지혜(최정원 분)가 그를 위해 서준석에게 비밀로 수술방을 잡고 수술준비를 했을 때 그녀에게 새삼 이강훈이 고맙다 인사를 건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그녀만이 자신의 편이 되어 주고 있다. 조금은 구원받은 느낌이었을까? 차라리 천하대학병원을 아무일 없이 떠날 수 있었다면 드라마는 이어지지 않고 끝났을 테지만, 드라마가 이어지려 하니 이강훈에게 더 큰 고난이 찾아온다. 온통 적이었고, 더 큰 적이 되어 버린 천하대학병원에 그를 묶어두려 한다.

 

분명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 인간적으로 약점이 많은 성격이다. 하지만 현실의 절박함이 그를 대신해 준다. 현실의 각박함에 맞서는 그 치열함과 처절함이 그에게 면죄부를 준다. 대부분 그렇게 싸우며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혹은 그런 꿈을 꾸며 살아간다. 안티히어로일까? 많은 것을 꿈꾸게 만드는 그런 영웅이었을 것이다. 이강훈이란.

 

예상대로 분기다. 이강훈은 의사가 아닌 성공을, 아니 생존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다시 없을 궁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이강훈은 과연 지금의 현실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드라마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 이전과 이후가 나뉜다. 재미있어지려 한다. 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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