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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어드밴스드 대전략IV - 실패한 게임...

까칠부 2011. 12. 30. 10:53

아마 꽤 되었을 것이다. 어느 일본의 평론가가 그런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체조에서는 얼마나 어려운가 난도 한 가지로만 이야기하는데, 게임에서는 여기에 쉬울 이(易)를 붙여 난이도라 부르는가? 더 어렵거나 혹은 덜 어려운 것이 아닌가? 게임에서도 난도라 하자. 어드밴스드대전략4가 어쩌면 답이 될 것이다.

 

원래 어드밴스드대전략 시리즈에서 내가 가장 즐겨사용하는 유닛 가운데 하나가 바로 Ju87수투카였다. 요란한 사이렌소리와 함께 내리꽂히며 적을 부수는 그 통쾌함이란. 지상의 포병과 하늘의 포병, 전격전이 그러했듯 내가 추구하는 기동전에 있어 필수적인 무기다. 그런데 어드밴스드 대전략4에서는 영국 해군의 함선을 격침시킬 때를 제외하고 그다지 수투카를 쓰지 않는다. 왜? 하늘이 바글거리니까.

 

어드밴스드대전략4에서는 전략맵이라는 것이 도입되었다. 전략맵에서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해서 배치한 다음 전투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전술맵에서는 무기생산이라는 개념이 없다. 대신 불러들이는 것이다. 기존의 배속되어 있던 부대를 불러 배치하는 것이다. 당연히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이 배속되어 있는 유닛에 제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게임에 있어 가장 큰 오류였을 것이다. 적의 실체가 없다. 과연 적이 프랑스라면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전투기의 숫자는 몇 대인가? 몇 개의 군단을 보유하고 있고 그 상태는 어떠한가? 이를테면 이탈리아와의 전투를 치르고 재편중인 군단의 경우는 완편에서 한참 모자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쪽 군단이 지키고 있는 지역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 군단이 몇 개인지, 지휘관이 누구인지, 보유하고 있는 전력의 총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그냥 들이밀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가용한 최대의 군단이 아군을 맞이해 준다. 다시 말해 앞서의 가정, 배속되어 있는 부대의 규모가 제한이 없다면? 그대로 적용된다.

 

군자금이 0인 상태에서도 전투기는 날아다닌다. 모든 영토를 다 점령당하고 공항이 겨우 하나 남았는데도 전투기는 끊임없이 아군을 괴롭힌다. 여기까지 오면 끊임없는 전투가 긴장감 넘친다거나 재미있다고 하는 영역을 넘어 사람이 지겨워진다. 게임이란 곧 성취감인데, 그렇게 적 전투기를 격추하고 했으면 그 끝이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폴란드에서만 떨군 전투기가 무려 1만 대가 넘는다. 만일 당시 폴란드가 저만한 규모의 공군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세계최강국이다.

 

물론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런 때는 단위부대의 수가 일정 이하로 줄어들 경우 후방으로 돌아가 재보충하도록 되어 있는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된다. 3대 이하로 적의 수를 줄여 돌아가게 만든다. 불러오는 것은 돈이 들어가지 않지만 보충하는데는 돈이 들어간다. 유닛수의 제한도 있다. 하지만 그게 힘들다. 3대 이하에서 아슬아슬하게 적 수를 줄인다는게 거의 운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돈에 여유가 있다면 다시 날아드는 날파리떼에 짜증을 느껴야 하고. 폴란드가 이렇게 강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대충 개발자들의 머릿속이 보였다. 이렇게 하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이렇게 만들면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재미있지 않을까? 그러나 기본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군단에, 인접한 지역에서 날아드는 전력도 있다. 항상 몇 배의 적과 맞싸워야 하는데, 그것이 더구나 끝이 없다. 가만 내버려두면 컴퓨터가 뽑아낸 날파리떼로 독일의 루프트바페가 성능의 열세가 아니라 총알이 떨어져 다구리당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어째서 난도 외에 이도가 있는가?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적당한 수준에서 끊는다. 그렇게 죽어라 싸우다가도 숨을 돌리고 성취감을 느낄 텀을 둔다. 한참을 싸우다 보니 하늘이 평화로워졌더라. 여유롭게 폭격기를 운용하며 간간이 날아오는 적기를 사냥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실제 전장에서도 벌어지는 일들이다. 적의 주력을 격파하면 그 다음은 쾌속진군밖에 남은 것이 없다. 물론 그렇다 보면 전투가 너무 싱거워질 수 있지만, 설사 생산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생산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전투기 한 부대를 생산하는데 3턴이 걸린다거나, 전차 한 부대를 생산하는데 2턴이 걸린다거나. 이도를 적당히 조절해야 게임이 재미있다.

