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 - 샐러리맨의 사정, 노사관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다!

까칠부 2012. 1. 31. 07:57

이런 것들이 드라마에 한참 실망하고 있다가도 어느새 다시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제목 그대로다. 샐러리맨, 아니 어느새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거시적 시각에 가려져 어느새 잊혀져 있던 무수한 작은 개인들의 이야기를 펼쳐놓으려 한다.

 

실제 많은 중소사업장에서 지금 당장도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숙련된 노동자가 없다. 인건비를 줄여보겠다고 임금이 싼 외국인 노동자나 비정규직을 주로 채용해서 쓴 것은 좋은데, 그러나 외국인노동자나 비정규직이나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하루살이들이나 다름없다 보니 오래도록 한 사업장에서 일하며 기술과 경험을 몸에 익힌 숙련된 기술자를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서 기계가 대부분의 작업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기계를 다루는 것 또한 결국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계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효율이 떨어지는 분야도 있어 생산현장에는 반드시 숙련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럴만한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기존의 기술자들은 점차 나이가 들어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렇다고 새로운 인력의 유입도 없다. 그런데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그나마 있던 기술자들마저 정리해고라는 명복으로 내보내고 있으니. 과연 그런 식으로 숙련된 인력을 사업장으로부터 내모는 것과 그로 인해 얻어지는 인건비 절감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기업에 이익일까?

 

하긴 상관없다. 최항우(정겨운 분)의 말마따나 그래서 도무지 이익이 나지 않는다 싶으면 이번에는 아예 공장을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이전하면 된다. 공장을 해외로 옮기거나, 인건비가 싼 나라의 공장에 하청을 주면 국내에 공장을 두고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비용이란 곧 원가이니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은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제품을 팔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회사에도 훨씬 이익이 된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값비싼 내국인노동자에서 외국인노동자로, 그조차도 더 이상 국내에 공장을 두지 않고 싼임금을 찾아 해외로 해외로 나간다. 이제껏 생산현장에서 회사를 위해 밤을 잊고 휴일마저 반납해가며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들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회사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저히 버려지고 만다. 과연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가 희생해야 하는가?

 

정리해고에 동의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하게 된다. 그런데 어차피 정리해고로 그만두나 회사가 망해서 문을 닫으나 더 이상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 정리해고로 그만두었는데 어차피 내가 다니지도 않을 회사의 사정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회사의 사정에 따라 마음대로 그만두도록 만들었는데 굳이 그만두어야 하는 입장에서 회사의 사정을 봐주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필자 역시 다니던 회사가 망하기도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회사가 망하는 것을 보기도 했었다. 사실 차이는 그다지 없었다. 어차피 나와 전혀 상관없다.

 

사실 그래서 안전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얼마동안은 버틸 수 있도록 충분한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다른 일차리를 찾는데 회사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만두어도 상관없다. 그만두더라도 회사에서 충분히 이후를 책임지고 도와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직원들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다. 회사가 책임져주는 만큼 직원들 자신도 회사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무책임하게 아무런 대책 없이 일단 자르고 보는 정리해고는 아마 어느 정도 사는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애사심을 강조하고 회사에 대한 책임감을 요구한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착하다.

 

자르지 않으면 내가 잘리니까. 참 잔인한 말이다. 바로 직전까지 형아우하며 함께 일하던 친한 동료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절박한 현실 앞에 놓이게 된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네가 그만두어야 내가 그만두지 않을 수 있다. 네가 잘려나가야 내가 잘리지 않고 회사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다. 자칫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같은 노동자임에도 오히려 그 노동자를 회사에서 쫓아내는 일에 노동자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적이 된다. 유방(이범수 분)이 인천공장 노동자의 적이 되어 있는 그 순간 본부장 최항우와 회장 진시황(이덕화 분)은 그로 인한 이익을 이야기하고 있다. 슬픈 아이러니일 것이다. 싸움은 노동자가 하고 이익은 저 위에서 누린다.