 

그야말로 하는 사람이나 할 만한 게임이다. 나중 가면 내가 뭔 짓 하고 있는가 정신이 몽롱해진다. 어느 정도 하늘을 정리하고 지상군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하늘에서 모든 전투기가 싸움을 벌이고 있느라 정작 지상에서는 유닛제한으로 지상군마저 거의 움직이지 못한다. 계속 답답하다. 마치 어느 드라마처럼 계속 답답한 채 겨우겨우 억지로 비집고 승리를 거머쥐고 만다. 그러니까 마니아들이나 이런 답답한 플레이를 끝까지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조차도 언제까지일지 장담을 못한다.

 

맺고 끊는게 중요하다. 고조되었다 풀어지는 그 리듬이 중요하다. 한껏 긴장했다가 풀어지고, 풀어졌다가 다시 긴장하고. 그러나 이 게임은 아주 긴장하거나, 아니면 아예 풀어지거나. 무엇보다 가장 짜증나는 것은 영국군의 허리케인이 독일의 메사슈미트 Bf109E와 맞장뜬다는 것. 허리케인과 Bf109가 맞장이면 스핏파이어는 어쩌라고? 더구나 항상 수에서도 우위에 있는데. 그렇다고 전투기 생산이라도 원활한가면, 있는대로 공장 풀로 투자해서 돌려봐야 한 달에 생산되는 전투기의 수가 수백대를 넘지 못한다. 나중 가면 전투기 재고가 없어 항상 공항에서 근근히 수리해야 한다. 난도만 생각하고 이도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튼 덕분에 생고생하며 몇 가지 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군단을 완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꽉꽉 눌러채우는 것이 아니다. 여유를 둔다. 여유분은 바로 적의 유닛을 노획함으로써 채워진다. 영국군의 퀸엘리자베스호를 그렇게 노획으로 획득하고 있었다. 항구에 들어 있는 것을 항구를 점령함으로써 아군이 보유한 모든 전함보다도 막강한 전함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다만 전투기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국에 이와 같은 전함이 도대체 몇 척이나 더 있을까 알 수 없다는 게 불안한 이유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연근해에서는 어떻게 버티는데 과연 북해로 나갈 수 있을까? 어쨌거나 이제껏 노획한 함선만으로도 몇 달 치 생산의 여유는 해결된다. 더 많은 적 전함을 노획할 필요가 있겠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워낙 삽질을 많이 해서. 히틀러가 저지를 실수를 똑같이 범했다. 초반에 예산이 거덜나더라도 전투기 생산에 돈을 있는대로 쏟아부었어야 했는데. 전투기의 재고가 부족하다. 그것이 현재 40년 8월이나 되었는데 프랑스의 국경을 단 한 발짝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벨기에에서 버벅거리고 있는 중이다. 전투기가 너무 부족하다. 다시 시작한다면 한 달만에 폴란드를 멸망시키고, 그리고.... 흠... 그런데 그러자면 또 한 달이겠지. 그것이 문제. 게임이 너무 지겹다.

 

그냥 마니아용 게임이다. 일반유저는 하려고 해도 뭔 소리인가 몰라 못한다. 더구나 지겹다. 지루하다. 짜증난다. 성취감이란 전투가 끝나는 그 순간 잠시 찾아왔다 사라진다. 하기는 어차피 어드밴스드 대전략이란 마니아용 게임이었으니까. 내가 일반인에 가까워진 것이다. 실패한 게임. 하고 있는 나도 실패한 인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