 

최항우에게 고용된 비정규직 한신의 넋두리는 그것을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나도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인데, 같이 데모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하지만 그럼에도 한신은 최항우의 지시를 쫓아 팽월을 통해 조직원들을 움직여 힘으로 공장직원들을 제압하려 한다. 공장장 오광이 개발중이던 제품의 설계도와 시제품도 훔쳐내고 있었다. 한신도 먹고 살아야 할 테니까. 같은 노동자의 편을 들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이전에 그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병을 앓고 있는 아이까지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물류계약이 성사된 기념으로 아방궁에서 파티가 열리는 순간 팽월이 동원한 폭력배들이 시위중이던 공장직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아방궁의 화려함과 공장에 짙게 깔린 어둠,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복장은 세련되고 팽월의 조직원들과 상대하는 공장직원들의 표정에는 고단함이 녹아 있다. 분명 같은 천하그룹이라는 이름 아래 있을 터이건만 그러나 두 공간은 서로가 처한 입장 만큼이나 너무나 다르다. 이보다 더 극명한 대비가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회사를 위해 자진해서 회사를 그만두라 말하고 있다. 역설이며 모순이다.

 

여전히 유방의 캐릭터는 샐러리맨이라기에는 너무 거침이 없다. 분명 직장상사일 텐데도 최항우 앞에서도 지나칠 정도로 당당하다. 경우가 없어 보일 정도다. 그것이 또한 후련함의 요인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주는 것 없이 미운 상사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유방처럼 그런 상사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그러한 유방을 뒷받침하는 것이 회장의 외손녀인 백여치(정려원 분)이라는 사실이 드라마를 판타지로 만든다. 더구나 고향후배인 번쾌를 대하는 모습에서 과연 유방이 직장상사가 되면 어떤 상사가 될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다지 최항우보다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유방에 대해 최항우가 갖는 감정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어쩌면 그런 점도 문제일 것이다. 최항우에 대한 드라마가 너무 강하다. 최항우가 갖는 동기의 절박함이나 타당성이 유방의 그것을 압도한다. 사랑마저 최항우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최항우가 마음에 두고 있는 차우희(홍수현 분)는 최항우와의 식사자리를 박차고 유방과 다정하게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차라리 연민을 하게 된다면 최항우를 더 연민하게 되지 않을까? 다만 그런 부분에서 이번 인천공장을 둘러싼 두 사람의 입장의 대비는 그나마 둘 중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악역인가를 분명히 한다. 연민하게 되어도 최항우는 위에서 결정하는 입장이고 경우없이 제멋대로여도 유방은 밑에서 결정을 당하는 입장이다. 그래도 역시 캐릭터가 갖는 매력이라는 점에서 유방과 항우의 밸런스가 상당히 엇나가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쨌거나 확실히 드라마가 판타지라는 것은 불로불사의 신약만큼이나 공장의 작은 작업장에서 시장을 놀라게 할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공장장의 모습일 것이다. 최근의 첨단기기는 하드웨어 만큼이나 소프트웨어도 중요한데 그다지 개발하는 모습을 보면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제품을 테스트하려면 그만한 설비와 비용이 필요한데 그것조차 없다. 개인작업실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과연 어느 정도나 신뢰성을 가지고 현실에서 쓰일 수 있을까? 하물며 의료기기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기에 더욱 신뢰성이 생명이다. 그냥 드라마다.

 

아무튼 이제까지 드라마 가운데 노사문제에 대해 가장 냉정하고 가장 디테일한 묘사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싶다. 정작 공장의 직원들은 절박한데 경영진은 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어느새 외국인노동자에게 한국말을 가르쳐가며 운영되고 있는 공장의 모습이라는 것도 그렇다. 한신이 공장에 잠입하며 몽골인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경영진의 모습에서 노동자란 무엇인가? 어떤 존재인가.

 

물론 답은 없다. 그것이 그리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하나의 단서는 되어 줄 것이다. 보게 하고 느끼게 한다. 생각케 한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것은 시청자 자신의 몫이다. 드라마는 다시 드라마에 충실하려 한다. 항우와 유방, 백여치가 그 자리에 남는다.

 

차우희의 롤이 아쉽다. 매력적이지만 그 역할과 캐릭터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느새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백여치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유방의 캐릭터는 이번을 계기로 어느 정도 변화를 겪게 될까? 항우는 더 독해질 필요가 있다. 드라마가 필요하다. 내용은 상당히 깊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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